▲ ‘생각의 지도’(김영사)의 글쓴이 미국 미시건 심리학과 리처드 니스벳 교수(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 제1편’(2008년 4월15일)
 러시아어는 명사를 낱낱이 여성·남성·중성으로 나누고, 그 명사가 쓰이는 자리(격)에 따라 6격까지 있다. 그리고 단수와 복수의 구별을 엄격히 한다. 독일어 또한 명사를 성으로 구분하고, 그 명사 앞에 정·부정관사를 놓는데, 놓이는 자리에 따라 4격이 있고 저마다 다른 관사를 붙인다. 물론 단·복수 구별도 철저하고 그에 따른 관사도 다르다. 이에 견주어 영어는 성을 거의 구분하지 않고, 격 또한 주격·소유격·목적격이 있는데, 주로 명사와 대명사에서만 볼 수 있다. 그만큼 간결한 언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단·복수의 구별만큼은 다른 인도유럽어족과 마찬가지로 철저하다. 영어에서는 이 세상 모든 낱말을 가산명사(보통·집합명사)와 불가산명사(고유·물질·추상명사)로 나누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는 우리 문법 체계하고도 처음부터 다른 지점에서 낱말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서양 사람들은 모든 사물을 형태로 구분할 수 있는 물체로 보기 때문에 사물은 저마다 개체성(individuality)이 있고, 접시 위의 딸기는 낱낱의 개체가 모인 ‘집합(collection)’으로 본다. 그래서 앞에서 보기로 든 프랑시스 잠의 ‘진실로 소중한 일은……(Ce sont les Travaux……)’에서 ‘일들(les travaux)’ ‘이삭들(les epis)’ ‘자작나무들(les bouleaux)’ ‘귀뚜라미들(les grillons)’ ‘달걀들(les oeufs)’은 반드시 이렇게 낱낱의 개체성을 살려 복수형으로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틀린 구문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서양 사람들에게 낱말의 복수는 단순히 수의 문제, 어떤 물체가 하나인가 둘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그들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리처드 니스벳의 말처럼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서양인과 동양인은 글자 그대로 서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서양 문법의 ‘수 범주’를 단순히 ‘수’(數·하나인가, 둘인가, 그 이상인가)의 문제로만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삭들(les epis)’ 같은 말을 우리말로 옮길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나는 당연히 우리 말법과 우리 세계관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다음 호에 이어서 씁니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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