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사람들은 모든 사물을 형태로 구분할 수 있는 물체로 보기 때문에 사물은 저마다 개체성(individuality)이 있고, 접시 위의 딸기는 낱낱의 개체가 모인 ‘집합(collection)’으로 본다. 그래서 앞에서 보기로 든 프랑시스 잠의 ‘진실로 소중한 일은……(Ce sont les Travaux……)’에서 ‘일들(les travaux)’ ‘이삭들(les epis)’ ‘자작나무들(les bouleaux)’ ‘귀뚜라미들(les grillons)’ ‘달걀들(les oeufs)’은 반드시 이렇게 낱낱의 개체성을 살려 복수형으로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틀린 구문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서양 사람들에게 낱말의 복수는 단순히 수의 문제, 어떤 물체가 하나인가 둘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그들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리처드 니스벳의 말처럼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서양인과 동양인은 글자 그대로 서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서양 문법의 ‘수 범주’를 단순히 ‘수’(數·하나인가, 둘인가, 그 이상인가)의 문제로만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삭들(les epis)’ 같은 말을 우리말로 옮길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나는 당연히 우리 말법과 우리 세계관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다음 호에 이어서 씁니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