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치동물원의 ‘표’.
 정말 돼지우리였다! 그리고 숨어있는 짐승은 마치 유령 같았다. 내가 처음 만나 ‘표’의 인상이었다. 표는 5년 전에 내가 사설 산장 같은 곳에서 데려온 표범이다. 어찌해서 산장에 표범이 사는지 몰랐지만 그때는 지자체장 허락만으로 호랑이 같은 맹수 사육도 가능했다고 들었다. 지금은 야생동물에 관한 법령이 정비돼서 어림없는 일이다. 그때도 아마 산장 사장님이 지방에서 힘꽤나 쓰셨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야생동물을 데려왔으면 미리 집(우리)을 만들고 그 동물이 잘 살게 해주는 것이 당연한 도리일 텐데, 그저 그 전에 있던 돼지우리에 집어넣고 손님들이 먹다 남은 닭이나 던져주고 그랬나보다. 우리 안에는 여기저기 썩어 가는 닭들 투성이었고 악취가 진동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동물원맨’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짓이었다. 인수조건은 간단했다. ‘필요하면 당신들이 마취해서 알아서 데려가고 내게 얼마만 보내라’였다. 주인은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우리 동물원에 표범이 없어서 어쩔 수 없어 여기까지 찾아 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이었다. 이 지경까지인지는 몰랐고 결국 위기에 처한 표범을 구조하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열흘 동안 먹지 않고 버틴 표범
 
 사각지대에 숨어있는 표를 끄집어 내기위해 사육사가 막대기로 공격을 유도했고 난 그 약간 드러나는 빈틈을 노려 마취제를 어깨 부위에 발사했다. 명중이었다. 여러 번 쏘면 서로 스트레스가 심하고 살짝 맞으면 약이 들어가다 말아서 약 용량을 짐작할 수 없어 위험하게 된다. 안으로 들어가서 본 표는 참으로 아름다운 표범이었다. 진흙 속에 핀 한 떨기 연꽃마냥 빛나보였다. 그때까지 내가 본 표범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하고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오랜 연륜을 가진 사육사도 “아! 이 표범 진짜 물건이네!” 했다. 그렇게 해서 표범을 구한 자부심과 보물을 발견한 듯한 뿌듯함으로 오는 내내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표는 예전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은 집에 좋은 음식을 주었지만 갑작스런 수송과 그동안 학대받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도통 먹지를 않았다. ‘한 일주일 안 먹으면 저도 먹겠지’ 생각했는데 열흘이 지나도록 사육사에게서 먹었다는 기별이 없었다. ‘뭐야 왜이래?’ 이제 기쁨은 점점 불안감으로 변해갔다. ‘아! 어쩌나? 다시 마취라도 해서 영양제 수액이라도 해야 하나? 그래봤자 날마다 그럴 수도 없잖아?’ 고민은 깊어가고 딱히 묘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보름째 ‘오늘은 할 수없이 수액이라도 놔주어야 겠다’ 굳게 결심하고 있던 순간, 사육사에게서 어제 준 소고기가 없어졌다고 연락이 왔다. “아! 그래요? 어디 숨겨둔 건 아니고 분명 먹었나요?” “아무래도 먹은 것 같아요. 아무리 찾아봐도 흔적이 없거든요.” 그렇게 표는 다시 먹기 시작했고 난 지독한 고민에서 해방되었다. 이름은 표범이라 부르기 편해서 그냥 ‘표표’ 하다 보니 ‘표’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녀석은 분명 암컷이었다. 하기야 표범 같은 암수가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에게 암수차별적인 이름이 뭔 의미가 있겠는가! 표는 외모도 끝내주었지만 함께 지내다보니 야생의 차가움과 애교쟁이 고양이의 따뜻한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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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드러내놓고 뒹굴 ‘애교쟁이’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고양이처럼 배를 드러내고 누워 뒹구는 친밀한 동작도 할 줄 아는 무섭지만 귀여운 표범이었다. 며칠 동안 못보다 가면 때론 철창을 대고 있는 손등에 가볍게 얼굴을 부비고 지나가는 친근함도 몸소 보여주었다. 아마 그건 표범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애정표현일 것이다. 그에겐 그의 고통을 덜어주고 돌봐준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 감사함을 표출할 줄 아는 그런 감성이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표 사육사가 열심히 무얼 만들고 있길래, “그건 뭐예요?” 하고 넌지시 물어보니 “아! 표범이 나무를 잘 타잖아. 안에 탈 나무다리를 한번 만들어 보려고.” “그래요. 그럼 저도 좀 거들게요.” 그래서 만든 두 통나무를 교차한 간단한 통나무다리에 표는 지금도 올라가 매일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사람들 감정은 다 마찬가지 인가보다. 나에게만 특별한 줄 알았는데 표는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었다. 그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상대에게 내보일 줄 아는 담백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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