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용, ‘고급 영문법해설’(박영사, 1994) 명사 편
 그리고 이런 개체를 낱낱이 또는 묶음으로 세기 위해 잔, 그릇, 사발, 말, 되 같은 단위성 의존명사가 발달했다. 이런 단위성 의존명사 또한 어느 옛이야기 한 편만 읽어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우리말에서 복수접미사 ‘-들’과 단위성 의존명사는 우리말의 특수한 성질 속에서 생겨나고 발달했기 때문에 서양의 ‘수 범주’하고는 처음부터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복수접미사 ‘-들’이 많이 쓰이는 현실을 보면, 우리 말글살이에 서양의 ‘수 범주’가 들어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문법에도 이제 ‘수 범주’가 중요해진 것일까. 한국 사람들도 이제 비로소 사물의 단·복수를 철저히 구별하기 시작하고, 사물을 ‘물체’ 중심으로 보고, 그 사물의 개체성(individuality)을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까. 또, 서양 말의 ‘수 범주’에 따라 사물의 단·복수를 구별하는 것이 한국어를 풍성하게 하고, 우리 말글살이를 더 편리하게 해 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현상은 한국말의 가장 큰 특징인 ‘현장성’과 경제성에 반하는 것이고, 또 이것은 한국말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고영근은 “‘-들’의 사용이 확대되는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하면서도,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의 영향도 그 이유의 하나일 것”이라고 진단한다(고영근·구본관, 《우리말 문법론》(집문당, 2016) 90쪽).

 우리 말글살이에서 복수접미사 ‘-들’이 많이 쓰이는 까닭을 간단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국어 문법이 우리 낱말의 ‘수’ 문제를 뚜렷하게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우리말은 명사의 단·북수, 다시 말해 ‘수 범주’가 서양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데도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서양의 ‘수 범주’로 ‘체언’ 편을 정리하지 않았나 싶다. 또 복수접미사 ‘-들’ 또한 서양의 단·복수 ‘수 범주’로, 그도 단순한 수(數·하나인가, 둘 이상인가)의 문제로 본 것이 문제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 말해 서양의 ‘수 범주’가 그저 사물의 단·복수 문제가 아니라 세상과 사물을 보는 눈, 사물의 ‘개체성’을 보는 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놓쳤다는 말이다. 이렇다 보니 영어 문법 교육도 우리말의 단·복수와 서양의 단·복수가 처음부터 다른 지점에 있다는 것이 무시된 채 서양의 ‘수 범주’ 중심으로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말글살이에서 ‘-들’이 무분별하게 쓰이는 까닭을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의 영향’에서만 찾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우리 국어 문법이 서양 문법 ‘수 범주’를 분명하게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 마찬가지로 우리말의 ‘수’ 문제를 정확하게 보지 못한 것에서 찾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우리 문법 체계 안에 들어와 있는 서양 문법 범주도 다시 한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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