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에 회자될 명장면을 만들어내다

▲ 영화 ‘로마’.
 온라인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는, 자신들의 플랫폼에서 독점적으로 공개할 자체 콘텐츠 제작에 나서고 있다. 일명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고 명명되는 이들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넷플릭스 온라인을 통한 공개를 목적으로 제작되지만, 봉준호 감독의 ‘옥자’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처럼 온라인 공개와 극장 개봉이 병행되기도 한다.

 넷플릭스가 기특한 것은, 이름난 감독들에게 창작의 자유를 허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명성을 얻은 유명 감독들에게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 주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로마’는, 감독을 존중하는 넷플릭스의 태도가 빛을 발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쳐 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감독의 예술가적 자의식이 발견된다. 카메라는 정사각형 블록바닥을 장시간 비추고 있다. 화면 밖으로는 일상의 소리들이 미세하게 들려온다. 얼마 후 프레임 안으로 물이 밀려들어온다. 그리고 물이 들어오는 것을 몇 차례 지켜보던 카메라가 머리를 치켜들면(틸트 업(tilt up)), 물청소를 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후에 알게 되지만 그녀의 이름은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다. 이제 카메라는 클레오가 청소를 끝낸 후 저택의 실내로 들어가는 장면까지를 담아낸다. 장면을 끊지 않고 긴 호흡으로 담아내는 롱테이크를 통해 감독은 클레오의 공간과 일상을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클레오는 저택에서 빨래와 청소, 요리 등 온갖 집안일을 하면서 네 아이까지를 보살피는 가정부인 것이다.

 그렇다고 클레오가 집안일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남자친구인 페르민을 만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르민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클레오를 두고 도망쳐 버린다. 클레오는 페르민을 수소문해 찾아가 당신의 아이를 가졌노라고 말하지만 페르민은 이를 무시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클레오는 만삭이 되었고, 페르민은 권총을 든 학살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영화는 클레오의 시선을 통해 1971년 우익무장단체인 ‘로스 알코네스(Los Halcones)’가 민주화를 열망했던 시위대를 무력 진압한 사건인 성체 축일 대학살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이렇듯 ‘로마’는, 멕시코시티에 있는 마을인 ‘콜로니아 로마(colonia roma)’의 저택에서 가정부이자 하녀로 살아가고 있는 클레오의 소소한 일상에서 시작해 역사의 복판으로 진입하는 영화다.

 그렇게 클레오는 감당하기 힘들지만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그녀의 곁에는 그녀와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는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부인이 있다. 소피아 역시 남편의 외도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편은 끝내 따로 살림을 차려 집을 나가 버린다. 그러니까 ‘로마’ 속의 남성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허세와 위선, 비겁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클레오와 소피아의 비슷한 처지는, 단단한 유대를 형성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펼쳐지는 바닷가 수평트래킹 롱테이크는 주제를 강화시키는 궁극의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카메라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클레오를 멈추지 않고 따라간다. 바닷물 옆에서 해변의 텐트로 다시 바닷물이 넘실대는 파도로 그리고 다시 모래사장으로 수평 이동하는 클레오를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클레오와 소피아 그리고 네 명의 아이들이 서로 부둥켜안으며 한 덩어리가 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바로 이 순간, 클레오는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서 소피아 가족과 하나가 된다. 이때의 롱테이크는 주제를 응축해내고 있는 영화 형식이라는 점에서 영화 역사에서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명장면이다.

 이쯤 되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을 롱테이크의 대가라고 지칭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 역동적인 롱테이크의 진수를 보여준 것도 그렇고, ‘로마’에서는 롱테이크를 주제에 맞게 구사하며 자신의 영화를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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