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일본원숭이·낙타·캥거루 …
주머니를 가진 동물들

 ‘명품가방’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실 그 명품들조차도 원래 동물들의 것이 아니었던가. 소, 악어, 타조, 뱀 등등. 몇몇 동물들도 누구도 괴롭히지 않으면서 아주 아주 실용적이고 멋진 그리고 짝퉁 없는 명품가방을 가지고 다닌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산고개 고개를 나 홀로 넘어서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서 올테야.” 난 이 산토끼 노래를 들으면 불편해 지는 부분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토끼가 알밤을 주어 온다는 말일까? 굳이 의인화 시키면 뭐 토끼가 가방을 메고 가서 주워 오겠지 하겠지만, 그냥 동물수준에서 보면 토끼는 아무 것도 주워올 수 없다.

 혹시 먹어서 배속에 넣어 오겠지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억지에 가깝다.

 그런데 동물들 중에서는 정말로 먹이를 주머니에 넣어서 날라 오는 동물이 있다. 바로 다람쥐이다. 다람쥐는 자기 입 안 양 볼 쪽에 두 개의 볼주머니를 가지고 있어 실제로 입 안 가득 도토리를 주워올 수 있다.

 물론 그래봤자. 밤 한두 개 도토리 10개 미만이지만굙 아무튼 볼을 터질 듯 가득 채워서 생(生)으로 옮길 수 있다. 이 주머니에 넣으면 절대로 빠지거나 분실할 위험조차 없다. 흔히 만화영화에서 다람쥐나 햄스터가 도토리나 해바라기씨 총을 입으로 쏘는 모습이 나오는데 바로 이런 탄통이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잘 관찰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대목이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신체 기능
 
 다람쥐 말고도 여러 원숭이 종들도 이런 볼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동물원에서 일본원숭이 새끼 한 마리가 한쪽 볼이 탱탱 부어 수술을 해 주었는데 바로 이 볼 주머니 안쪽 입구가 막혀 저장해둔 음식물이 그대로 안에서 부폐해 생긴 일이었다. 바깥에서 살짝 쨌는데 입안까지 구멍이 뻥 뚫어져 있어 처음에는 내가 수술을 잘못 했나 속으로 무척 당황했었다.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아마 안의 자연 구멍까지 꿰매 버렸을 것이다. 그랬으면 이 원숭이의 한쪽 볼주머니는 영영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주머니 하면 또 떠오르는 동물이 바로 낙타를 빼놓을 수 없다. 낙타는 등에 험프(hump) 즉 육봉이라는 하나 혹은 두 개의 혹을 늘 가지고 다닌다. 그 혹의 용도는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의 가방과 하나 다르지 않다.

 즉 예비 식량주머니이다. 먹이가 부족하면 이 소중한 가방 속 기름을 녹여 연명한다. 한 때 사람들은 이 물렁물렁한 것을 보고 거기에 물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째보니 물은 커녕 살도 없는 지방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비상 색(sac)은 사람에게는 무용하지만 낙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신의 선물이다. 그 색은 때론 내리쬐는 사막의 뜨거운 햇살을 차단해 주고 추위를 견디게도 한다. 사람에게나 낙타에게도 타고 다니는데 부드러운 쿠션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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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백(bag)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게 캥거루의 앞주머니이다. 포치(pouch) 또는 육아낭 이라고도 부른다. 이 포치는 그야말로 기능면에서는 가장 신성한 가방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아기를 담고 다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메는 아기보자기를 캥거루 포대기라 하기도 한다. 캥거루는 임신 후 한 달이 지나면 분만을 한다. 이 분만은 거의 어미에게 진통조차 주지 않는다. 태아가 정말 애벌레만큼 작기 때문이다. 이 태아는 나오자마자 자기 생에서 가장 위험한 모험을 해야 한다.

 30cm쯤 되는 거리에 있는 어미의 육아낭으로 골인해야 하는 일이다. 태아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어미의 털을 하나하나 잡고 유격 유격하며 그 먼 길을 아슬아슬하게 올라간다.

 그리고 드디어 육아낭 속으로 골인, 거기엔 그를 반기는 네 개의 찬란한 젖꼭지가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중 가장 먹음직스러운 것을 골라 꽉 물고 6개월 동안을 꼼짝 않고 지낸다. 이 시기의 육아낭은 바로 자궁이다.

 탯줄이 없는 캥거루는 배꼽조차 없다. 6개월이 지나면 새끼는 서서히 입구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기 시작하다 8개월쯤 되면 들락 날락을 시작한다. 10개월 되면 주머니에서 아주 독립한다.

 그때 쯤 안에는 또 하나의 아기가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주머니는 좀 채로 비지 않는다. 어미는 수시로 주머니를 열고 청소를 한다. 수컷은 주머니가 없다.
 
▲펠리컨 등 새들도 보조주머니
 
 코알라의 주머니는 입구가 뒤로 열려있다. 새끼는 어미의 뒷다리 사이로 나와 등 위로 올라가 세상구경을 한다. 캥거루나 코알라는 주머니가 좁은 관계로 거의 쌍둥이를 낳지 않는다. 말도 안 되지만 요즘 다 커서도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캥거루족’이라 부르기도 한다.

 많은 새들도 보조 주머니를 차고 있다. 식도에 딸린 모이주머니이다. 풍성한 먹이가 있다면 언제 다시 생길지 모르니 일단 모이주머니내로 최대한 저장한 후 조용한 곳에서 꺼내 먹는다. 육아 시에 이 주머니는 더욱 긴요하게 쓰인다.

 먹성 좋은 새끼를 위해 부모 새들은 모이주머니에 끊임없이 먹이를 채워 가지고 둥지로 날라 온다. 우리가 보기엔 이 주머니가 크면 클수록 좋겠다고 생각되지만 나는 새들의 특성상 몸무게와 에너지를 고려해 최적의 크기로 만들어 진 것이다. 펠리컨은 아래부리에 신축성이 좋은 큰 주머니의 가지고 있다.

 펠리컨은 수면위에서 한껏 입을 벌려 물과 작은 물고기를 한꺼번에 쓸어 담아 새우나 물고기만 걸러 먹는다. 다른 새들처럼 한 마리 한 마리 낚시질만 했으면 펠리컨의 몸집이 그렇게 커지진 못했을 것이다. 동물들도 다 나름대로 조물주가 선물한 위대한 명품 백 하나를 평생 아끼고 보살피면서 잘 활용하며 산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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