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새로운 캐릭터가 나오다

▲ 영화 ‘선희와 슬기’.
 고등학생인 선희(정다은)는 고급아파트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선희의 가족은 화목과는 거리가 멀다. 대화는 단절되어 있고, 엄마와 아빠는 언쟁을 일삼는다. 영화는 도입부의 짧은 몇 장면을 통해 선희가 어떤 환경에 놓여있는가를 효율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선희는 같은 반 정미(박수연)가 부럽다. 정미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 친구들은 경쟁하듯 정미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 선희도 정미의 눈에 들고 싶다. 그렇게 공연티켓을 선물해 정미의 환심을 사게 되고, 정미의 친구가 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선희는 정미의 입에서 뱉어진 험한 말을 엿듣게 된다. “(선희가)불쌍한 거 같아, 얼마나 자신감이 없으면 그러겠어.”

 정미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지만 정미가 내뱉은 이 한 마디는 선희가 딴 마음을 먹도록 한다. 그렇게 선희는 정미를 궁지에 몰아넣고자 계략을 꾸민다. 그러나 이 계략은 예기치 않게도 정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상황을 낳게 된다. 그렇게 선희는 타인의 죽음에 관여하면서 ‘저주받은 영혼’이 된다. 이에 선희 역시 스스로 죽기를 결심한다. 선희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숨을 거두고자 한다. 그러나 물속은 어머니의 자궁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선희는 다시 태어난다.

 선희는 다시 살아보기로 마음먹는다. 어떻게! 이름을 바꾸고 환경을 바꿔서라도. 그렇게 ‘최선희’는 ‘김슬기’가 된다. 슬기는 이제 보육원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씩씩하게 사는 것으로 죄의식을 떨쳐내고자 한다. 선희의 두 번째 인생(이 영화의 원제는 ‘Second life’다.)이 시작된 것이다.

 슬기로 이름을 바꾼 선희는 솔선수범하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이 인정 욕구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검정고시를 봐서 새 학교에 진학한 슬기는 새롭게 친구를 사귀게 되고, 이 곳 학교에서 선행을 베풀어 모범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선희(슬기)는 이 소식을 보육원의 원장 선생에게 전하고자 한다. 그러나 원장 선생 앞에서 이를 말하려는 순간 이 소식전달은 방해를 받는다. 선희(슬기)는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을 갈망하지만 이는 계속해서 지연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선희는 세상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영화는 이를 두 차례의 시각화를 통해 강조한다. 카메라는 교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선희를 잡고 있다. 이때 교실의 문이 열리더니 생일 케이크를 든 학생들이 선희의 등 뒤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케이크는 정미에게로 이동한다. 그리고 보육원의 생일잔치 때 역시 카메라는 케이크 앞에 있는 선희(슬기)를 잡고 있다. 그러나 잠시 후 카메라는 생일의 주인공인 보육아에게로 이동한다. 그러니까 선희는 태어나기는 했지만 세상의 주인공은 아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타인을 모방하려고 하는 선희(슬기)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선희(슬기)의 주체가 정립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선희(슬기)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까. 영화는 슬기의 인정 욕구가 쉽게 채워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선희(슬기)가 자신의 소재가 파악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하자 박차고 길을 나서는 것을 연출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는 차 안의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도 그렇다. 그렇게 ‘이름 불려 지기’에 실패한 선희이자 슬기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선희와 슬기’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불려 지기를 욕망하지만, 그 인정 욕구가 유예되는 ‘최선희’의 실존적인 현실을 다루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선희와 슬기’가 흥미로운 것은, 선희(슬기)가 이제까지의 한국영화 속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한 곳에 정착해 살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동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유목민을 한국영화는 갖게 된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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