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법으로 접근한 세월호 이후

▲ 영화 ‘생일’.
 좋은 이야기는 상처를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세월호 5주기에 맞춰 개봉한 ‘생일’도 그 중 한 편이다. ‘생일’은 우리 사회의 아물지 않은 상처인 세월호 이후를 정공법으로 접근한다. 그러니까 세월호 이후를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고, 세월호 이후 힘겹게 일상을 버티고 있는 한 가족에 집중하고 있다는 말이다.

 영화는 비행기 안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는 정일(설경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한국에 도착한 정일은 아파트를 방문하고 초인종을 누른다. 초인종을 연거푸 누르지만 집안에서는 기별이 없다. 그러나 집 안에는 순남(전도연)과 딸 예솔(김보민)이 있다. 순남은 예솔에게 입을 다물라고 시늉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대체 이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생일>은 이들 가족의 사연을 한 꺼풀 한 꺼풀씩 벗겨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렇게 관객들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들 가족의 사연을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며 세월호참사로 신음하는 한 가족의 비밀을 엿보게 된다.

 이렇듯 ‘생일’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세월호 이후를 접근하고 있는 영화다. 이런 이유로 감독은 정일이라는 인물을 상상해 낸다. 베트남에서 사업하던 정일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들의 죽음은 물론 아내와 딸이 고통 받고 있을 때 그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 그러니까 정일은 세월호 때문에 두 번이나 무책임한 인물이 되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돈벌이에 나선 결과 치고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런 정일에게 감정을 이입한 관객들이라면, 아내의 원망과 딸의 낯설어 하는 눈빛을 받으며 아내와 딸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정일을 십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관객들은 정일의 마음이 되어 순남과 예솔을 바라보게 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세월호로 신음하고 있는 이들 가족의 일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순남만 해도 그렇다. 감독은 세월호 유족으로서의 순남을 개별적인 존재로 부각시킨다. 이런 이유로 순남은 세월호 유족들과 멀찌감치 떨어져서 홀로 슬픔을 버티는 인물이 된다. 순남은 이미 죽은 아들의 옷을 사서 죽은 아들 들으라는 듯이 넋두리를 늘어놓고, 추모공원에서 맞닥뜨린 유족들이 슬픔을 애써 감추고 웃음 짓고 있는 것에도 “소풍 왔냐”고 독설을 퍼붓는다. 그리고 딸 예솔이 반찬투정을 하자 “오빠는 밥도 못 먹는데 반찬 투정을 해?”하며 예솔을 집밖으로 내쫓기도 한다. 물론 집밖에서 울고 있는 예솔을 끌어안고 슬픔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니까 순남은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엄마로서 슬픔을 견디는 방식이 각별하다. 그리고 예솔이도 죽은 오빠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예솔이는 갯벌 체험을 하러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에 기겁하고, 집안의 욕조에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물이 무섭다. 이렇듯 이종언 감독은 세월호 이후 삶이 뒤틀린 한 가족의 상처를 제시하며 관객들에게 이들 가족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세월호 이후를 대하는 이웃들의 언행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순남의 습관적인 울음소리 때문에 공부에 방해가 되어 시험에 낙방했다고 토로하는 옆집 학생의 말은 뼈아프게 들린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러 온 작은아버지는 보상금에 대해서 물어보고, 마트의 한 점원의 입에서도 보상금을 받아서 좋겠다는 말이 무심하게 흘러나온다. 그리고 세월호유가족 중 보상금을 받기로 한 사람이, 염치가 없어 유가족 모임에 나오지 못하는 것을 연출하며 돈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태를 고발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감독은 세월호 보상과 관련한 껄끄러운 언급도 피해가지 않으며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이렇게 영화는 순남의 가족들이 맞닥뜨리는 세월호 이후를 차분하고 성실하게 연출하며, 관객들에게 세월호로 가슴 아픈 이웃들의 마음을 헤아려 줄 것을 조심스럽게 당부한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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