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많이 받을 동울일수록
‘상심 증후군’ 커
 

 동물과 사람 간의 죽음에 대한 관념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마도 가장 큰 차이라면 두려움과 자각이 아닐까 싶다. 생각이 많은 쪽일수록 죽는 과정이나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한 두려운 감정을 더 많이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리 생각이 깊지 않을 것 같은 동물들의 경우는 아무래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보다는 덜하리라 데 생각이 미친다. 경험상으로도 사람 주검의 모습은 굉장히 끔찍스럽고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동물들은 살아있을 때와 별로 크게 표정의 변화가 읽혀지지 않는다. 그런 주검들을 늘상 지켜보아야 하는 나로서는 그거라도 정말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자발적으로 느껴지는 어떤 죽음들

 흔히 소가 도축장에 끌려갈 때 눈물을 흘린다는데, 어쩌면 사람들의 그런 느낌이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대관령 목장에서 일할 때, 비록 젖소지만 수많은 소들을 도축장에 직접 데려가 본 나로서는 한 번도 소들의 그 슬픈 눈물방울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개장수가 오면 개들이 알아서 꼬리를 사리는 것 역시 육감이라기보다는 그들에게서 풍겨오는 수많은 다른 개들의 냄새와 무언가 지배적이고 악의적인 분위기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보더라도 동물들의 죽음에 대한 관념은 인간들에 비해 그리 심각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 한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동물들은 죽음을, 먹이를 능동적으로 찾는 것처럼 자발적인 선택의 영역으로 두지 않나 싶은 의구심이 들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최근에 일어난 몇몇 사건들이 크게 자리한다.

 다람쥐원숭이가 오랜만에 새끼를 낳았다. 다람쥐원숭이는 이름 그대로 다람쥐만큼 작고 앙증맞은 원숭이이고, 낳은 새끼는 주로 등에 업고 다닌다. 그런데 어느 날 업고 다녀야 할 새끼를 어미가 안고 있었고 새끼의 머리는 이미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였다. 분명 새끼가 죽은 게 틀림없었다. 그런 험악한 꼴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줄 수 없어 긴 대나무 장대를 휘둘러 죽은 새끼를 강제로 빼앗고 나서 그걸로 모두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새끼를 빼앗긴 어미는 그 후 일주일 동안 구석에 처박혀 건들어도 미동도 하지 않고 먹이도 전혀 입을 대지 않더니 기어이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죽고 말았다. 부검상 내·외부적으로 죽음을 부를 만한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건 분명 자발적인 죽음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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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오냐”키울수록 박탈감 심해

 기증받은 애완용 토끼가 한 마리 있었는데, 보통은 철창 사이로 얼굴 냄새 익히기 기간을 두지만 그 날은 일손이 부족한 주말인 데다 유난히 토끼가 건강하게 보여 사육사가 그냥 기존 토끼 무리에 합류시켜 버렸다. 토끼들은 보기엔 얌전하고 평화롭게 보여도 동물계에선 텃세가 강하고 동종 살해(카니발리즘) 습성이 있는 동물로 유명하다.

이 토끼 역시 아무도 없는 저녁에 호된 신고식을 치룬 모양이다.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그 토끼가 털이 많이 엉킨 채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다. 그래도 정착해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통관의례려니 생각하고 따로 빼내기보다 그곳에서 잘 이겨내기를 바랐다. 그러나 며칠 안 가서 그 토끼 역시 별다른 상처도 없었는데 그대로 죽고 말았다.

이 역시 주인을 잃은 슬픔과 무리에서의 따돌림이 빚은 ‘상심 증후군(broken-heart syndrome)’ 때문이리라 여긴다. 특히 집안에서 “오냐오냐” 하고 키운 애완동물일수록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인간의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겪은 후 간혹 병이나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비록 그 지경까지 가지 않더라고 강한 스트레스는 항상 트라우마(trauma-마음의 상처)를 남겨 각종 만성 질병의 원인이 되며 수명을 단축시키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단지 동물과의 차이라면 동물들은 죽음을 선택하는 데 있어 인간보다는 조금 덜 고뇌한다고 보일 뿐이다.
최종욱 <광주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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