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충류사 항온·전기 울타리 기능 등 점검 과제

▲ 동물원에 정전이 발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체온 조절이 관건인 파충류들로 돌봄이 필요하다.
 동물원 터파기 공사 중에 정전이 일어났다. 사무실은 한 동안 난리가 났다. 매점 아이스크림이 다 녹고 컴퓨터가 꺼지고 어둠의 세상이 되고 저녁엔 돌아가며 비상근무를 서야했다. 이렇게 사정이 급하니 당장 복구하라고 원성이 자자했다. 정말 그 짧은 한동안 어지러이 세상이 돌아갔다.

 우선 나는 당장 동물들부터 걱정되어 동물사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넣고 체크해 보았다. 봄이고 따듯하고 하니 전기는 나갔지만 동물들에게 크게 불편할 게 없었다. 겨울이라면 파충류사, 기린사, 원숭이사, 코끼리사, 하마사, 앵무새사, 미어캣사, 캥거루사는 기온에 따라서 난방을 해야 한다.

그 중 가장 민감한 곳이 자기 스스로 체온을 조절을 못하는 변온동물인 파충류사이다. 이들은 늘 20℃ 이상은 유지해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한번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서 저온쇼크를 받게 되면 좀처럼 회복되기 힘든 동물들이다. 그래서 그 어디보다 파충류사에 먼저 달려 올라갔다굙 다행히 파충류 사육사는 하루정도 가지고는 온도가 많이 떨어지지 않으니 하루 이틀은 문제없이 버틸 수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동물원 친환경 에너지 확산 계기로
 
 다음 생각나는 건 안전 문제였다. 동물원은 위험한 동물들의 탈출을 막고 동물들이 밖으로 빠져 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동물탈출 방지 방법을 가지고 있는데 모트(함정), 펜스, 철창, 유리창, 지붕, 전기울타리가 그런 것들이다.

그 중 특히 요즘 같은 개방식(open concept) 동물사에서는 야외에 보일 듯 말듯 설치해서 동물들이 그곳에 닿으면 움찔해 다시는 다가올 수 없게 만드는 전기울타리 방식이 각광받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래서 만일 전기가 끊어지면 당장 문제시 되는 게 동물들 탈출 문제였다.

다행히 동물들은 이미 선행학습이 되어 있어 혹시 단전되더라도 반사적으로 전기울타리 근처에도 안 온다. 그래도 영리하고 호기심 많은 작은 원숭이들은 혹시나 알고 탈출할 수 있어 우선 원숭이들은 긴급히 내실에 가두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고 나니 더 이상 생각해보아도 특별히 동물들에게 해 줄 일이 없었다.
동물원에 정전이 발생하면 전기 울타리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호랑이 등 대형 동물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컴퓨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업무가 중단되었다. 모두다 손을 놓고 나니 비로소 고개도 들고 사람도 보고 자연도 보고 동물들도 오랜만에 둘러보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곳에 발령받아놓고 동물원 한 바퀴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그것 이외엔 사람들도 크게 불편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편안해 보였다.

 정전 두시간만에 비상발전기가 돌았다. 이것은 기름으로 돌린다. 이같은 일시적인 정전 사태에 대비해 예비해둔 장치이다. 아마도 한 달 이상은 기름만 제공된다면 이 녀석이 어느 정도 버텨줄 것이다. 효율을 위해서 두 시간 끊고 두 시간 돌리는 방식을 반복했다. 이참에 생각해 본건데 파충류사에는 예비 장치로 지붕위에 태양광 장치를 해서 이런 사태에 대비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또한 동물원 전체에 친환경 에너지를 끌어들이는 좋은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동물원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차량출입을 제한하고 전기차를 써왔는데 최근의 미세먼지 사태에서 의도치 않게 대비가 이미 이루어져 왔던 셈이다. 이 동물원 모델을 좀 더 확장하여 도심 한 가운데에서부터 동심원으로 확대해 나가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블랙아웃, 본디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만일 일주일이 간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문제는 없지만 지금 전기로 물 여과기를 돌리고 있는 해양동물사의 물 오염이 심각해질 것이다. 파충류사도 점점 문제가 심각해질지 모른다. 원숭이들도 계속 답답한 실내에만 가두어 둘 순 없다. 그리고 전기차량들도 멈추어야 한다.

 한 달가량 간다면 파충류사에 예비발전기를 따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매점은 냉장고를 가동할 수 없어 당분간 문을 닫아야 한다. 호랑이나 사자, 곰들도 전기가 나갔다는 걸 점점 눈치 채고 울타리나 벽을 타려고 해 위험해 질지도 모른다. 해양 동물사는 물 양을 대폭 줄이고 그것도 사람이 날마다 넣고 빼는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동물들에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모든 걸 전기에 의존하는 사람들만 엄청 불편해 질 것이다. 숙직자들은 모닥불 피고 랜턴을 걸고 날을 세워야 할지도 모른다. 상상해 보면 오히려 그것이 더 동물원다운 낭만적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겪어보니 동물들에게 블랙아웃은 별 것이 아니었다. 서서히 본디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련의 과정일 뿐이었다. 만일 전 세계가 블랙아웃이 된다면, 동물들은 차례로 자연에 풀어주면 모두 알아서 적응하고 잘 살아갈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건 점점 피폐해져 가는 내 모습, 즉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
최종욱 <광주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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