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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삶]동물원 정전 사태 단상
파충류사 항온·전기 울타리 기능 등 점검 과제
최종욱
기사 게재일 : 2019-05-13 06:05:01
▲ 동물원에 정전이 발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체온 조절이 관건인 파충류들로 돌봄이 필요하다.
 동물원 터파기 공사 중에 정전이 일어났다. 사무실은 한 동안 난리가 났다. 매점 아이스크림이 다 녹고 컴퓨터가 꺼지고 어둠의 세상이 되고 저녁엔 돌아가며 비상근무를 서야했다. 이렇게 사정이 급하니 당장 복구하라고 원성이 자자했다. 정말 그 짧은 한동안 어지러이 세상이 돌아갔다.

 우선 나는 당장 동물들부터 걱정되어 동물사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넣고 체크해 보았다. 봄이고 따듯하고 하니 전기는 나갔지만 동물들에게 크게 불편할 게 없었다. 겨울이라면 파충류사, 기린사, 원숭이사, 코끼리사, 하마사, 앵무새사, 미어캣사, 캥거루사는 기온에 따라서 난방을 해야 한다.

그 중 가장 민감한 곳이 자기 스스로 체온을 조절을 못하는 변온동물인 파충류사이다. 이들은 늘 20℃ 이상은 유지해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한번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서 저온쇼크를 받게 되면 좀처럼 회복되기 힘든 동물들이다. 그래서 그 어디보다 파충류사에 먼저 달려 올라갔다굙 다행히 파충류 사육사는 하루정도 가지고는 온도가 많이 떨어지지 않으니 하루 이틀은 문제없이 버틸 수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동물원 친환경 에너지 확산 계기로
 
 다음 생각나는 건 안전 문제였다. 동물원은 위험한 동물들의 탈출을 막고 동물들이 밖으로 빠져 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동물탈출 방지 방법을 가지고 있는데 모트(함정), 펜스, 철창, 유리창, 지붕, 전기울타리가 그런 것들이다.

그 중 특히 요즘 같은 개방식(open concept) 동물사에서는 야외에 보일 듯 말듯 설치해서 동물들이 그곳에 닿으면 움찔해 다시는 다가올 수 없게 만드는 전기울타리 방식이 각광받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래서 만일 전기가 끊어지면 당장 문제시 되는 게 동물들 탈출 문제였다.

다행히 동물들은 이미 선행학습이 되어 있어 혹시 단전되더라도 반사적으로 전기울타리 근처에도 안 온다. 그래도 영리하고 호기심 많은 작은 원숭이들은 혹시나 알고 탈출할 수 있어 우선 원숭이들은 긴급히 내실에 가두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고 나니 더 이상 생각해보아도 특별히 동물들에게 해 줄 일이 없었다.
동물원에 정전이 발생하면 전기 울타리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호랑이 등 대형 동물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컴퓨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업무가 중단되었다. 모두다 손을 놓고 나니 비로소 고개도 들고 사람도 보고 자연도 보고 동물들도 오랜만에 둘러보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곳에 발령받아놓고 동물원 한 바퀴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그것 이외엔 사람들도 크게 불편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편안해 보였다.

 정전 두시간만에 비상발전기가 돌았다. 이것은 기름으로 돌린다. 이같은 일시적인 정전 사태에 대비해 예비해둔 장치이다. 아마도 한 달 이상은 기름만 제공된다면 이 녀석이 어느 정도 버텨줄 것이다. 효율을 위해서 두 시간 끊고 두 시간 돌리는 방식을 반복했다. 이참에 생각해 본건데 파충류사에는 예비 장치로 지붕위에 태양광 장치를 해서 이런 사태에 대비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또한 동물원 전체에 친환경 에너지를 끌어들이는 좋은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동물원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차량출입을 제한하고 전기차를 써왔는데 최근의 미세먼지 사태에서 의도치 않게 대비가 이미 이루어져 왔던 셈이다. 이 동물원 모델을 좀 더 확장하여 도심 한 가운데에서부터 동심원으로 확대해 나가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블랙아웃, 본디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만일 일주일이 간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문제는 없지만 지금 전기로 물 여과기를 돌리고 있는 해양동물사의 물 오염이 심각해질 것이다. 파충류사도 점점 문제가 심각해질지 모른다. 원숭이들도 계속 답답한 실내에만 가두어 둘 순 없다. 그리고 전기차량들도 멈추어야 한다.

 한 달가량 간다면 파충류사에 예비발전기를 따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매점은 냉장고를 가동할 수 없어 당분간 문을 닫아야 한다. 호랑이나 사자, 곰들도 전기가 나갔다는 걸 점점 눈치 채고 울타리나 벽을 타려고 해 위험해 질지도 모른다. 해양 동물사는 물 양을 대폭 줄이고 그것도 사람이 날마다 넣고 빼는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동물들에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모든 걸 전기에 의존하는 사람들만 엄청 불편해 질 것이다. 숙직자들은 모닥불 피고 랜턴을 걸고 날을 세워야 할지도 모른다. 상상해 보면 오히려 그것이 더 동물원다운 낭만적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겪어보니 동물들에게 블랙아웃은 별 것이 아니었다. 서서히 본디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련의 과정일 뿐이었다. 만일 전 세계가 블랙아웃이 된다면, 동물들은 차례로 자연에 풀어주면 모두 알아서 적응하고 잘 살아갈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건 점점 피폐해져 가는 내 모습, 즉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
최종욱 <광주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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