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정면으로 바라보다

 나는 봉준호 감독의 최고작은 ‘살인의 추억’(2003)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봉준호 감독이 연쇄살인범을 잡지 못한 무기력했던 시대를 탁월하게 구현해 낸 솜씨는 가히 일품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화들도 훌륭했다. ‘괴물’(2005)에서 주한미군기지에서 무단 방류한 독극물을 먹고 자라난 한강의 괴물을 상상해 낸 솜씨는 대단했고, ‘마더’(2009)는 ‘전원일기’를 통해 구축된 김혜자의 ‘국민 어머니’ 신화를 깨트린 것에 놀랬다. 그러나 ‘설국열차’(2013)와 ‘옥자’(2017)는 실망했다. 두 편의 영화에서 봉준호는 지구인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 노림수가 빤히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봉준호가 괜히 ‘세계’를 걱정하는 척 하지 말고, 한국인답게 한국의 이야기를 해주면 어떨까하고 내심 바랐다. 그런 점에서 ‘기생충’은 반가웠다. ‘기생충’은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반지하에 살고 있는 기택(송강호)의 가족이 있다. 부모와 자식 두 명으로 구성된 이들 가족은, 현재 이렇다 할 직업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장남 기우(최우식)가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의 집에 과외교사로 들어가게 되고, 이를 발판삼아 이들 가족은 대저택에서 일자리를 하나씩 꿰차게 된다. 그렇게 딸은 미술 과외 선생님이 되고, 아버지는 운전수가 되며, 어머니는 가정부가 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살길이 막막했던 가난한 가족이 대저택에 사는 가족들을 만나면서 펼쳐지는 해프닝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되묻고 있는 영화다.

 ‘기생충’은 두 가족의 비교를 통해 같은 땅에서 같이 살고 있지만 누리는 것은 똑같지 않은 현실을 고발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할 것만 같은 ‘햇볕’만 해도 그렇다. 반지하에 살고 있는 기택의 가족이 하루 중에서 짧은 시간 동안만 햇볕을 볼 수 있다면, 박사장네 가족은 통유리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이 당연하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두 집의 구조를 통해서도 대한민국의 현재를 진단한다. 기택의 가족이 살고 있는 반지하는 이들 가족이 하층민임을 곧바로 지시한다. 박사장의 저택은 의미심장하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이 집은 널찍한 정원이 딸린 현대식 이층 양옥으로 실내의 인테리어는 최첨단을 자랑한다. 이 저택의 설계가 흥미로운 것은, 지하실 밑에 또 다른 지하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영화 속의 인물들은 2층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거나 지하공간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는다.

 영화 속의 계단은 계급에 대한 은유다. 능력과 요령이 있는 사람은 이 계단을 밟고 위로 상승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계단 아래로 추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계단의 영화적 활용은 봉준호 감독의 김기영 감독에 대한 오마주라 할 만하다. ‘하녀’(1961)에서 하녀는 그토록 계단을 밟고 오르며 신분상승을 꿈꾸었지만 결국 좌절되기 때문이다.

 두 가족에 대한 비교는 폭우가 쏟아진 날을 전후로 해서 정점을 찍는다. 폭우로 기택의 가족이 체육관 신세를 져야한다면, 박사장네 가족은 비가 그친 다음 날 정원에서 파티를 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없는 사람에게는 재앙이지만, 있는 사람에게는 미세먼지를 씻어내 청명한 하늘을 보게 해준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아이러니의 나라다. 그런 점에서 이 모순이 한계치에 다다른 시점에서 터져 나온 폭력의 연쇄는 당연한 수순이다. 가장 밑바닥에서 기생충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 그것마저도 위협을 받게 된다면, 죽기를 각오하는 폭력이 자행될 수도 있음을 이 영화는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생충’은 대한민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묻지마 살인’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그러니까 봉준호 감독은 그 폭력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이제는 따져 물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대한민국의 관객들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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