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동물,원’.
 지난 9월7일 광주극장에서 영화 ‘동물,원’ 상영 후 왕민철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됐다. 이날 사회는 필자가 맡았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 내용을 독자들께 전한다.

 -참 좋은 영화를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일반 짤막하고 즐거운 동물 프로들과는 달리 제겐 조금 불편하고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마치 영화 기생충처럼요. 아마 이 영화의 속살을 너무 잘 알고 있어 그런 모양입니다. 관객들은 제발 저와 좀 다른 느낌으로 봐 주셨길 은근히 바랍니다. 이 영화는 크게 몇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나이든 호랑이의 죽음, 표범 구름다리 만들어주기, 물범 초롱이의 탄생과 이별, 유황앵무새 인공 포육 그리고 삵 인공수정 과정 같은 이야기들을 위주로 동물원 수의사들과 사육사들의 잔잔한 이야기들로 엮으신 게 맞나요?

 △왕: 3년 동안 그냥 큰 주제 의도 없이 지켜보며 찍었는데, 찍고 나니 몇 가지 주요 테마가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고생하신 동물원 배우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국내 동물원에 대한 기록이 너무 없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비 인기 분야의 영화를 굳이 애써 만드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왕 : 우연히 행사차 청주동물원에 갔고 그곳에서 영감을 받아 이곳에 대한 영화를 한번 찍어보자 생각했습니다. 평상시 동물 주제에 관심이 좀 있었는데 관람객의 시선이 아닌 동물원의 시선으로 그 안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제목을 그냥 ‘동물원’이 아닌 ‘동물,원’으로 지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왕 : 동물원이라하면 유원지 느낌이 강해서 동물과 원은 구별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해놓으니 영화가 검색이 잘 안 돼서 괜히 그랬다 생각했습니다.(웃음)

 -아마도 사육사나 수의사들이 지금의 동물원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생각보다 낮다는 것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그런 태도들이 외부인으로서 어떻게 보이시나요?

 △왕 : 촬영 중 그런 이야기들을 종종 들었는데 아무래도 동물원에 대한 애정이 깊고 뭘 스스로 해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나온 말들인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동물사 울타리나 시멘트 우리가 많이 비춰지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촬영기법상 울타리를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저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사진 찍거든요) 이런 구도는 일부러 의도하신 건가요?

 △왕 : 물론 그런 기법도 가능하지만 원래 동물원이라는게 태생적으로 그런 곳이라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저에게 투영된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동물원에선 수의사와 사육사 간에 작은 갈등들이 늘 존재합니다. 사육사는 보호자 입장이고 수의사는 의사 입장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건데요. 혹시 그런 기류 같은 걸 느끼신 적이 있는지 그리고 그럴 땐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왕 : 네! 느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호랑이 수술에 대해 그냥 수술 안하고 편안히 보냈으면 하는 사육사와 수술해서라도 한번 고쳐보자 하는 수의사의 마음 속 대립이 엿보입니다. 각자의 입장이 있고 수의사도 또 다른 동물을 위해 무리하더라도 한번 해 보자는 시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동물원은 선진국보다 10년~20년 정도 뒤져있다고 봅니다. 이런 발전 장애요소가 전문인력부족이나 사회적인 인식부족, 시스템 부재 같은 것 중 어느 쪽이라고 보시는지요?

 △왕 : 글쎄요! 동물원마다 환경이 다 다른 게 문제입니다. 동물들이 어디가서라도 똑같은 대우를 받을 통합적인 기준이나 시스템 같은 게 당장 필요하다 여겨집니다.(우문현답)

 -동물원은 매일 새로운 일들이 발생하는 곳인데 혹시 연속해서 2~3편을 찍을 생각은 없으신지요?

 △왕 : 영화만 잘되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당연히 또 만들고 싶습니다.

 -물범 초롱이가 한달 만에 어미에게서 떨어져 홀로 키워지고 또 다른 낯선 동물원으로 가야했는데 이런 동물원의 동물들의 이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왕 : 동물사가 좁아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이곳 광주에서 잘 적응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제 속으론 무척 안도를 했습니다.

 -앵무새 새끼를 새장에서 데려다 인공포육 시키고 초롱이를 붙잡아서 억지로 먹이 먹이는 데, 혹시 그냥 운명에 맡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셨는지요?

 △왕 : 동물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자연이냐 생명이냐를 선택하라면 아무래도 전 생명 쪽입니다.

 -흔히 동물행동풍부화(엔리치먼트)의 일환으로 표범 구름다리 만들어 주기, 다람쥐원숭이 페트병 속 먹이 찾아 먹기, 곰 해먹 만들어주기 같은 걸 했는데요. 지켜보면서 어떤 감흥을 받으셨는지요?

 △왕 : 네 그런 과정 자체를 영화에 비중 있게 넣은 게 우리가 모르는 동물원 사람들의 동물에 대한 애정과 숨은 노고들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삵의 인공수정같은 어렵고 실패하기 쉬운 일들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걸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왕 : 그런 일들은 동물원의 존재이유와 영역확장 면에서 매우 중요한 시도라고 봅니다. 아울러 청주동물원에서도서 참여하고 있는 사육 반달곰 셀터(안식처)만들어 주기 사업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동물원 사람들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어떨 때(대전 퓨마사건처럼) 가장 비난받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데 이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왕 : 그런 오해와 안타까움 들이 있습니다. 제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동물원 사람들도 일반인들과 생각이 다르지 않구나. 단지 자기가 선택한 직업으로서 이곳에 들어 온 것이고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만큼 그들에 대한 나쁜 편견과 오해는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
영화 ‘동물,원’.|||||

 -촬영하면서 동물원 동물들을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해 보셨는지요?

 △왕 : 아무래도 동물들이 더 자연적인 상태에서 살면 더 행복해지겠지요. 영화를 통해 관심이 확대되면 무언가 변화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중에 참 주옥같은 동물원 사람들의 독백 같은 대사가 많았습니다. ‘동물들은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는다.’ ‘동물들을 다 풀어주고 싶다.’ ‘그냥 스스로 먹을 때까지 기다려 주면 안 될까요?’ ‘저도 사실 동물원이 싫어요.’ ‘동물들이 지쳐 보이지 않고 행복해 보였으면 좋겠어요.’ 일부러 이런 대화들을 따로 편집하여 들려주셨나요?

 △왕 : 아무래도 제 주관이 좀 개입되었지요.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많이 아파하는 사람들이란 걸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부담스런 질문들은 제가 받아야 마땅하지만, 오늘은 그래도 감독님께 반대로 던지니까 이 자리가 무척 편안했습니다. 이런 진솔하고 주제성 높은 좋은 영화 만들어주셔서 동물원 맨으로서 무척 감사드리고 이 영화가 꼭 성공하여 ‘동물,원’의 놀랍고도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일파만파로 전해졌으면 합니다. 오늘 대화 정말 유익하고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동물, 원’ 파이팅!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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