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대를 살았던 세 여성 투사들의 삶

▲ 영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임흥순 감독은 미술작가로 출발했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설치, 사진, 영상 등을 통해 이주 노동자와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소외된 목소리를 작품 속에 담았다. 그러나 임흥순은 자신이 천착하고 있는 예술의 주제가 미술 안에서만 머무는 것에 갑갑함을 느꼈다. 그렇게 미술 밖으로 나가고자 선택한 것은 현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였다.

그러나 임흥순 감독이 선택한 다큐멘터리는 여느 다큐멘터리와 다르다. 그는 인터뷰와 극을 오가고, 실제 촬영과 재연장면을 뒤섞으며,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허문다. 그러니까 임흥순의 다큐멘터리는 현실에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임흥순은 ‘비념’(2013), ‘위로공단’(2015), ‘려행’(2016)을 찍었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9) 역시 전작들과 다르지 않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았던 3명의 투사들을 조망하면서 실로 다양한 표현 방법을 강구한다. 기본적으로 세 여성의 삶을 재연하는 것은 물론, 그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 그리고 그녀들이 쓴 책과 일기를 통해 그녀들의 생각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 여기에다 그녀들의 무덤과 유품을 보여주고, 영혼을 위로하는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들이 누볐던 산천에 도착한 카메라는, 그녀들의 감정과 역사를 품은 산과 물과 하늘의 이미지를 담아낸다. 심지어는 세 여성의 과거의 삶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들에게 역사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소감을 묻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세 여성의 삶을 오롯이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관객들은 정정화(1900~1991)와 김동일(1932~2017) 그리고 고계현(1932~2018)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임흥순 감독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여성들을 우리의 눈앞에 기어코 불러내는 것이다. 정정화는 일제강점기 조선과 중국을 오가며 임시정부의 자금을 전달하던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리고 김동일은 4·3항쟁 당시 무장대와 함께 한라산에 올랐고, 이후 일본으로 밀항해 그곳에서 도시락 가게를 운영했다.

그리고 고계현은 한국전쟁 직후 지리산에서 3년간 빨치산으로 활동했고, 광주에선 5·18을 겪었다. 그러니까 관객들은 도처에 죽음의 기운이 뻗친 고난의 시대를 온몸으로 뚫고 나간 세 여성의 삶과 마주하며 역사 앞에 서 숙연해지는 것이다.

 이들 세 명의 투사 중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던 정정화의 삶도 신산하긴 하지만, 분단 전후의 시대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김동일과 고계현의 여정은 이념 전쟁의 소용돌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영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그렇다. 남과 북은 70년 넘게 분단 상태다. 남한은 해방정국에서 단독선거(1948.5.10)를 통해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북한 역시 자신들의 방식을 통해 국가 건설을 진행시켰다. 그리고 그 분단의 여파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로 갈려 서로를 혐오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카메라가 두 집회의 현장을 기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7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분단의 흉터는, 영화 속의 두 인물을 통해서도 강조된다. 고계연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고 있는 윤수련은 탈북여성으로 인터뷰에서 두만강을 건너지 못하는 꿈을 꾼다고 토로하고, 북의 가족들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한다. 그리고 백운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영승은 비전향장기수로 36년을 복역하다 풀려났다. 이렇듯 영화는 세 인물의 삶을 조망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분단국가의 현재 모습을 직시하는 것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매우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기는 하지만,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거나 감동을 주고자 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저 다양한 주제를 전시해놓고 관객들이 그 주제를 찾아내기를 바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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