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폐사 벌의 사체를 부검하다

 조용한 아침을 깨고 갑자기 부검 의뢰가 들어왔다. 그때까지 난 부검을 보조하는 입장이라 옆에서 전화 대화 내용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벌이 500마리 넘게 집단으로 죽었다구요? 성충들이 죽어요, 애벌레가 죽어요? 아! 성충, 애벌레 다 죽어 나간다구요? 그래요 그럼 한번 가서 보지요. 거기가 어디라구요. 아! 예!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오후에 양봉농가에 한번 가보세! 카메라 챙기고, 벌 담아올 샘플병과 핀셋도 잘 챙겨.” 그래서 우린 그날 오후에 광주 남구의 지하철역사 뒤편 양봉농가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는 말로만 듣고선 상황파악이 잘 안되었다. 도착해보니 현장에 주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주인이 주는 모기장으로 만든 안면보호 모자를 쓰고 안으로 들어갔다. 산자락 밑 무덤 곁의 평평한 풀밭에 나무로 만든 직사각형의 양봉상자가 여기저기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고 벌들이 주위를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당시는 4월 초인데, 3월말부터 죽기 시작하여 거의 1/5 가량이 죽어나갔다고 했다. “시에서 준 부저병약이랑 그런 것도 잘 방제 했는데도 그러네요. 20년 동안 해온 일이지만 이번처럼 심각한 건 난생 처음이에요.”

 실은 나도 벌의 병성진단은 처음 나와본 터라 일단 벌 키우는 것이 너무 신기했지만, 병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다만 예전에 시청 근무할 때 부저병 등의 예방을 위한 ‘벌통 훈증제’를 나눠준 기억이 있어 그 병명 정도만 알 뿐이었다. 동행한 여러 해 동안 병성감정을 해온 연구사 선배는 익히 이 질병을 아는 듯 여유가 있었다. “성충 벌들은 꼭 바깥에 나와서 죽어요. 그것도 참 희한해요. 마치 안에 전염을 안 시키려고 그러는 것 같더라구요.” “미물들이 그렇게까지 생각할까요?” 흠! 그래요. 저희도 그건 잘 모르겠네요.

 죽은 벌들을 수거했는데 아직 약간 살아서 비틀거리는 것도 함께 수집했다. 혀(대롱모양)가 나온 것과 안 나온 것도 구별해 모았다. 혀가 나온 것과 안 나온 것도 병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아! 새로운 걸 알았다.
벌집을 열어 안에 든 죽은 애벌레들도 함께 따로 수집했다. 육각형(사실 원모양으로 더 보임)의 전형적인 벌집에는 꿀을 모으는 방과 애벌래가 들어 있는 방이 거의 구분없이 흩어져 있었다. 애벌레가 빠져나가면 그 빈방에 꿀을 모으나? 신입에게는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축주의 말도 매우 신기했다. 바깥에 나가서 죽는다는 그 말! 아 동물들의 조직사회란 그런 거구나. 죽은 장소도 스스로 가려야 하는구나. 그렇다면 사람보다 더 낳네.

 이 벌들은 양봉꿀벌이라고 했다. 양봉, 한봉 다 똑같이 보이는데 참 헷갈리는 말이었다. 그리고 초봄에는 진달래나 생강나무 꽃 정도로 따로 꽃이 많이 없어 굶어 죽지 않으려고 설탕물을 먹인다고 했다. 질은 좀 떨어져도 벌 뱃속에 들어가 뱉어내면 꿀이 되는 건 마찬가지라고. ‘신토불이’처럼 먹는 것에 따라서 꿀 성분이 많이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벌들은 주변 산으로 꿀을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최근의 봄은 벌들이 활약하기에는 이상 기온 탓인지 아직은 너무 추웠다. 돌아오는 길에 아마도 추위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 추론도 해보았다. 너무 빨리 동면에서 깨어난 것이고 추위가 갑자기 들이닥쳐 그러지 않았을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결론이었다.

 연구사 선배는 “이런 건 대부분 바이러스성인 봉아낭충병”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벌을 부검했다. 머리, 가슴, 배 순으로. 현미경상에서 해야 할 판이었지만 그냥 육안으로 했다. 그리고 몇 마리 벌의 내장을 섞어 잘 갈아서 봉아낭충병 바이러스에 대한 PCR 검사를 했는데 모두 음성이었다. 그러자 역시 추위 때문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봉아낭충병이라면 애벌레만 죽어야지 왜 큰벌까지 많이 죽었을까? 혹시 봄에 다발한다는 기생충병인 노제마병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선배 모르게 얼른 벌 한마리를 끄집어내어 위와 장액을 짜낸 후 현미경을 살펴보았다. 혹시나 노제마 아포가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가정에서였다. 연구사 선배를 무시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좀 더 가능성을 살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귀한 기생충 아포는 발견되지 않고 꽃가루만 현미경상에 가득했다. 지저분하게 누렇게만 보이던 벌똥이 온통 꽃가루라니…. 현미경상에 보이는 세상은 분명 아름다운 꽃 누리 세상이었다.

 벌똥에 완전히 반해버렸지만 결국 찾는 아포는 잘 모르겠고 보이지도 않았다. 일단 검사는 접고 그래도 성충 죽은 것까지 감안해서 노제마병 가능성을 한번 타진해 볼 수 없냐고 감히 말씀드렸다. 아무말 없으시더니 다음 날 어느새 노제마병 PCR 프라이머를 구입해 검사하고 계셨고 드디어 애벌레 어른 벌 모두 양성이 나왔다. 완벽한 진단 확정이었다. 그리고 농가에 연락해 구충을 잘 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일은 마무리 수순을 밟았다.

 당시 작은 벌 부검을 통해 정말 벌이 꿀과 꽃가루를 식량으로 먹고 꿀을 만드는구나 하는 걸 알았고, 작은 차이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게 바로 부검 검사이고, 꼭 육안으로 안 보이다고해서 다가 아니고 나노단위까지 의심의 칼을 깊게 파고들어야 진단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PCR이란 기계가 있어 우린 너무나 편리한 감염병 질병진단의 신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게 없었으면 이 병은 눈알 빠지게 한 마리 한 마리 사체 똥을 들여다 봐야하든지 아니면 지레 포기해 버리고 엉뚱한 결론을 내렸을지 모른다. 그리고 농가는 결국 대책없이 더 많은 벌들을 잃게 되고 말았을 것이다.
최종욱<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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