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형적 플롯의 실험

▲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돈 가방을 놓고 각각의 인간 군상들이 사투를 벌이는 영화를 우리는 종종 만난다. 얼른 생각나는 영화는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다. 이 영화는 ‘돈 가방 영화’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인물이 돈 가방을 손에 쥐었다가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에게 추격당하는 이야기로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 역시 돈 가방을 쟁취하기 위해 혈안이 된 인간들의 이야기다. 영화의 포문을 여는 장면 역시 돈 가방이다. 클로즈업 된 돈 가방이 누군가의 손에 들려져 옮겨지고 있는 롱테이크 장면이 영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목욕탕에서 일하는 중만(배성우)이 누군가가 놓고 간 돈 가방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돈 가방의 주인은 누구일까. ‘지푸라기’는 돈 가방의 행적을 ‘비선형적인 플롯’으로 추적하는 영화다.

 비선형적인 플롯이라는 말이 조금 어려울 수 있으니 이해를 돕는 것이 좋겠다. 드라마 구조에는 시작과 중간이 있으며 파국과 결말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인류가 만들어 낸 모든 이야기들은 처음, 중간, 끝으로 구성되는 3막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꾼들은 이를 신봉하며 따랐다.

 그러나 새로운 이야기를 고민하는 이야기꾼들은 이를 거역하기도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은 영화가 기승전결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승전결 그리고 기로 마무리 지으며 1994년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그러니까 ‘펄프픽션’은 비선형적 이야기 구조의 영화로 관객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던 것이다. 이후로 타란티노를 참고한 영화들은 부지기수로 등장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지푸라기’역시 타란티노의 영향아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6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빚, 호구, 먹이사슬, 상어, 럭키 스트라이크, 돈 가방 등의 소제목을 쓴 후 각 장의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각 장에서 캐릭터 설명을 포함하여 각 인물들이 돈이 필요한 이유를 연출한다. 그렇게 관객들은 이야기를 따라가며 내러티브가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를 따라가던 관객들은 ‘상어’ 장(章)에서 혼란을 느꼈다가, ‘럭키 스트라이크’ 장(章)에서 돈 가방을 들고 목욕탕에 들어서는 태영(정우성)의 모습을 발견하며 이야기의 어순이 바뀌었음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를 배열한다면 기(起)에 해당되는 대목을 맞닥뜨리며 관객들은 혼돈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듯 이 영화는 기승전결 구조가 아닌 승전기결 구조의 플롯을 실험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영화의 주인공인 연희(전도연)를 극이 전개된 후 1시간 정도가 흐른 후에야 등장시킨 것도 대단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뒤늦게 등장하기는 했지만 연희는 입체적인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며 구원투수를 자임한다. 연희는 상황에 따라 시시 때때로 변모하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다면적인 인물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여기에다 이 영화는 폭력 장면의 연출에 있어서도 지능적이다. ‘지푸라기’는 거액이 든 돈 가방을 차지하고자 하는 인간들이 얽히고설키기 때문에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를 드러냄에 있어 노출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은 물론 보여주어야 할 것과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을 선별하며, 관객들이 느끼게 될 피로감을 덜어주고 있다.

 이렇듯 ‘지푸라기’는 비선형적인 플롯과 입체적인 캐릭터 그리고 폭력 장면의 수위 조절에 있어 장점을 보이고 있는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연출자의 재능이 무르익은 영화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정제되지 않은 것이 주된 이유다. 그리고 돈 가방에 얽힌 8명의 비선형적인 플롯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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