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보다 경험” 동물 치료 이야기

▲ 백곰.
 동물들 치료하다 보면 내 머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좋은 결과들이 가끔씩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에 앞서, 수의학하고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부로 간과할 수가 없다. 대안이 없어 그들의 말을 한번 따르다 보면 가끔 치료의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백곰(북극곰)이 갑자기 발바닥에 습진이 생겨 빨갛게 달아오르고 피가 나면서 절룩거렸다. ‘저걸 어쩌나!’하고 속으로 잔뜩 고심에 싸여있는데 담당 사육사가 굵은 소금을 들고 가는 것이 보였다. “그 소금은 어디다 쓸 거에요?” 하니까 곰 사육장 안에 뿌려줄 거라고 한다. 말을 들어 보니까 백곰에게 주기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바닥에 천일염 굵은 소금을 뿌려주었다고 한다.
 
▲“역시 소금이 제일이야!”

 수족관 같은 데서 질병이 발생하면 온도를 높이거나 아니면 낮추거나 때론 염도를 조절하여 치료하는 것은 알았어도, 설마 여기(백곰 발바닥 습진)에도 효과가 있을까? 굵은 소금이 괜히 상처에 달라붙어 더 화끈거리는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현학적인 생각으로 우선 의심부터 했다. 예전엔 항생제 같은 것이 없어 마치 된장을 상처에 발랐듯 궁여지책의 단방처방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예전에 그렇게 해서 나았다니 하는 대로 놔두고 한번 잘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 보니 놀랍게도 백곰은 정상적으로 걸어 다니고 발바닥의 염증도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정말 소금 때문이었나? 여전히 의심은 갔지만, 담당사육사는 마치 나 들으라는 듯 ‘역시 소금이 제일이야!’ 한다. 잠자코 지켜만 봐서 다행이지 괜히 아는 척 했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동물치료에 있어서는 지식보다는 경험이 앞선다는 평범한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또 곰 이야긴데 이번에는 불곰이다. 큰 동물들은 상처가 나면 직접 접촉하여 치료하기가 어려우니 이런 이야기에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다. 불곰들을 새끼 양육 때문에 겨우내 내실에 가두어 두었더니 엉덩이에 습진이 생기고 그걸 자꾸 핥아서 상처를 크게 키워버렸다. 엉덩이에 출혈이 있어 자세히 보니 커다란 상처자국이 보였다. 이대로 놓아두면 더 성이 나겠다 싶어 고심 끝에 마취를 하여 치료하기로 했다.
반달곰을 마취하는 중.|||||

 곰이나 멧돼지는 뱀한테 물려도 쉽게 독이 퍼지지 않는 동물들인지라 일반 마취제는 정말 잘 듣지 않는다. 아주 비싼 특이한 마취제를 써야만 마취를 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거의 한 방에 10만 원 가량 드는 마취를 실패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마취제를 장전하고 블로우건(바람총)을 쏘았다. 그런데, 잘 맞았으면 경험상 보통 5분이면 쓰러져야 할 곰이 전혀 비틀거리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겨울잠을 자고난 후, 몸의 다운된 생리변화가 마취효과를 반감시키는 모양이다. 서두를 필요도 없고 더 마취제 연구도 해야 할 것 같아 일단 그날은 철수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회진 겸해서 곰 사에 들러 보았더니 아니 엉덩이 상처에서 더 이상 피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마취제가 치료제인 모양”
 
 하루 동안 마취효과 때문인지 몰라도 가려움증이 없어지니 그 날 하루 동안 상처를 핥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하루의 효과에 힘입어 점점 상처가 나아졌다. 다른 수의사가 지나가는 말로 ‘마취제가 치료약인 모양이야!’ 하는 데 난 그 소리가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미 마취제에 의한 치료효과는 입증된 실례들이 많다. 예전에 아편(양귀비, 현대의 모르핀)으로 배앓이 치료했던 것도 그렇고, 가망이 없어 과량의 마취제로 안락사를 유도했던 동물이 1~2일 푹 자고나서 기적처럼 병이 나은 기록들도 많다.

 세상은 우리의 짧은 지식만으로 판단하기에 너무나 신비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이래서 조상님들은 조금 배웠다고 들먹거리는 현학허세의 자세를 그처럼 경계했는지 모르겠다. 수의학에선 더욱 그렇다.
최종욱<우치동물원 수의사>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