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파리’로 알려진 아르헨티나 하면 많은 이들은 축구와 탱고를 떠올린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다. 에비타다.

 에비타는 뮤지컬계의 마술사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대히트시킨 1978년의 뮤지컬 `에비타’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앨런파커 감독, 마돈나 주연의 뮤지컬 영화 `에비타’(1996)로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그런데 에비타와 연관해 페론이즘과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도 동시에 떠올린다.

 우리사회의 보수언론은 2001년 말 이후 더욱 심각해진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 원인을 페론주의에서 찾고 있다. 페론에서 비롯된 `경제적 포퓰리즘’과 노동계급의 무리한 요구 그리고 오랫동안 그것을 뒷받침해 온 재정적자 정책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아르헨티나의 큰 경제적 위기는 2001년 말에 왔다.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까지 갔다. 2001년 12월, 당시 로드리게스 사아 대통령이 모라토리엄(대외채무상환유예)을 선언했고 2002년 1월 신임 대통령으로 선출된 에두아르도 두알데가 디폴트(대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기까지 했다. 아르헨티나는 이후 1년 동안 IMF와 힘겨운 협정 끝에 일부 외채의 재조정과 긴급차관 제공에 합의함으로써 일단 위기를 넘겼다. 그 후 키르츠네르 대통령은 2005년 12월 IMF채무 전액을 상환해 4년 만에 IMF체제를 벗어났다. 몇 년 동안 연 8%의 고도성장을 이뤘지만, 2008년에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터지자 경제는 다시 위기에 빠져있는 상태다.

 최근의 아르헨티나 지식인들은 2001년 이후 경제위기가 페론과 에비타의 포퓰리즘 때문이 아니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채택한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1976년에 페론의 후임이었던 이사벨 페론 정권을 극우 군부쿠데타로 전복하고 집권한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정부는 페론 정부 이래로 추구해왔던 수입대체 공업화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며, 이른바 미국 시카고학파의 통화주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구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아르헨티나에 처음으로 접목시켰다. 1989년에 정권을 잡은 카를로스 사울 메넴 정권도 `보수적 동맹’에 입각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다. 그는 취임 후 즉시 달러와 페소를 1대1로 고정시키는 태환법(통화정책) 등을 실시하는데 이 정책이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으며 이를 비롯한 민영화, 규제완화, 무역개방을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아르헨티나 경제를 경제위기로 몰고 갔다.

 사실상 2001년 이후 위기와 1940년대 중반의 페론주의를 직접 연결 짓는 것은 문제가 많다. 페론의 노동입법과 사회복지정책이 경제적 곤란을 가져왔다 하더라도 페론주의는 군부의 `더러운 전쟁’과 페론주의의 내용과는 정반대의 정책을 추진한 메넴 정권(1989-1999)을 통해 철저하게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HK 교수인 이성형이 `대홍수’(2009)에서 지적한 것처럼 `아르헨티나 사태는 길게는 1976년 군정시절부터 시작된 무모했던 개방정책과 신자유주의 개혁이 남긴 종착역’이다. 또 민영화, 규제완화, 무역개방 속에 “국민경제가 금융 투기자본의 천국으로 바뀌면서 생긴 이 기막힌 사태를 보면서 50년 전의 페론주의나 에비타의 망령을 떠올리는 건 한국 언론들의 낡은 가락”이다.

홍덕기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경제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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