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과 꿈 꺾지 않았다면 단원고 갈 일 없었을 것을…”
아이들 구조 안한 박근혜·정부 끝까지 책임 물을 것

 저는 단원고 2학년 8반 고우재의 아버지입니다.

 보고 싶은 아들 우재를 가슴에 품으면서 잊은 듯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습니다.

 우재…

 사랑하는 아들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지금이 너무 싫습니다.

 우재가 없는데도 시간은 가고 저는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늘 꿈이기를, 제발 꿈이기를 바라지만 우재는 돌아오지 않네요.

 

 1997년 5월16일 14시 37분 나의 분신과도 같은 아들 우재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우리 우재에게 해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재와 우재의 여동생이 초등학생일 때 엄마·아빠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비록 아이들은 엄마와 지냈지만 저는 휴일도 마다 않고 열심히 일하며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우재가 중 3때였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서 저에게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빠처럼 전자과에 가고 싶다고요. 저는 전자과 나오면 아빠처럼 고생만 하고 비전이 없으니 전기과나 인문계 진학을 권유했습니다.

 우재는 전기를 다루는 일이 무섭다고 하더군요. 결국 인문고인 단원고에 입학했습니다.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재가 커서 저처럼 힘든 노동으로 밥벌이 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저보다는 편히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뿐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아이의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에 하루도 편히 지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한가지 위안으로 삼는 일이 있습니다. 우재가 단원고 1학년 때 제 직장 동료들와 그 아이들, 우재 여동생과 친구들, 우재와 이렇게 가평에 놀러갔습니다.

 떨어져 살다보니 아이들과 변변한 추억이 없었거든요. 가평에서 온갖 놀이기구를 타고 밤에 고기를 구워 먹었습니다. 우재가 참 좋아했죠. 저녁에는 우리 숙소 옆방에 놀러온 고등학생들과 공을 차며 놀았습니다. 우재와 운동을 한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우재가 사진 찍기를 싫어해서 추억으로 남을 사진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년에 또 놀러오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우재가 2학년 때는 제가 낚시를 가자고 연락했는데 아이와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갔습니다.

 가평에 간 날이 우재와 마지막 추억이 될 지 그 때는 몰랐습니다. 다음 휴가에 맞춰 놀러가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우재는 떠났으니까요.

 

 우재가 전자과에 간다고 했을 때 아무 말 않고 그러라고 했다면, 사동에서 살다가 선부동으로 이사 가지 않았다면 아이는 단원고에 가지 않았을 겁니다. 아이를 보내고 저는 죄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이는 2014년 4월20일 우리 가족 곁으로 왔습니다. 손에 휴대폰을 꼭 쥐고 있더군요. 휴대폰을 사준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아빠 아들 우재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모습은 깨끗했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돌아온 아들의 모습을 도저히 사진으로 남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것도 후회가 됩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우재가 수학여행 가는 날도 몰랐습니다. 사고 당일에도 여느 직장인들처럼 일을 하고 있었죠. 오전 9시 30분쯤 회사 동료가 사고 소식을 알려줘서 바로 진도로 내려갔습니다.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하며 내려갔습니다. 혹 사고가 났어도 나라에서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많은 아이들을 떠나 보내고 3년이 지난 지금껏 사고 원인도 밝히지 못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저는 2014년 12월부터 2015년까지 팽목항에서 지냈습니다.

 아이를 수습하고 회사로 돌아갔지만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2학년 8반 아이들이 많이 올라오지 않았고, 다윤이는 우리 우재 공부방 단짝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안산에 있다가는 제가 무슨 일을 저지를 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팽목으로 내려갔죠.

 

 우재는 엄마, 아빠, 동생을 많이 아끼는 아이였습니다. 순진하고 착했어요. 언제나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는 생각이 깊은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들, 고우재!

 우재가 없습니다.

 우재가 떠나고 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아이들 아빠로, 날마다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번 참사를 겪으면서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당신들에게 더 이상 순종하지 않습니다.

 제가 우재에게 미안한 것이 많고 변변치 못한 아빠였지만 우리 아들 우재를 이대로 보내지 않을 겁니다.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은 박근혜, 관련 부처, 지휘 라인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고 죗값을 받게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 내 아들 우재를 보낼 수 있으니까요.

우재아빠 고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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