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적폐는 어떻게 씻어낼까?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 내부.<광주드림 자료사진>
 오동꽃이 지고 아카시아가 피었다. 미스김 라일락은 오래도 가고, ‘밥티꽃’이라도 불렀던 이팝나무꽃도 하얗다. 저 꽃을 보면 나는 망월묘지로 가는 길 가에 핀 그것이 생각나고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 길을 걸어 본 사람들은 알리라. 나도 그렇고, 또 좀 다른 결이 있다. 5·18이 일어났던 1980년에 광주로 진학해서 30년을 살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산 지 8년, 축축히 젖은 내 발자욱을 돌아봤을 때, 고향에서 산 날보다 광주에서 산 날들이 더 많았고, 게다가 청춘의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이나 가에서만 서성이는 사람은 연못을 보는 시각이 더 좁다’고. 연못 가운데서 배도 타 보고, 물고기도 잡아보고, 더러 연못가에 앉아 쐬주도 마셔보고, 그 술에 취해 서성여도 봐야 연못을 보는 경험의 폭이 더 넓을 수 있다. 인식의 지평은 늘 그렇다. 그리고 나는 말을 주로 해왔던 축이라, 광주에서 들려오는 말들의 풍경에 관심이 많고, 잊으려, 잊으려고 해도 멀리서 광주라는 말만 들려도 귀를 쫑긋 하고 기울이게 된다. 습성이다.

 

‘5·18문학상이 너무 버거웠다’는 시인

 최근 창작과비평사에서 5·18백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재출간했다 한다. 대학 2학년 때, 학교에서 잘린 채 그걸 만드는 한 귀퉁이에 있었던 내 기억은 단박에 머리가 띵, 했고, 이어서 어떤 격세지감 같은 게 밀려들었다. 그게 발간된 게 85년이고, 나는 곧바로 입대했다가 89년에 제대했는데, 그해 오월, 그것을 출판했다고 남영동에 끌려가 3개월간 두들겨 맞은 풀빛출판사 나병식 형이 광주에 왔다가 우연히 만났다. 그리곤 저간의 얘길 3일 동안이나 들었다. 그 큰 체구에 뻘겋게 젖은 눈망울이란…. 술잔을 놓지 못했다. 그때 대부분의 출판사들에선 출간을 회피해 자신이 억지춘향으로 떠맡았는데, 그 댓가가…. 그렇지만 그 형은 누굴 원망하지 않았다. 얼마 전 그분은 돌아가셨다. 그해 ‘신동아’에 ‘화려한 휴가’로 그 내용을 그대로 적어내린 윤재걸은 달려 가 두들겨 맞아서 척추가 나가버렸고, 그분은 지금 나와 함께 고향에 사는데, 제대로 앉지를 못하고, 그저 낚시나 하며 소일하고 있다. 풍경들은 이렇게 헝클어져 있다.

 며칠 전 광주 5·18기념재단에서는 5·18문학상 본상에 김혜순 시인의 ‘피어라 돼지’를 선정했는데, 여러 사람들이 작품은 물론 심사위원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해 댔고, 마침내 김시인이 ‘그 이름이 내게 너무 버겁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수상을 거부했다. 심사를 했던 분들이나 비판적인 말을 했던 분들, 수상자의 말들은 내게 흐릿한 풍경이다. 바라보기가 너무 힘들다.

 근래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광주에서 광주문화재단 이사장 선임이 두 번이나 무산되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책임을 갖는지는 두 말 할 필요가 없고, 그런 중요한 일을 할 사람을 위촉하지 않고 공모를 하고, 심사를 해서 시장이 낙점하는 현재의 방식에서, 그 일을 할 만한 사람 누가 공모에 응할까? 사람들의 움직임이 ‘안 봐도 비디오’다.

 내년 광주비엔날레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연다고 한다. 전당을 만들기 시작할 때, 시쳇말로 ‘퐁피두센터의 10배’라는 말이 있었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채울 만 한 컨텐츠로 비엔날레 만 한 것이 없지만, 되짚어 보면 그것은, 10년이 넘게 몇천 억원을 들여 지은 전당에서 고작 비엔날레를 연다는 거나 진 배 없다. 비엔날레관은 어떻고? 광주폴리는? 현대미술 전시에서 전시장이 그렇게 중요한가? 물론 비엔날레도 이젠 돈이 없다지? 그러니까 누이 좋고, 매부도 좋고. 그동안, 그러니까 2002년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진행했던 프로젝트, 사업들은 도대체 뭐였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광주는 늘 누군가를 품지 못했다

 광주비엔날레를 했던 인연으로 아시아문화개발원장으로 왔다가 전당의 예술감독으로 강등되었고, 마침내 쫓겨난 이영철이 잊혀 지지 않는다. 그의 예술가적 기질과 습속이 현실과 잘 안 맞다는 점은 나도 잘 알고 있는데, 그의 예술적 성취는 98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적 큐레이터들의 워크샵에서 97광주비엔날레가 20세기에 꼽을 만 한 20개의 전시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뛰어났다. 싸르트르가, 퐁피두가 현실정치와 그렇게 잘 어울렸나? 전당은 이영철을 품지 못한 것이다. 광주는 늘 그래왔다. 나를 좋아해서 찾아온 사람들을 늘 밀어냈던 것이다. 하랄트 제만도, 가야트리 스피박도, 최민도. 최하림, 황지우…. 누구누구도 품지 못했다. 그가 밀려난 자리에 누가 들어와 어떤 짓들을 했는지는 눈 뻔히 뜬 광주 사람들 누구라도 잘 알텐데, 누구는 증거 있냔다. 서류 만드는 선수들이 증거 남기는 거 봤냐?

 적폐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열자고 한다. 맞다. 정치적으로는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의 1년이 중요하다. 내게는 광주 말고 내 동네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는 생각을 접은 지 오래다. 공동체란 개인의 집합체일텐데, 우리는 지나치게 ‘공동’에 집중해왔다. 개인, 내 안을 들여다보자. 나/우리는 옳고, 너/너희는 틀리다는 그 생각이 적폐다. 오늘도 나는 내 안의 적폐들과 싸운다. 나도 잘 먹고 잘 살고, 식구들도 잘 거천해야 할 것인데, 그 작은 수신修身, 제가濟家조차 잘 안 된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산다는 것은 ‘탄타로스의 고통’, 바로 그것인데.

윤정현 <시인>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