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일(金白一)의 본명은 김찬규(金爛奎)이며 선조들의 고향은 함경도 명천이지만 부모가 북간도로 이주하여 중국 지린성 옌지(吉林省 延吉)에서 태어났다. 괴뢰만주국 펑톈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부터 1945년까지 간도조선인특설부대 일명 ‘간도특설대(間島特設隊)’ 장교로 복무했다.

 간도특설대는 일제의 괴뢰만주국에 소속된 900여 명 규모의 특수부대로 항일운동을 하는 독립군 토벌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김백일은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 중에 가네자와 도시미나미(金澤俊南)로 창씨개명을 하였다.

 간도특설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하여 백선엽 육군참모총장, 신현준 해병대사령관, 김백일 군단장 등 150여 명이 ‘조선인 독립군은 조선인이 잡는다’라며 악랄하게 독립군들을 탄압했다.



간도특설대 장교로 독립군 탄압에 앞장

 일제는 중일전쟁으로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장교 양성을 위해 신징(新京)군관학교와 펑톈(瀋陽)군관학교를 설립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이한림 제1군사령관, 이주일 육군대장 등이 신징군관학교 출신이며 정일권 육군참모총장과 백선엽 육군참모총장, 김백일 육군중장 등이 펑톈군관학교 출신이다.

 김백일은 1945년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괴뢰만주국이 궤멸하자 고향인 함경도 명천으로 귀국했다. 다시 월남하여 김찬규에서 김백일로 개명하여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한 뒤 미군정 중위로 임관했다.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하여 남조선국방경비대 제3연대를 창설하여 연대장에 올랐다.

 여순사건이 일어나자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진압작전을 지휘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38선을 처음으로 제1군단을 이끌고 돌파했다. 흥남철수작전에서 10만여 명의 피난민을 해상 수송을 통해 구출했다.

 1951년 3월 28일에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인근의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여 육군 중장으로 추서됐고 무공훈장 태극장을 수여받고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묘역에 안장됐다.

 김백일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됐고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됐다.

 하지만 간도특설대 장교로 만주에서 항일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던 악질적인 친일파 김백일을 ‘6·25영웅’으로 부각하여 도로명과 학교명을 명명하고 심지어 동상까지 세우고 있다. 또한 국가보훈처는 여전히 김백일을 ‘나라사랑 정신 및 상무정신을 기리는’ 영웅으로 우상화하고 있다.



해방후 친일파에서 6·25 영웅 변신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위치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백일로’, ‘백일초등학교’, ‘백일어린이공원’ 등은 친일파 김백일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전남 장성군 육군보병학교와 경남 거제시 거제포로수용소에 김백일 동상이 세워졌고 서울특별시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김백일 흉상이 세워졌다.

 다행스럽게 백일로는 광주학생운동을 상징하는 ‘학생독립로’로 변경됐고 백일초등학교는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성진회’에서 따온 ‘성진초등학교’로 개칭됐다. 하지만 아직도 친일파 김백일의 흉상과 동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김백일에 대한 반민족행위와 전쟁공로를 함께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일환<광주우리들병원 행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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