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밭에 가는 길이었다. 더운 날이라 물과 오이를 사러 제법 큰 가게에 들렀다. 새벽인데 문을 여는 주인장이 묻는다. ‘어, 그때 그 사람 맞죠?’ 낯설어 하자 붙들고 우리의 인연을 말했다. 그제야 ‘아, 그 분이시구나’했다.

 양동시장에서 새벽 장을 보던 시절, 그 분은 자전거로 푸성귀며 생선을 배달했다. 배달을 할 때 더 많이 싣는 방법과 물건을 정리하는 방법을 서로 나누었다. 믿음이 쌓이자 혼자 하던 일을 사람을 쓸 정도가 되었고, 나중에는 작은 가게를 얻어 직접 장사를 비롯했다. 좋은 상품만 다루었고, 쓰기 편하게 손질을 했고, 제 때 제 물건을 공급했다. 장사를 늘려갈 때마다 나에게 물었고, 내가 좋은 생각(아이디어)을 주었단다. 나는 지닐총(기억) 없다.

 어쨌든 지금은 나보다 부자가 되었고, 나이가 들었으나 부지런 떠는 일은 그대로다. 잊은 일을 떠올려준 사람, 무심결에 던진 말을 실천한 사람, 그리고 이름은 잊었지만 고마움은 잊지 않은 사람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부지런히 일했고, 시킨 일만 하지 않고 변화를 찾아 판단을 해서 얻었다. 머뭇거리지 않고 실천을 해서 그리고 남 탓하지 않고 ‘남 덕’이라 헤아렸다. 그의 몸과 마음에 행복이 스며들었고, 아직 그는 젊은이처럼 일한다.

‘어느 날’은 온다…준비하고 있으라

 돌아 나오면서 문득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은행원이던 팀 로빈스가 아내와 아내의 애인을 죽인 혐의로 쇼생크 교도소에 갇힌 이야기다. 교도소의 삶은 힘들었고, 거친 죄수들에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다. 그래도 마음 나눠주는 모건 프리먼을 만나 버틴다. 어느 삶이든 ‘나’를 위로해주고 함께 해주는 사람 있다. 알아채지 못해서 그렇지.

 어느 날, 죄수들을 하인처럼 부리고, 죽이기도 하는 교도소장은 세금 포탈과 검은 돈 세탁을 하려고 팀 로빈스의 힘을 빌린다. 우리 삶에서도 누구에게든 ‘어느 날’은 꼭 있다. 그 어느 날을 우쭐거리다가 모르고 지나거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그냥 날려버릴 때가 있어서 그렇지.

 팀 로빈스는 돈을 불리는데 뛰어난 능력을 드러냈고, 교도소장의 알량한 너그러움을 얻어 교도소 안에 도서관을 연다. 젊은 죄수들에게는 공부를 하여 시험을 보게도 한다. 아마 팀 로빈스는 혼자만의 잇속을 챙기지 않고 모두의 행복을 찾았는지 모른다.

 그때의 한 장면, 팀 로빈스는 온 죄수들과 간수들이 들을 수 있게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틀어준다. 죄수들이며 간수들이 뜨악하며 듣는 모습이 마치 멈춘 것처럼 카메라는 비춘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감동과 희망이 섞여있다. 우리 삶에서도 늘 놀라움과 감동과 희망의 낌새는 있다. 그 틈(공간)과 짬(시간)을 찾지 못해서 그렇지.

 팀 로빈스의 무죄를 말해 줄 죄수가 들어오자 교도소장은 그 죄수를 죽여 버린다. 마지막 돌파구를 놓친 팀 로빈스는 억울해서 몸부림을 친다. 그렇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탈출을 19년 동안 꾸리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교도소 밖으로 탈출한다. 그때 카메라는 비가 쏟아지는 하늘에서 두 손을 번쩍 든 팀 로빈스를 비춘다. 자유의 기쁨과 희망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1994년 프랭크 다라본트가 만든 영화다.

행복을 찾아야 우리 몫이 된다

 영화에서 팀 로빈스는 볕이 좋을 때 교도소 마당에 앉아 모건 프리먼에게 처음으로 아내 이야기를 꺼낸다. 아내를 만나 행복했고, 그 행복을 처음으로 고백한 장소를 지나가듯 말해준다. 그 나무, 그 돌멩이 아래 행복을 묻어두었다고. 모건 프리먼은 팀 로빈스가 탈출한 한참 뒤 출소하지만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자살을 결심한다. 자살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팀 로빈스가 행복을 묻어두었다는 곳을 찾는다.

 그곳에서 모건 프리먼은 비행기표와 돈, 그러니까 행복을 발견한다. 아무도 그곳에 행복이 있다고 가르쳐주지 않았고, 누구도 그곳을 찾아가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팀 로빈스는 고난을 이기고 견디면서 ‘행복’이라는 과녁(목표)을 짰고, 한 번도 그 과녁을 버리지 않았다. 행복이란 과녁은 누가 세워주지 않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찾는 일이 행복이다.

 영화의 포스터에는 ‘두려움은 너를 죄수로 가두고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문구를 박아놓았다. 어떠한 두려움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행복을 찾으면 우리의 몫이 된다. 삶이란 결국 행복을 찾는 일 아니겠는가?
김요수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콘텐츠산업진흥본부장>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