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은 조선 전기 전라도 영암 출신 문신으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큰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15세에 향시(鄕試)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서울로 올라와 학문을 배웠다. 26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고 35세에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하여 정7품 승정원 주서로 벼슬을 시작했다.

 38세에 정7품 승문원 박사로 재직하던 중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호당은 세종이 국가의 중요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젊은 문신들에게 유급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던 제도이다. 이후백을 비롯해 신숙주, 김안국, 이이 등이 사가독서를 한 대표적인 문신이다. 호당 출신만 대제학에 임명됐다.

 이후백은 사가독서를 끝내고 호남지방에 암행어사(暗行御史)로 파견됐다.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암행어사가 파견됐다는 소문만 듣고 스스로 사직한 탐관오리들이 있었다고 한다. 암행어사는 왕의 특명을 받고 지방을 암행하면서 감찰하는 임시 관직이다. 다시 정6품 병조좌랑, 정5품 이조정랑, 정4품 사인, 정3품 홍문관 전한 등을 역임했다.

잘못 기록된 ‘이성계 혈통’ 바로잡아

 이후백은 1567년 선조가 즉위하자 원접사의 종사관으로 명나라 사신을 맞이했다. 동부승지, 대사간, 병조참의, 도승지 등을 역임했다. 1571년 정3품 당상관 이하의 문신을 대상으로 실시된 문신정시(文臣庭試)에서 장원을 하였다. 1573년 종계변무 주청사로 명나라를 방문하여 ‘명태조실록’과 ‘대명회전’의 개정을 주장했다.

 종계변무(宗系辨誣)는 ‘종가의 혈통을 사리를 따져서 억울함을 밝힌다’는 뜻이다. 명태조실록(明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이자 친원파인 이인임의 아들이다’라고 200년 동안 잘못 기록됐다. 대제학 황정욱이 1584년 종계변무를 최종 달성했다.

 이후백은 종2품 평안도관찰사와 대사헌에 이어 종2품 홍문관과 예문관의 양관제학에 임명됐다. 정2품 이조판서에 이어 호조판서를 역임했다. 이조판서 시절 친척이 찾아와서 관직을 청탁하자 작은 책 한 권을 꺼내어 ‘자네를 추천하려고 명부에 올려 놓았더니 지금 보니 안되겠네’라며 추천자 명단에서 지워버렸다고 한다.

 이후백은 예조판서를 역임했던 노진이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자 휴가를 내고 함양까지 찾아가 슬퍼하며 하룻밤을 앓다가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노진은 ‘오면 가려 하고 가면 아니 오네. 오노라 가노라니 볼 날이 전혀 없네. 오늘도 가노라 하니 그를 슬퍼하노라.’라는 시로 유명한 문신이다. 이후백은 사후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1590년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 연양군(延陽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인사 청탁 거절한 청백리

 ‘그의 사람됨은 침착하고 중후하였으며 기개가 있었다. 그가 비록 문한(文翰)에 종사하였지만 몸단속을 엄숙하게 하였고 말할 때나 조용히 있을 때에도 절도가 있었으며 기쁜 표정과 언짢은 표정을 얼굴빛에 나타내지 않았다. 또 자제들이나 아랫 사람들이 감히 시사의 득실에 대하여 묻지를 못했다.’라고 선조수정실록 12권에 이후백의 졸기가 기록됐다.

 이후백은 사후에 광국공신(光國功臣)으로 책봉됐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됐다. 광국공신은 종계변무에 공을 세운 1등 황정욱, 2등 이후백, 3등 기대승 등 19명에게 내린 칭호이다. 청백리는 청렴결백한 관리를 양성하고 장려할 목적으로 실시한 표창제도이며 청백리에 녹선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겼다.

 1590년 전라도 강진에 후학들이 이후백을 제향하기 위해 서봉서원(瑞峰書院)을 창건했다. 백광훈(白光勳)과 최경창(崔慶昌)을 추배됐고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에 의해 훼철됐다. 1924년 호남 유림들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박산서원(博山書院)으로 개칭했다.

 “가랑비 내리는 속에 길을 잃어 / 나귀 타고 가는 십 리 길 바람이 부네 / 가는 곳마다 들매화 피어 있으니 / 은은한 향기 속에 넋을 잃고 말았네”라고 이후백은 매화를 노래했다. 혼탁한 정치권을 바라보며 매화처럼 향기를 팔지 않은 청백리 이후백이 그립기만 하다.
서일환<상무힐링재활병원 행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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