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미탄(紫薇灘)이 시작하는 곳에 전신민이 고려가 멸망하자 낙향하여 은둔한 독수정이 있다. 자미탄 중간에는 기묘사화 때 조광조가 유배되자 고향으로 낙향한 양산보가 지은 소쇄원과 임진왜란 때 억울하게 희생된 의병장 김덕령의 전설이 남아 있는 취가정이 있다. 자미탄이 끝나는 곳에 정철이 성산별곡을 남긴 구름도 쉬어간다는 식영정이 있다.

 전신민은 공민왕 때 정3품 병부상서를 역임한 무신으로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주장하며 낙향했다. 전신민은 무등산 원효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언덕 위에 임금이 있던 북쪽을 향해 독수정을 짓고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충성을 다짐했다. 독수정은 팔작지붕의 정자이며 정면 3칸, 측면 칸이고 가운데 한 칸을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자미탄 ‘붉은 백일홍이 핀 여울’

 독수정 주변에는 회화나무, 서어나무, 느티나무, 왕버들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이 원림을 이루고 있다. 이른 봄에는 매화꽃이 그윽한 향기가 진동하고 한 여름에는 백일홍이 붉게 물들인다. 이른 가을에는 만나지 못한 임금과 신하의 눈물이 붉디붉은 상사화로 피어난다.

 담양에는 전신민의 독수정을 비롯해 임억령의 식영정, 양산보의 소쇄원, 김덕령의 취가정, 송순의 면앙정, 신잠의 환벽당, 정철의 송강정 등 수많은 가사문화의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또한 오희도의 명옥헌에는 한 여름에 붉은 피를 토하듯 백일홍이 붉게 피어난다.

 오희도는 19세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했고 인목대비 폐비에 반대하여 은둔했다. 능양군이 광해군을 축출하는 반정을 일으키기 직전에 오희도를 만나기 위해 담양을 세 번이나 찾아왔으나 반정을 거절했다. 오희도는 인조가 즉위하고 40세에 알성시에 합격하여 정9품 예문관 검열이 되었으나 이듬해 요절했다.

 오희도의 넷째아들 오이정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후서마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별서정원을 지었다. 팔작지붕의 명옥헌(鳴玉軒)을 짓고 가운데에는 온돌방을 만들고 사방에 마루를 놓았다. 시냇물이 흘러 위 연못을 채우고 다시 아래 연못으로 흐르도록 네모난 연못 두 개를 만들었다. 연못 가운데는 둥근 섬을 만들어서 배롱나무를 심었다.

인조가 담양을 세번 찾아온 까닭

 송시열이 자신의 제자이자 오이정의 아들인 오기석을 아끼는 마음에 계곡 바위에 ‘명옥헌 개축(鳴玉軒 癸丑)’이라고 새겼다. 명옥헌에는 인조가 담양을 세 번 찾아왔다는 뜻으로 삼고(三顧)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명옥헌 주변에는 절의(節義)를 상징하는 줄기가 붉은 적송과 단심(丹心)을 상징하는 붉은색의 꽃을 피는 배롱나무가 원림을 이루고 있다. 명옥헌 원림은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제58호로 지정됐다.

 배롱나무는 붉은 꽃이 백일 동안 피고 지기를 반복하여 백일홍(百日紅)이라고 한다. 배롱나무는 일편단심을 상징하여 사당과 서원에 많이 심는다. ‘인무십일호(人無十日好)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데 월만즉휴(月滿卽虧)이니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하였다. 위정자들은 권세나 권력이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서일환<상무힐링재활병원 행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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