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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광주·광주시민들을 닮은 푸른길공원
혁명의 도시 광주순례길 다섯 번째 날
전영원
기사 게재일 : 2019-09-09 06:05:01
▲ 지난 8월10일 다섯 번째 혁명의 도시 광주순례길은 푸른길공원이었다. 순례를 함께한 이들과 남긴 기념사진.
 매달 둘째 주 토요일은 “혁명의 도시 광주순례길”을 걷는 날이다.

 올해 3월, (사)광주마당 이사들끼리 2030년, 오일팔 50주년을 상상하다가 광주여행 한달살이가 될 수 있게 산티아고길, 제주올레길 같은 광주순례길을 만들자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무등산 둘레길, 광주산들길과 더불어 오월길, 조선 의병길, 학생독립운동길, 6·10항쟁길도 흔적을 더듬어 걸어보자는 것이었다. 자연길, 역사길에 맛집, 멋집, 잘 집을 조합하여 ‘혁명도시 광주순례길’을 만들면 세계인이 광주를 제대로 알게 되지 않을까? 역사를 만들기 위해 길 나섰던 사람들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목표의 10년 걷기, 준비기간 1년을 작당하면서 서로가 어찌나 들뜨던지 모두들 미래에 대한 무거운 과제나 두려움 대신 알 수 없는 희망에 부풀던 철부지 십대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4월부터 시작해서 들불야학길, 윤상원길, 6월항쟁길, 국본의 꿈길에 이어 8월 10일의 다섯 번째 광주 걷기는 동구쪽 푸른길 구간.

 오전 10시, 동구 계림동과 북구 중흥동이 만나는 푸른숲 종점 구간에 30여 명의 광주시민들이 모여들었다. 광주마당 식구들 외에 SNS를 통해 오신 분, 친구의 요청에 함께 하기로 한 분, 가족따라 나선 분 등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즐거운 소풍 가듯 가볍게 푸른길공원으로 들어섰다.

 아름드리 나무들 덕에 그늘진 숲 같고, 오붓한 오솔길 같은, 계림동 푸른길은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기도 하지만 내겐 1970년대 초, 유년 시절의 마루 아래 토방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장소이기도 하다. 광주상고 옆 철롯길 가의 수북한 화강암 돌멩이들을 추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우리집 토방에서 동네아이들과 공기놀이 하던 기억, 여름방학 식물채집 숙제를 위해 단짝이랑 철도변의 이름 모를 풀을 뽑고 흙을 털어 두꺼운 옥편에 넣어 눌러놓던 기억, 그 날 철로변에 핀 꽃은 물어보나마나 키 작은 채송화들. 간혹 온 가족이 손톱 물들이던 봉숭아꽃도 그 철길 가에서 뜯어왔었는데….

 추억을 더듬다보니 철로변 마당넓던 내 친구 집 자리까지 도달했는데 무슨 원룸 건축물로 변해 있었다. 살림살이가 기찻길 바로 옆까지 나와 있던 지산동 제주마을도 시절을 따라가느라고 아파트 단지로 변해서 다들 세월의 무게를 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단법인 푸른길에서 길잡이로 나선 분 설명에 의하면 2000년 8월 이날이 마지막으로 이 구간을 운행한 날이라고 한다. 순례 10년 영상을 책임지기로 한 모 감독님은 심지어 그날 마지막 기차를 타고 남광주역에서 내리기까지 했노라는 놀라운 증언도 나왔다. 우연이지만 역사적인 날이어서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이후 사라질 뻔한 이 폐선부지는 시와 국가를 향한 광주시민들의 가열찬 요구와 끈질긴 설득으로 동구와 남구를 잇는 기찻길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이를 푸른길공원으로 명명한 시민들은 한 시민 한 나무 갖기 운동도 대성공시켜 구간별 수종을 달리한 채 매우 풍성하고 멋진 산책길을 만들었다. 이렇게 순수 시민들의 힘으로 인구 백오십만 도심 속에 8킬로미터의 명품 숲길 공원을 일궈 낸 것이다.

 푸른길공원은 광주사람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끈질기게 살아남아 명품 숲길이 된 푸른길의 생명력은 마치 역사의 고비고비에서도 자존심 지키며 살아온 광주사람의 운명체 같았다. 특히 5·18 이후 폭도로 몰리고 존재를 무시당하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광주! 이젠 광주정신, 민주주의의 도시, 큰 산을 넘은 사람들로 인정받는 광주사람들처럼 하등 쓸모없다던 폐선부지에서 세월을 견디고 도시숲길이 된 푸른길의 역사가 참 많이 닮았다.

 좁은 공원길을 지키기 위해 공중화장실조차 허락하지 않기로 한 광주사람들의 고집 덕분에 개발이나 훼손이 없는 푸른길이다. 쉼이 필요한 사람 누구든, 언제든 찾을 수 있게 멋진 벤치들과 환한 가로등이 있는 평등의 숲길이다. 푸른길처럼 품이 넉넉한 광주, 관용과 사랑이 넘치는 광주, 늘 먼저 다가가 눈물을 닦아주는 광주공동체가 변치 않기를 우리 모두 약속하면서 8월 광주순례를 마쳤다.
전영원<동구의원·(사)광주마당 이사>
[사진0]
 ‘혁명의 도시 광주 순례길’
 ‘5·18 50년이 되는 2030년을 향해 함께 걷는 길,
 세상을 바꾸려고 길로 나선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길,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 버무려진 광주의 혼, 광주정신을 느끼는 길,
 상처를 보듬고 새살이 돋게 할 광주의 밥과 술과 따뜻한 마음이 함께 할 것입니다.
 10년 동안 함께 걷다 보면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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