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랑쉬에서 바라본 아끈다랑쉬의 소나무.
 제주도를 섬으로 생각하던 때가 지났다. 이제 제주도는 전국에서 가장 앞선 지역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교통이 제일 편리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에 수반한 문화가 이입된다는 것이다. 최신 유행하는 패션부터 소비와 유통의 모든 것이 서울과 실시간으로 유입되고 구매되는 곳이 되었다. 하니 제주의 본모습이 변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자연의 풍광과 그 거친 바람 속에 살아온 삶이 삽시간에 구경거리나 촬영의 대상으로 소진되어 가는 오늘 제주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 제주에서 이제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물어보면 그다지 떠오르는 것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제주에 간다. 이 또한 업무의 일환이지만 길 떠나는 이에게는 다르다. 조금이라도 자투리 시간이 나면 어느 곳에라도 들릴 마음을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12월의 말엽 제주 공항은 많이 변했다. 제주허씨가 되려고 공항 앞에서 차를 빌리던 시대는 이제 안녕하고 말았다. 렌터카가 상시 대기하던 곳은 주차장으로 변했고, 차는 각 회사의 차고지로 이동해야 한다. 다행히 셔틀버스가 있어 짧은 시간에 차를 구하고 오매불망 잊지 못하던 고등어회를 먹으러 간다. 혼자라도 갈 태세였는데 목적지가 동일한 후배를 만나 동행했다. 한 마리에 3만5000원 하는 고등어회가 입안에서 슬슬 녹는다. 제주 말고 다른 지역에서 고등어회를 맛본 것은 통영이 유일했다. 두 곳 다 한해에 한두 번 정도 가는 곳이다 보니 비교해 보면 제주 것이 훨씬 맛나다. 언젠가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만화를 보면서 맛있는 초밥을 만들기 위해 파도가 몰아치는 갯가에서 잡은 고등어 초밥을 내어 놓아 우승을 한 주인공을 만난 것처럼 파도 몰아치는 제주 바다에서 건진 것이 더 맛난 것 아닌가 싶어졌다.

 

 ▶서귀포 올레시장 안으로 물이 흐르고

 

 하여튼 뚝딱 회를 먹고 식사도 마치고 중문으로 건너간다. 전국문화의집에서 보여 생활문화 부분에 대한 일 년간의 사업 회고와 내년의 바람을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대인시장의 일들과 문화의집의 일을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끝내고 숙소에 들어와 한참을 노트북과 씨름한다.

 88년에 제주도를 처음 왔을 때부터 실습여행이었고, 단 한 번도 제주도를 놀기 위해 오지 않으려는 듯 여행사에 근무하며 출장차 제주를 왔었고, 이후에는 대부분이 공무로 온 것이 전부다. 십여 년 전 꿈이 제주도를 샌들을 신고 배낭에는 갈아입을 옷가지와 읽을 책 몇 권 가져오는 것이 꿈이었는데 여직 그런 적 한번 없다. 죄다 일을 끼고 제주를 찾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제주도라는 지명에는 각별함이 공존한다. 무언가의 빈틈을 타서 쉬거나 충전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밤이 되자 제주에서 조우한 후배가 술 한 잔 하러 가자고 한다. 하지만 노트북의 일이 끝나지 않았다. 그냥 어울려 마시다 가져오라고 했더니 내 일은 새벽 세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았고 후배도 감감 무소식이다. 깜빡 잠이 들어 초인종 소리에 일어났다. 여덟시가 넘었다. 오늘 하루는 자유롭게 있다 나가면 된다. 끝내지 못한 일을 얼른 마감하려는데 기분이 상쾌하다.

 제주의 하룻밤, 아니 술없이 잔 하룻밤이 이리 개운한 아침을 선물해 주었다 싶고 예감처럼 일을 빨리 마감 지었다.

 이제 출발이다. 출발은 경기도 용인에서 온 벗과 함께였다. 모든 코스를 내게 일임했다. 첫 번째는 서귀포의 올레시장을 가자고 했다. 상설시장인 이곳도 중소기업청의 사업 지원을 받아 예쁘게 단장하고 지역민과 관광객을 동시에 수용하는 시장이다. 이색적인 목공예 작품을 판매하는 인도네시아 상인에게서 특이한 부엉이를 마수로 구매했다. 그리고 시장 통로에 있는 조그마한 수로에 주목했다. 물이 흐르는 시장, 친수공간이 조성된 시장, 자연환경과 조응하는 시장이라는 이미지가 금방 떠오른다. 광주는 사실 물이 없는 삭막한 도시다. 광주천의 반경도 짧고 풍암저수지나 운천저수지 같은 곳이 있지만 인간과 가장 친근하다는 수변 공간이 전무하다시피 한다. 시장 안으로 물길이 흐르고 거기 금붕어와 비단잉어가 노닐고 있는 모습과 작은 수차가 움직이고 수변식물이 자라고 있어 적이 놀라웠다. 돈만 있으면 대인시장에도 물길을 놓거나 아님 아예 동계천의 복개를 뜯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 인다.

 이리 저리 걷다보니 수족관에 고등어가 또 보인다. 제법 실해 보이는 고등어회의 가격을 물으니 떠서 주는데 마리당 1만5000원이라고 한다. 초장집이 따로 있어 거기는 한상에 5000원이니 제주시내의 내 십여 년 단골집 보다 1만5000원이 떠 싸다. 다시 고등어회에 몰입한다. 역시나 맛나다.

 

 ▶ 다랑쉬오름과 아끈 다랑쉬오름

 

 시장에서 점심까지 먹고 이제 본격적으로 바람을 만나러 가자고 했다. 대상은 다랑쉬 오름이다. 다랑쉬는 “달”을 일컫는 말이다. 이 오름을 한자로 표기하면 월랑봉(月朗峰)이다. 달을 고어로는 “다라”라고 쓰니 이 뜻은 밝은 달을 의미한다. 성산일출봉으로 떠오르는 달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봉우리가 바로 다랑쉬 오름이다. 이 오름 옆에는 작은 오름이 하나 더 있다. “아끈 다랑쉬오름”이다. 아끈은 아기를 뜻하니 애기 다랑쉬 오름이라고 할 수 있다.(화순의 도곡면에는 월곡마을이 있다. 이 마을을 그 동네 사람들은 “다라실”이라고 부름을 참조해보면 된다). 엄마와 딸이 함께 나란히 있는 형태다. 이렇게 쓰다 보니 최순실과 정유라가 생각난다. 세상을 온통 삼켜버린 희대의 모녀가 있다면 다랑쉬의 모녀는 육지의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안아주는 가족 같은 존재다. 대구에 사는 벗의 사무실에는 아끈 다랑쉬 오름에서 찍은 유별나게 바람을 많이 타며 자라는 소나무 사진이 걸려 있다. 십여 년도 지난 그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고 그 오름과 소나무를 만날 날을 희망해왔다. 한데 여름이 다갈 무렵 용눈이 오름에서 보았을 때 그 소나무가 안보였다. 용눈이 오름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아끈 다랑쉬 오름의 랜드 마크와 같은 소나무였는데 그만 보이지 않아 우리는 소나무의 죽음을 서러워했었다. 그런 소나무의 안부도 궁금해서 택한 길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저만치 용눈이가 눈에 들어오고 다랑쉬 오름으로 가니 몇몇 등산객들이 채비를 하고 있다.

 바람은 거칠었지만 오를만한 길이라 여기고 어미 다랑쉬 오름을 향한다. 삼나무가 도열한 초기 진입로의 경사면을 오르니 동행한 벗이 힘겨워 한다. 그리고 얘기한다. “나 등산은 안 되니 혼자 다녀와” 십여 분만에 포기 선언을 들으니 맥이 풀리지만 이 또한 이해해야 할 터이다. 해서 뒤돌아보니 아끈 다랑쉬 오름이 한눈에 선연하다. 그런데 사라졌던 소나무가 거기 있었다. 억새길 사이에 홀연히 솟아나 등대처럼 존재하는 그 소나무가 억척스럽게 거기 있었던 것이다. 용눈이에서 보이지 않아 죽었을 것이라는 내 이야기에 분개해 하던 대구 친구가 생각난다.

 그거 오보였어. 여기서 보니 잘 있네. 그렇게 문자와 이미지를 타전한다. 뛸 듯이 좋아하던 친구는 “언제 함께 만나러 가자”라고 답이 온다.

 

 ▶제주는 제주다움을 잃지 않았으면…

 

 등산 같지 않은 등산을 놓았으니 이제는 평지를 가야겠다. 어디를 갈까 망설이다가 제주의 핫플레이스라고 하는 월정리 해변으로 가자고 했다. 육지살이에 지겨움을 느끼거나 환멸을 느끼거나 쉬어야겠다고 여기는 이들, 나만의 독특한 개성과 공감하고자 하는 문화적 재능을 가진 이들이 몰려드는 곳이 월정리 마을이다. 코발트빛의 해안을 끼고 해수욕장과 풍력발전기와 검은 현무암과 극 미세의 모래 언덕이 있는 곳도 월정리다. 주변에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와 편의점과 식당과 펜션이 밀집해 있으며 육지로부터 해방된 젊은 층들이 저마다 몰려오는 제주 여행의 해방구와 같은 곳이 되었다.

 오십대의 나이에 그런 젊은이들이 있는 곳을 가자고 한 것은 이 또한 현 시대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라는 것을 익혀두기 위함이었다. 한데 어울리지도 못하면서 눈치껏 그들의 움직임을 본다. 이 추운 겨울인데도 바이크와 아이스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모래사장에서 저마다의 포즈를 취하며 인증샷을 찍는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저 활달함과 개성을 사회적 자원으로 역할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사회는 이들에게 자리를 주지 않는다. 있는 사람들은 자기 지위와 자리를 절대적인 권좌로 여기며 사다리를 자꾸만 걷어낸다. 무늬만 청년정책이지 진실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정책 생산에 관여하고 결정하고 시행하고 환류하는데는 절대적으로 인색하다. 정책의 직접 생산자가 아니라 수혜자로서 대상화 하면서 그것이 청년정책이라고 한다. 해수욕장의 검은 현무암 사이로 쌓인 모래 위에 바람이 남긴 흔적이 청년들의 주름살처럼 고랑을 이루고 있다. 불현 듯 나는 벗에게 한 말씀 한다. “우리 세대는 직위로 말고 현장 일하다가 떠나면 되지. 직위 가지면 자리 욕심이 선배 세대보다 더 심할 터이니 말이예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벗을 보며 월정리에 이우는 노을을 보면서 제주 공항으로 돌아왔다. 렌터카의 오른편으로 넘실거리는 파도는 거기 남겨 놓고, 또 언제 올지 모르는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그래도 제주도는 제주도다움을 잃지 않길 바라면서.

글·사진=전고필 <여행전문가,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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