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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시를 찾아서 시인을 찾아서
대청호에 잠긴 충북 청원 문의 마을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7-02-03 06:00:00
 남도에 눈이 내렸다. 밤 사이에 내린 눈을 지그시 보며 나는 백석의 시를 떠올렸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라는 시안에서 설핏 소주 생각이 나고 지난해 끝자락 몸이 아파올 때 벗들에게 내 죽으면 소주병과 맥주병으로 울을 만들어 거기 재를 뿌려 달라고 했었던 기억이 더듬어졌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에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구절로 다가가며 광주라는 천형의 땅에서 밥숟가락을 연명하는 난 왜 이리 여길 벗어나지 못하고 되돌이표를 하는 것인지도 우스꽝스럽고 회한이 밀려왔다. 더럽다면서 거기 입을 벌리고 말하고 반사하고 그러면서 상처받는 일상을 무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정희성시인의 “세상이 달라졌다”라는 싯귀에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하고 있다”가 딱 내 사는 세상을 반추하고 나도 그 반열에 끼어있음을 자인하고 자책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신동문 시인의 시가 또 떠오른다. “내 노동으로” -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 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꾀던 내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시 앞에서 엄습해오는 나의 반영은 암담했다. 에라 눈 그치면 떠나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대인시장의 한달간 휴지기에 기실 전국 일주를 마음에 담아 두었지만 실행하지 못했기에 더 조급했다. 장소는 당연히 눈이 오는 문의 마을이다.

 

시가 초대하는 여행

 충북 청원에 있는 문의마을. 그곳은 하등 나와 연고가 없고, 관광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 안에는 반드시 찾아야 할 곳으로 각인되어 있다. 지난 번 찾았던 목계장터가 그렇듯이 말씀의 사원이라는 시를 통해 다가와 성지처럼 자리잡은 곳이다. 더듬어 보니 시를 통해 가야할 곳들도 많아졌다. 시 한편 못쓰는 문장의 쑥맥이라서 그런지 어떤 장소를 담은 시를 보면 내 마음이 설레이고 어느 사이 그 풍경 안에 편입된 나를 발견하는데 익숙하다. 여행기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하는 감성이 훨씬 깊고 고즈넉이 늑골 아래 저장된다. 더듬어 본다. 이병률의 스미다를 읽으면서 울진을 가야하고, 정경이의 발자국은 길을 묻지 않는다를 통해 해남 우항리를 떠올리고, 장정일의 강정간다 라는 시는 남도의 드들강 유원지 같은 풍경으로 대구가 유혹한다. 이원규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은 가급적 오르지 말라는 제어의 싯귀가 오히려 더 가야할 것으로 다가와 그 산에 들게 하는 힘을 가졌다. 고재종의 백련사 동백숲길에서나 곽재구의 다산초당 가는 길은 어느새 도암만의 풍경속으로 젖어 들게 한다. 안도현의 모항가는 길은 채석강 일색으로 가는 여행 패턴을 한 단계 더 내밀하고 편안한 곳으로 인도했다. 이대흠의 남도라는 시는 구부정한 탐진강의 물자락에 서게 하고, 손택수의 묵죽이라는 시를 보면 담양 관방제림에서 눈내린 길을 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기다려야 하는 힘을 가졌다. 오탁번의 폭설이라는 시는 해남 땅끝 어느메의 마을에 이장님이 방송하는 소리를 대기해야 할 것 같다.

 시가 초대하는 여행은 한 장면이거나 한 행위이거나 어느 한 시점의 찰나적 경관일 경우와 아예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그 여운이 길어서 나는 또 길에 섰다. 이런 저런 생각을 뒤로 하고 마지막으로 내일 목표한 문의마을에 관한 고은 시인의 시를 읽어 본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엄습해 오는 자연의 섭리를 두고 거역하지 못하고 받아내는 운명 앞에 그나마 갈래의 길은 희망을 주고 산맥은 이 모든 생과 사를 안아주는 품속이 된다. 그 문의를 향해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작정을 하고 잠에 들었다. 아침 눈길은 애쓴 분들의 노고에 힘입어 차를 끌고 가기에 괜찮았다. 행여 있을줄 모르는 장시간의 정체에 대비해 기름을 채우고 네비게이션을 켰다. 문의 200여킬로가 넘게 나오고 두시간 20여분이면 당도하는 곳으로 좌표가 설정된다. 다른 시간이면 해찰하며 이곳 저곳 들를 것인데 이번에는 오로지 눈쌓인 문의를 만나야 하니 그냥 모든 것을 패스해 버렸다.

 쉬지 않고 당도한 문의 마을은 이번이 두 번째다. 십여년전 여름에 그곳에 갔었다. 여름이 어색했다. 워낙에 강렬한 시 때문에 문의는 겨울에 가야 했고 눈이 있어야 하고, 어느 무덤을 눈이 다 덮고 있어야 했다. 저 멀리 산맥에도 눈이 있어야 하고 눈발까지 내리면 그야말로 시 속으로 편입되는 광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간간히 날리던 눈발도 그친 열시 무렵에 도착했다. 조동 마을 사람들의 정성과 회한이 깃든 수몰 유래비를 본다. 끊겨진 길, 휴전선은 걷으면 돌아갈 수 있지만 물 안에 잠긴 내 마을은 이제 영영 갈 수 없다는 장탄식의 글이 마음을 울린다. 1980년 확대된 대청댐이 문의면의 주요한 마을을 삼켜 버렸던 터이다. 1960년대 고은 시인의 신동문 시인의 모친상을 찾아 이곳에 왔다가 한 죽음을 껴 앉는 산하의 모습속에서 시어를 다듬어 세상에 내 놓았다. 그가 거닐었던 곳, 뒤돌아보고 서성거렸던 곳은 모두 저 앞 대청호에 수장되어 있다. 30대의 고은시인이 이 시를 통해 더욱 확고한 시세계에 몰입했음을 들어 알고 있는터다.

 

금강 수계 사람들의 삶의 이력

 그가 거닐던 곳을 나는 들어갈 수 없어 주변을 배회하다 결국 인공의 문의 문화재단지로 들어간다. 작은 읍성이 야산을 걸치고 있고, 문루에는 입장료를 받고 있다. 내부에는 수몰된 지역의 역사를 간직한 관아건물과 반가, 여염집 등의 살림집이 재현되어 있다. 금강의 수계 상류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이력을 엿볼 수 있다. 남도의 일자형 집과 기역 자형 집이 눈에 들어온다. 체험장이 있고 객사겸 관아로 쓰인 건물도 발 아래 대청호 옛 마을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문화재청의 문화재 생생 사업을 지원받아 운영하는 체험장의 겨울은 서늘하다. 하지만 반가의 집을 재현한 곳에서는 민화 전문가가 상주하면서 민화체험도 하고 주거와 예술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셋트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어서 퍽이나 다행이다. 우리 지역의 월봉서원이 서원스테이로 전국에서 가장 빼어난 운영 공간으로 각광을 받아 온 씨앗이 전국적으로 벤치마킹되고 있는데 이와 유사해 보인다.

 언덕을 올라서니 무덤이 나온다. 충청도 방식의 무덤에는 눈이 포근하게 죽음을 껴안고 있다. 그 옆에는 움막이 있다. 돌담과 볏집을 이용하여 삼년간 시묘살이를 했던 산 사람을 담아주는 임시의 처소 앞에서 나는 또 폴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떠 올린다. 죽음이 삶을 껴안아 주는 것인지 삶이 죽음을 감당하고 있는지 아직 경험하지 못하며 살아온 나의 생애는 이런 자리에서 조차 감상으로 면피하고 만다. 주막집으로 보이는 곳에 초가지붕이 나타난다.

 햇볕이 먼저 든 초가지붕에 노랑턱멧새 몇 마리가 모이를 쪼고 있다. 이제 쉽게 만나지 못하는 풍경을 또 선사해준다. 좀 더 돌다보니 운주사의 원형 다층석탑 일명 호떡탑이 보인다. 눈이 쌓인 향나무가 선물한 풍경이다. 그 아래로 화사한 딱새 한 마리 모이를 찾고 있다. 우리 삶의 곁에서 함께사는 새들은 참새 말고도 박새, 딱새 같은 새들이 민가 언저리에 집을 짓고 산다.

 

성곽 담벼락 솟대가 대청호를 바라보고

 

 세트로 변한 공간에서 가끔오는 수몰민이나 관광객을 보면서 새들은 무슨 생각을 가질까 싶다. 인간은 저런 새들은 다시 환생하여 기원의 대상으로 삼았다. 오리가 모티브가 되어 솟대를 세웠다. 물속을 다니고, 땅위를 다니고, 하늘을 날고, 어느 날 종적을 감추는 존재감. 철새의 속성상 떠나는 것을 인간의 일을 하늘에 고하러 갔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때 사람들의 소원도 가져다 전해달라는 염원을 바로 솟대에 담았던 것이다. 성곽 담벼락에 솟대가 물끄러미 대청호를 바라보고 있다. 신동문시인의 시비가 보인다. 4.19의 현장을 담은 시에서 격정의 시대를 살아간 시인이 이력이 떠 오른다. 신동엽, 김수영, 신동문, 고은. 관광해설사분의 공간을 두드려 말씀을 여쭌다. 고은선생의 시비는 없는가요“ 라고 여쭈니 이 동네분들의 시비만 있다고 한다.

 문의마을을 저처럼 찾는 사람들은 좀 있나요라고 여쭈니 좀 있지만 많이 실망하고 가서 안쓰럽다고 말씀하신다. 길의 한켠에서 눈의 초점을 더 올리며 나는 또 다른 시가 선물하는 풍경을 생각한다. 겨울 문의에서 내가 만난 것은 인공의 문화재단지가 아니라 생과 사의 간극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연에 귀의해야만 하는 젊은 시인 고은의 오도를 깊게 간직했다. 돌아오는 길 대청호 물 밑으로 잠겨 있는 산맥을 향해 달리던 길이 아슴프레하게 떠 오른다. 마치 나도 60년대 어느 날 문상을 위해 그 길 터벅 거리며 걸었던 것 같이.

전고필 <여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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