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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속히 배를 인양해야 합니다”
네 남자의 팽목항 추모 여행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7-02-17 06:00:00

 근 십여 년 얼굴을 뵙지 못한 분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왔다. 주말에 목포에 오는데 함께 만나자는 것이었다. 열 일을 제치고 만나야 할 일이었다. 광주국제영화제의 영화감독 대상 팸투어를 하면서 가깝게 지내게 된 인연이었다. 목포에 무슨 일인지 물을 이유 하나 없다. 문화계의 일이라는 것이 서로 마음 통하면 자연스럽게 합류하지만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목포시에서 초대해 내려오신다는 분인데 거기에 함께 하자니 그냥 가면 되는 일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분은 요즘이야 별로 크게 개의치 않는 싱글맘에 관한 내용을 다룬 ‘싱글즈’를 제작한 권칠인 감독과 연남동에서 친친이라는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분, 그리고 홍대 앞에서 세계 맥주박물관을 운영하는 분 이리 세 명이었다. 목포시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사업의 여러 부분을 영상과 시대적 흐름의 범주에서 둘러보시고 조언을 하고자 오신 것이었다.

 밤이 되어 광주로부터 내려간 나는 자연스럽게 그 대열에 끼었다. 한분을 제외하고 생면부지지만 벗이 좋아하고 함께하면 모두가 허물없이 대하는 것에 나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도시재생에 관한 이곳저곳의 사례 이야기와 요즘의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밤이 이슥하도록 술을 마셨다. 목포가 자랑하는 낙지가 술의 안주였다. 세상의 맥주를 이야기하는 벗에게서는 우리나라의 맥주가 얼마나 맛없는 것인지 비판이 쏟아져 나왔고 그러면서 가방에서는 연이어 진기한 맥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촌것인 나야 소주와 맥주가 최고인데 일품인 맥주에 계속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서울서 온 일행과 함께 떠난 목포

 

 새벽 4시를 넘긴 시간까지 네 남자의 이야기는 쏟아졌다. 영화의 촬영지로서 목포가 갖는 매력도 이야기되고, 영상문화에 대한 권력의 시선과 그것을 감내하거나 받아치면서 혹은 조롱하면서 영상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가 있었다. 연남동에 조성한 게스트 하우스 친친이 벌이는 실용적이고 실험적인 운영도 흥미진진했다. 그런 이야기의 말미에 세분이 조심스럽게 이야기 한다. 내일은 팽목항에 가야 되겠다고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저 바다에 아직도 인양 안 된 9분이 계시는데 그냥 돌아갈 수 없지 않느냐는 말씀이다. 그러시자고 했다. 우리들이 잠든 곳은 관해장이라는 여관이었다. 선창가의 비탈진 곳 바위언덕에 항만을 보는 조망성이 빼어난 곳이었다. 방 한 칸에 1만5000원의 여관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은 곳이었다. 옛적에 18년간 집권한 대통령이 이곳에서 자고 갔다고도 한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깨어난 아침 항구는 섬으로 가는 여행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일행들을 깨워 해창겸 아침을 먹는다. 식당은 만선식당이다. 건우럭탕을 맛깔나게 만드는 곳에서 우리는 어젯밤의 숙취를 달랬다. 강화도에서 밴댕이로 불리는 것이 여기서는 송어로 불린다는 것에 대해서도 한참의 말씀이 오고 갔다. 모두의 얼굴에서 만족하는 모습을 보고 목포대교를 떠난다.

 

 “팽목항에 가야 겠습니다”

 

 고하도를 지나 화원반도를 끼고 진도를 향해 간다. 화원반도에서는 빠질 수 없는 것이 목포구 등대다. 저 멀리 시야로 보이는 시아바다에 등대를 보면서 한가로운 풍경 사이에 포구를 통한 수탈의 현장 이야기도 펼쳐진다. 가까이 등대를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제물포의 등대나 마라도의 등대, 거문도의 등대로 다 찾아가 보았다.

 좌로 보이는 영암호에 철새들의 무리가 조금 보인다. 저 자연 그대로의 새를 두고 AI의 주범으로 모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를 규탄하며 또 우리는 달린다. 커다란 대교가 나온다. 진도대교라고 불리는 곳에서 우리는 차를 멈출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는 육지고 저 안은 섬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병선 12척으로 133척을 물리친 명량대첩의 현장이기에 모두들 눈과 귀를 바다 속에 집중해 본다. ‘약무호남이면 시무국가’라고 했던 말씀의 간절했던 현장 또한 여기에 해당하는 곳이다. 지형과 지세와 바람과 구름과 달과 파도와 물결을 전투에 활용했던 이순신 장군의 치밀함과 지혜가 도드라지는 바다, 하지만 그 바다 물결이 저기 맹골군도에서는 이리도 어리석은 죽음을 몰고 가는 후손들의 자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을까 진도의 내부로 가는 발걸음이 쉽사리 동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찌할 것인가. 목표는 팽목항인데. 차는 달리고 달리면서 진도의 내부를 관통한다. 봄동 배추를 출하하고자 작업하는 일손이 분주한 밭이랑을 보면서 예전 같으면 거기 질펀한 남도의 소리와 춤과 흥이 따랐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데, 차 내부는 묵언 수행하는 납자들의 동안거처럼 침묵이 흘렀다.

 

 시선을 상대방에 두지 못하는…

 

 새벽이 모자랄 정도로 말이 많았던 네 남자들의 침묵은 너무나 무거워 해창 어느메 쯤을 지날 때 말을 걸었다. “저기가 해창이예요.” “해창이었으면 돈이 많았겠네요.” “네 글죠. 그 동네의 전통도 깊은데 동네 분들의 한결같은 소망이 있어요.” “뭔데요.” “동네에 면서기라도 하나 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답니다.” 이 말에 잠시 또 정적이 흐른다. “진도에서는 개도 그림을 물고 다니는데 해창은 열외였나봐요. 워낙에 돈과 물산이 풍부하니 모두 돈을 버느라 아이들의 교육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나 봐요. 개간이 되고, 간척이 되면서 해상 물류의 거점 역할이 쇠퇴하고 아예 농경지화 된 후에야 땅을 치고 후회했나봐요.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뒤늦게 공부를 안 가르치신걸 안타까워하시죠.” 모두 고개를 끄덕 거린다. 벌교의 주먹이 개항기의 지역자본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완도의 김이 섬진강의 김 씨 아저씨의 우연한 발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며 고개 마루를 돌아 팽목에 이르렀다. 진도항 팽목. 맨 먼저 우리를 맞이한 곳은 세월호 팽목항 분향소였다. 사람들이 보였지만 그들을 볼 수 없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특징은 시선을 상대방에게 던지지 못하는 것이 일상화 된 것처럼 느껴졌다. 누가 지시한 것도 강제한 것도 아닌데 그랬다. 우리 네 명도 모두 그러했다. 타인과의 시선의 조우를 피하며 애써 바다를 보거나 하늘을 보거나 아예 내려 깔아 땅을 쳐다보는 것이 팽목항에 있던 시간 내내였다. 진하게 다가오는 슬픔으로도 이렇지 않았다. 그것을 넘어 가슴을 울컥 치밀어 오는 분노와 자책감과 안타까움을 팽목이란 지명이 전염시키고 있었다.

 

 참사 4년차, 여전히 안타깝고 슬픈 현실

 

 벌써 4년차에 접어든 그 참사 앞에서 멀쩡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한없이 아쉽고 아프고 안타깝고 슬프기만 한 현실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친친의 대표께서는 미수습가족을 만나 이런 저런 위로의 말씀과 그분들의 울화를 듣고 계셨다. 나는 저 멀리 바다를 응시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거두기 어려웠다. 잔잔한 바다의 내면 안으로 깊은 회한이 스쳐간다.

 2014년 4월16일 10시 무렵 나는 광주시청에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배가 기우는 모습을 보고 있었고 구조정과 헬기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저렇게 두 눈으로 보이는 현장인데, 게다가 해경과 어선들이 모두 일촉즉발의 위기 앞에 있는데 무슨 수를 쓰든지 구해낼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에 들어온 소식은 침몰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다 나왔지 라고 하니까 어이없는 이야기가 나왔다. 못 구했다는 것이었다. 이 최첨단의 시대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누구를 원망할 것인지 조차 말문이 막혔다.

 배가 접안하는 포구로 나갔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눈물을 아니 분루를 삼키지 못하는 중년의 아주머니는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냐고 오열하고 있었다. 말리는 따님의 눈에서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보살펴 주신 진도군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는 유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의 플래카드가 보였다.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약속의 플래카드와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이 진실을 인양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나부끼는 팽목항의 풍경은 그야말로 아픔 그 자체였다.

 

 고승의 사리보다 더 지엄한 말씀

 

 더딘 걸음으로 포구를 돌아 다시 미수습자 가족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왔다. 은화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슬픔을 온 몸으로 견디고 있는 어머니의 말씀은 단단하면서 송곳과 같았다. 진실을 방기하고 감성에 호도되지 말자는 내용 안에는 그간 정부와 국회와 권력 기관이 해왔던 잘못은 차치하고 번연히 배가 바다 속에 있고, 아홉 분의 미수습자가 있음에도 이를 그만 마무리하자는 주장 앞에서 결코 진실의 마지막 자락을 놓지 말자는 당부가 담겨 있었다. 뭐라 드릴 말씀 없는 가운데 은화 어머니의 말씀 속에 빠져든 한 시간여, 언론을 통해 들었던 내용과 진짜 현장이 전하는 말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멀었다. 배가 인양되고 시신이 수습되면서 그때야 진실의 창이 열리는 것이라는 것을 깊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죽비처럼 찾아드는 말씀 “최고의 우선순위는 속히 배를 인양해야 합니다.”

 팽목에서 우리 네 명은 그 배가 인양되는 순간을 간절히 염원하며 다시 목포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도시의 재생에 거는 돈이 수백억 원이 각 지역에서 떠도는 가운데, 진짜 사람을 위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자본은 하나도 인정되지 않는 이런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것이 슬프기만 했던 길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팽목에 가야 한다. 가게 되면 고승의 사리 보다 더 지엄한 말씀을 들어야 한다. 거기 삶의 진실이, 사람살이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전고필 <여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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