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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한반도의 대밭 담양에서
가마가 부서진 골짜기, 전설의 가마골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7-03-10 06:00:00
 담양은 영산강의 시원에 해당된다. 삼백오십 리의 시작은 용면의 가막골 용소다. 용이 살았다는 이 못의 깊이는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실재의 깊이를 나는 고등학생 시절 이미 마스터 해 버렸다. 아주 깊지 않았다. 숨을 연신 몰아쉬고 다이빙을 하니 돌 끝이 닿았다. 하지만 이것은 바닥에 닿았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하여 다시 다이빙을 하고 돌멩이 하나 들고 나왔다. 짓궂은 아이들은 폭포의 안쪽으로 용이 살았던 굴이 있으니 확인해 봐라 했다. 약간의 오싹함을 뒤로 하고 들어가 보았다. 거센 물살 속에서 눈을 뜨고 안을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 정말 있어 라고 대답했다. 그때 1985년 여름, 그곳에서 야영을 하신 분들은 다 용소 안쪽으로 굴이 있다고 지금도 굳게 믿으실 것이다. 이제와 밝히지만 난 본적이 없다. 다만 근동에 사는 고모부에게 들었던 이야기도 그러했고, 그 마을 아이들도 그렇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고착이 되는 것은 아주 실없이 생성된 것이 아님을 깨달을 나이가 되어 버렸다.

 

 사또 행차에 승천 못한 이무기

 

 무언가의 개연성. 용소의 전설에 따르면 그곳에는 이무기가 살았단다. 용이 될 날이 머지않은 이무기는 사뭇 힘이 넘치고 긴장감이 따르기 마련이며, 주변의 삿된 것을 물리치고 오로지 정진 또 정진해야 할 것인데, 그 이무기가 승천하기로 정해진 날, 하필이면 담양의 부사가 용소의 신령한 모습을 보러 구경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또의 꿈에 이무기가 등장하여 설득한다. 제발 다른 날 오시라고, 오면 경친다고. 그런데 사또의 고집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감히 이무기 따위가 한 고을 원님의 행차를 간섭하다니.

 결국 비운의 날짜는 다가왔다. 용소의 물이 들끓으며 신이한 기운이 감도는데 사또의 가마가 여기 떡 하니 나타난 것이다. 박차 오르려던 이무기는 결국 몸을 떨어뜨려 가마를 부수고 그곳에 피 범벅으로 죽게 되었다. 그러니 가마가 부서진 골짜기 가마골이란 이름과 피를 흘린 재라고 해서 피잿골이란 두 이름이 이 골짜기에 명명되었다고 한다.

 이런 유형의 이야기는 장흥의 보림사에도 유사하게 전해지지만 다른 점은 연못 안에 버티는 용을 도사가 신력으로 몰아내다가 생긴 연기설화에 해당한다. 이런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담양 부사는 참 대단한 이들이 많았다. 선비의 대의를 품고 국왕께 목숨을 내놓으며 진언한 눌재 박상이 담양 부사였고, 지금의 관방제림을 쌓아 전국의 수많은 관광객을 모실 수 있게 한 성이성, 황종림 같은 분도 담양 부사였다.

 지난해 여름 경북의 칠곡군에 갔다가 독특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의 문화관광해설사 선생님이 칠곡에 담양담이 있다는 것이었다. 담양 사람들이 와서 쌓은 담이 바로 담양담이다. 담양부사를 지낸 석담 이윤우 라는 분이 재임시 선정을 베풀었을 뿐 아니라 서책을 귀히 여기고 책을 간행하고 향교를 중수하는 등 학문의 분위기를 도탑게 하였으니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한 담양사람들이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인 칠곡의 왜관 곡촌에 있을 때 그 마을에 가서 곳간이 비어있는지 확인하고 농사를 지어주며 담을 쌓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이 남아있는 담은 나이가 장장 500살 된 담이 라는 것이었다.

 

 관방제림, 방풍·방어·액막이까지

 

 그냥 허투루 볼 일이 아니었다. 우리들이 전통적인 담을 보는 시야는 예쁜 꽃담 정도에 마음이 머무는데, 강진 병영에 있는 하멜이 도와서 쌓았다는 한담이나, 제주인들이 와서 쌓았다는 소쇄원의 애양단이나, 슬로우시티 삼지내의 담도 저마다의 땀과 이야기를 담고 서 있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마치 담양 부사가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저마다의 소임 속에서 아직도 칭송을 듣고 있는 이들이 현존하듯이 말이다.

 여행의 길은 그런 앎의 연속이다. 모르면 보는 즐거움이 앞장서고 알면 더 알아가는 즐거움이 따르는 것이 여행이다. 그저 사진 몇 장 안에 그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듯이 말이다. 관방제림은 관이 쌓은 제방이란 뜻을 가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인공수림은 마을의 보호수나 바람막이로 많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보길도 예송리의 해수욕장 변 천연수림이 그러하고, 남해의 물건리 방제림은 어부림이라고도 한다. 물고기를 불러들이는 힘을 가졌으니. 신안의 섬에서는 방풍림을 돌담을 쌓은 석축과 함께 우실이라고 이야기 한다. 단지 방풍의 역할이 아니라 마을을 외부로부터 방어하는 기능까지 겸한 것이고, 마을의 허한 기운을 보하는 풍수상의 액막이도 겸한다.

 이런 전통적인 인공의 수림 중에서 압권은 모두들 함양 상림을 꼽는다. 함양의 태수 최치원이 넘쳐나는 물줄기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심었다는 나무들이 이루는 힘은 무척이나 강하다. 담양의 관방제림도 그러하다. 함양은 군식을 통해 마치 동산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담양의 관방제림은 도열하는 병사와 같이 열식으로 심어져 있다. 제방에 뿌리를 내리고 넘쳐오는 물줄기를 흙과 단단히 결속한 나무뿌리가 막아내는 것이다. 그런 숲의 터널에 들어서 본다. 봄의 꼬리를 자르는 남은 바람이 아직은 맵차지만 섞여있는 남풍의 기운은 어쩌지 못한다. 둔탁한 외투를 벗지도 그렇다고 여미지도 못하는 관방제림을 걸으며 나는 저기 용소의 물줄기를 백리 구부길을 생각했고, 용소에서 죽은 이름 없는 부사와 여기 이름이 여전히 건재한 성이성, 황종림, 박상, 이윤우 부사를 떠 올린 것이다. 그리고 저 시원한 물 자락이 형성한 뜨락에 농사를 짓고 살아간 수많은 담양의 백성들도 복기해 본다.

 그들에게 죽록원의 대나무는 무엇이었던가? 김훈의 말대로 악기였고, 무기였을 것이다. 평화로운 시절, 삶의 벗이 되어준 악기, 유사시 금방 베어서 쓸 수 있는 무기, 호남의 인물을 이야기 할 때 옛 사라들은 광나장창을 이야기 했다. 광주, 나주, 장성, 창평이 그것이다. 절의 있고, 야무지고, 영리하고, 배려심 강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 담양의 곳간을 탐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일제 무뢰배들이었다. 이들은 송정리와 광주를 잇는 기차를 만들고 다시 담양까지 연결했다. 사람의 이용률이야 별 볼일 없지만 수탈한 벼를 실어 나르는 역할이 더 중요했다. 그런 시대에 이곳 사람들은 삼성삼평으로 대응했다.

 

 깍두기 같은 창고가 갤러리가 되고

 

 보성, 장성, 곡성, 남평, 창평, 함평 이분들의 저항이 얼마나 처절했고 완곡했으면 이들이 앉은 자리에는 풀도 안 난다. 고춧가루 서 말을 지고 물속으로 십리를 간다라는 말이 탄생했을까. 그런 중심에 담양이 존재한다. 전란이 끝나고 평화가 다시 찾아오고 죽세공과 논농사는 활황이 되었다. 그런 곡식을 보관할 창고가 필요했다. 남송창고는 그런 곳이었다. 붉은 벽돌로 야무지면서도 간결하게 지은 창고가 어느 때부턴가 휑하게 되었다. 제 역할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고, 비워진 창고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이가 있다. 장현우 화백과 최형식 군수. 이분들은 담양의 많은 창고를 문화의 곳간으로 다시 살릴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담빛예술창고였다. 관방제림과 바짝 잇닿아 있는 창고는 2년전 년부터 갤러리가 되었다. 그 안에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 또한 명물이 되었다. 깍두기 같은 창고가 갤러리가 되고 카페가 되어 예술의 향기 가득하니, 푸른 숲만 찾아오던 관광객의 층이 더욱 다양해 졌다. 갤러리와 건축, 도시 재생을 공부하는 이들이 담양으로 부쩍 더 오게 된 것이다.

 어느 지자체건 관광에 대한 고민을 안기 마련인데 담양의 고민은 다수의 관광객이 아니라 고품격의 관광을 즐길 수 있는 품격 있는 관광객의 유치였다. 그런 새로운 시도가 바로 담빛창고를 통해 실험되고 실행되는 현장이었다. 갤러리에는 세한고절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담양의 예술가들이 세화 그림을 선보이고 있었다. 세화가 아니라 담양의 정신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논에만 심취한 박문종 화백, 분청사기와 도자에 열정을 다하는 김영설 작가, 미디어 아트의 이이남 등 담양이 좋아 담양에 입주한 작가 분들까지 마치 관방제림의 나무들이 서로 어깨를 동무하듯 그렇게 전시장에서 만나고 있었다. 나규채 작가의 대숲을 보면서 나오는 길, 담양의 하늘을 다시 올려 본다. 푸르디푸른 하늘, 고개를 내려 보니 맑디맑은 강물이 하늘을 담고 있다. 한반도의 대밭이라는 담양은 그렇게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가>
담빛예술창고.
담빛예술창고 내 카페.
담빛예술창고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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