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는 열려 있다. 목포의 전방부는 육지다. 영산강을 타고 내륙으로 치닫는 위치에 목포가 있다. 뒷개라 불리는 북항이나 전면부의 목포항이나 모두 대양을 향해 또 내달리는 위치에 있다. 하여 목포는 바다를 향해서도 열려 있다. 바다와 육지 모두의 길목 위에 목포의 지명이 성립되었다는 말은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1박2일의 워크숍을 목포의 한 호텔에서 가졌다. 최근의 여행트렌드에 관한 이야기를 초대하신 분으로부터 들었다. 게스트 하우스로 대표되는 젊은이의 여행 문화는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잠을 자는 곳으로 인식하는 어른들의 통념은 게스트 하우스를 여행과 인생의 플랫폼으로 여기는 젊은이의 생각을 인지하지 못한다.

 순천에서 일 년 남짓 순천댁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던 친구의 경험은 그간의 통념을 풀어 놓게 만든다. 열 댓 개의 침대를 가지고 운영하지만 많을 때는 150여 통의 전화를 받으며 꽉 찬 자신의 집 대신 다른 곳으로 안내하여 그 집의 강점과 약점을 미리 일러주는 자상함이 함께 있었다. 하루를 함께하는 친구들과 지역 농산물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는 체험을 하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작은 점포의 위치와 가격을 일러주며 점차 마음을 열어가고 가볍게 네트워크의 밤을 가지며 지역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그녀의 영업 모토였다.

 청년의 열망에 조응 못하는 제도

 

 어지간한 사람들에게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은 익명성을 토대로 자신을 해체하는 경험을 준다. 청년들, 사방이 가로막힌 청년들이 숨쉴만한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여행이라고 한다. 여행을 통해 숨 막힌 현실로부터 나를 놓아주고, 낯선 곳에서 나를 다시 추슬러 가는 여행에 든든한 벗이 철도여행 “내일로”라는 할인권이라고 했다. 몇 해 전 TV에서 내일로 여행을 하는 청년과 인터뷰 모습을 잠깐 보았는데 “여행은 다리가 떨릴 때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두근거릴 때 떠나는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에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그런 내일로 여행객이 발굴한 여행지가 전주, 군산, 순천, 여수, 안동 등으로 각인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그 영역에 내 지역이 포함되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런데 어쩌랴. 젊은 내일로 여행객을 맞이할 준비태세가 안되어 있다. 게스트하우스에 내국인의 숙박은 위법이다. 용인하여 주고 있을 뿐이다. 관광 진흥법이나 숙박관련법은 미래를 끌고 나갈 청년들의 열망에 조응하지 못한다. 기존의 통념이 여전히 자유로운 관광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한다. 법의 한계에서 게스트 하우스는 고발당하거나 단속 대상이 되어 문을 닫는다.

 여행자는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나를 스펀지처럼 받아주었던 인간적인 매니저와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순천댁도 그러한 유형에 속한다. 순천을 버리고 서울에서 청년의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그 자신조차도 청년이기에 그들의 속상함과 훌훌 털고 싶고, 하고 싶은 일들을 명확히 알아서 1:1로 친구 맞이하듯 운영하듯 게스트 하우스는 명성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 아픈 상처를 들춰내고 여행의 트렌드를 좌지우지 하는 젊은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우리는 공부를 또 했다. 몇 가지 용어가 새로웠다. 금손이라는 고객이 있다고 했다. 황금손일터이다. 금손의 고객은 하룻밤 방값이 100만 원을 넘어도 오로지 내 인생을 위해 기꺼이 써 줄 수 있는 손님을 뜻했다. 30대 초반의 여성 중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한데 혼자가 아니다. 친구들 서넛과 돈을 보태서 일종의 소분화하여 그 밤을 공유한다고 했다.

 

 갓바위·북항·목포대교…

 

 `칩시크’라는 말이 또 등장했다. 싼 것을 뜻하는 cheap 과 chic 매력있는이 결합한 용어다. 절약해서 쓰되 가성비는 최적화한 소비를 뜻한다. 젊은 여행자들이 밥 한 끼에 최대로 쓸 수 있는 평균적인 돈이 1만5000원이라고 했다. 밤에 함께 술을 마실 때 부담 없이 지불할 수 있는 돈이 5000원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 식사와 그 밤이 가장 훌륭하게 생산되는 소비를 열망하는 것이다. 또 다른 용어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여행꼰대’라고 했다. 저렇게 살뜰하거나 혹은 오직 한번만이라도를 생각하며 여행하는 젊은이 곁에서 초를 치는 어른들을 뜻한다고 했다. “뭔 돈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어?, 우리 때는 무전여행 안 해본 사람이 없어, 뭐 볼게 있다고, 취직은 어떡하고” 등등 숨 막혀서 겨우 떠나온 젊은이에게 돈 한 푼 보태주지 않으면서 여행에 찬물을 끼얹는 어른들을 칭하는 용어였다.

 서울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광주에서 택시를 타고 어디로 가자면 친절한 아저씨는 “뭣할라고 혹은 뭐볼게 있어서 거기 가요?”라는 안 해도 될 질문을 한다고 그만 들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여행에는 이렇게 수많은 잠복적인 태클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야 하는 것인지 참 질문이 많아지는 시간이었다. 여행의 트렌드를 보면서 우리도 목포를 나갔다. 목포 하당은 마치 신도시와 같다. 주택과 소비시설이 인접하여 있으면서 바다라는 좋은 자연이 늘 곁에 있는 곳이다. 춤추는 바다분수쇼가 밤마다 이뤄진다. 음악 소리에 맞춰서 물줄기들이 춤을 춘다. 그러다 별안간 하늘을 뚫을 기세로 솟구치기도 한다. 형형색색 빛나며 감미로운 음악과 춤사위를 선사해주는 바다의 분수가 명물이 되어 있다. 그 분수 쇼를 구경하고 뒤를 이어 갓바위까지 걸어갔다. 자연의 산물 중에서 바다의 파도가 일궈낸 바위 조각은 마치 사오정을 보는 듯한 우스꽝스러움과 더불어 신비함을 주었다. 밤바다를 거니는 이들이 많았다. 다시 북항쪽의 숙소로 돌아와 목포대교의 불빛에 젖어 본다. 고하도를 비추는 야간경관등과 대교의 불빛이 결코 잠들지 않을 것 같은 밤바다를 연출한다. 하지만 저 대교의 바다를 건너면 커다란 슬픔을 간직한 세월호의 기착지가 거기 있다. 이 또한 안아주는 목포의 모성 안에서 잠을 잤다.

 

 3층짜리 여관 개조 여행 플랫폼

 

 오전 잠시간의 이야기를 마치고 목포로 이주한 강제윤 시인을 찾아 나섰다. 시인은 목포 1935 봄이라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기거하고 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나와 다닐 곳이 많았다. 제일 먼저는 목포의 예술가들이 조성한 문화예술협동조합 나무숲에 들렸다. 구도심의 일본식 가옥을 옛 결을 살리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도예가의 전시와 판매가 이뤄지고 있었고, 몇 분의 아는 지인들을 만났다. 광주에서 찾기 힘든 풍경이었다. 스스로 자생을 도모하는 이런 모습이 왜 문화중심도시민인 내게 낯설게 보인지 의문스러웠다. 그 뒤를 이어 시인이 두 명의 청년과 만들고 있는 여행 플랫폼이 될 공간을 찾았다. 3층짜리의 여관을 개조하고 있었다. 함께 일할 동료 두 명은 서울에서 기업에 다니다 여행분야의 미개척 분야를 스스로 일궈간다고 했다.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 친구들이 저지른 일을 보니 그냥 가슴에 팍 꽂힌다. 제주의 표선에 오래된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해서 지친 육지 젊은이를 위한 여행 플랫폼 “한량유치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모든 것을 비워내는 여행학교 개념이었다. 40여 일 동안 700여명의 젊은이가 이곳을 경유했다고 한다. 뭔가를 할 수 있는 자유와 하지 않을 권리를 주었다는 곳의 운영은 이 두 명의 경험과 기발함으로 이룩한 성과였다. 이를 토대로 목포를 육지 여행자의 신안섬과 제주와 대양을 향한 여행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가진 것 다 털어주고 싶었다. 벅찬 희망을 안고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오래된 백반 집에 앉았다. 정해진 상차림이 있는데, 강작가가 오셨다고 생선이 쉬지 않고 나온다. 목포를 상징하는 온갖 종류의 생선이 막걸리 잔을 놓지 못하게 한다. 목포의 옛 정취에 취하고, 맛에 취하고, 온전하게 목포관광을 끌어가보고자 하는 의지에 취하면서 목포로의 배움은 중단 되었다. 1935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어나 보니 여섯시 서둘러 별장으로 돌아왔다.

 광주에도 이런 여행의 새로운 흐름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찾아야하는데 내 움직이는 범주가 너무 좁았는지 아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참으로 아쉽다.

글·사진=전고필 <여행전문가,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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