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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타이베이에 들다<2>
예술가들 무단 점거…문화 덧입다
보장암 국제예술촌을 엿보다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7-11-03 06:05:01
 우리는 게스트하우스를 통째로 빌렸다. 위치가 보장암국제예술촌에 있었기 때문에 5일 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기에 너무나 훌륭한 여건이었다. 보장암 국제예술촌이 생긴 내력과 현재의 운영상황을 전부 섭렵할 수 있겠다는 생각, 아울러 쭝짜오 선생이 그곳에서 연극연습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보장암국제예술촌으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는 차단막이 있었고, 경비초소가 별도로 있었다. 경비초소에 우리들이 묵을 숙소의 열쇠가 있고, 초소원들은 랜턴을 들고 우리에게 길을 안내했다. 나는 이미 십여 년 전에 이곳에 들른 경험이 있지만 또 다시 보니 생소했다. 마을 입구에는 사당이 있고, 골목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니 벽화와 함께 숙소가 나타났다. 벼랑에 기대인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고 있었다. 방은 총 7개가 있었고, 그 방 모두가 우리가 사용할 것이었다. 각자 방 배정을 받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 식당으로 모두 모였다. 12시가 넘은 시간의 정적 속에서 다음날의 일정을 체크하며 각자의 방 구경도 해 보았다. 그리고 다시 진먼고량주를 텄다. 연신 흘러내리던 땀방울도 40도가 넘는 술에 녹아 내렸다. 술기운에 열대의 밤을 잊어버리고 발코니 쪽으로 나가 보니 강을 끼고 있는 대만의 밤 풍경이 제법 아름다웠다.
 
▲빈 양조장이 문화기지 되기까지
 
 숙소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생각을 가지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여섯시 발코니로 나가니 이곳에도 걷기의 열풍이 있는지 강변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산책과 조깅을 하고 있다. 푸른 잔디와 시원하게 흐르는 강변의 풍경 사이로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곶부리처럼 튀어나온 강변에 낚시꾼 두 명이 앉아 있다. 폼새로 보니 붕어를 낚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호기심에 나가볼까 하다 풍경으로 남겨두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빵이 있다. 이곳에서 조식으로 토스트를 준비해 놓은 것이다. 먹을까 말까 망설이는데 함께 온 광주시의 주무관께서 죽을 가져오신다.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사오신 것이라고 유망주 친구들이 배가 든든해야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다며 내놓으신 것이다. 유망주 친구들을 불러 들여 함께 아침을 먹는다. 매식의 문화가 자리 잡은 대만의 아침을 이런 형태로 경험한다. 내일부터는 배움 여행을 온 친구들이 밥을 사오도록 하고 감사히 아침을 먹었다.

 오전 9시 모두가 모여 보장암 마을을 빠져 나온다. 어젯밤 못 보았던 각종 건물의 쓰임이 눈에 들어온다. 미디어 센터가 있고, 도서관이 있고, 안내소, 카페 등이 있다. 예전 일제 강점기 일본군들의 군사기지였던 곳인데 대만의 가난한 군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동네였다. 우리로 치자면 목포의 다순구미(온금동)과 같은 비탈에 물고기의 비늘처럼 촘촘히 집을 짓고 산 동네였다. 마을의 세세한 것은 따로 탐방하기로 해서 모두들 곁눈질만 하고 차에 오른다.

 타이베이의 중심가로 향한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화산 문화창의산업원구다. 1914년에 세워진 대만 최대의 양조장이었던 곳을 예술가들이 마치 스쿼트(Squat·예술가들의 무단점거)와 같이, 점유하면서 쫓기고 싸우고 다시 합의하면서 만들어진 문화지구다. 본디 양조장이었던 건물들은 그 형태 그대로를 보존하면서 이곳에 예술이 들어온 것이다. 특히 시각예술이 중심적으로 배치된 곳이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예술을 실생활과 접목한 메이커스 문화가 이 안에서 발현되고 생산되며 소비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연극 공연장이 있고, 미술 전시장이 있으며, 극장도 있고, 펍과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 양조장이 지닌 건축공간의 특성상 박스 형태를 띠며 내부가 비워져 무엇이든 들어오면 그 자체가 디스플레이가 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곳이 양조장의 기능을 멈추고 비워진 해가 1987년이었다. 10여 년간 방치된 공간을 예술가들이 그들의 창작활동의 구심점으로 눈에 들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입주하고 내쫓고… 그리고 집단지성
 
 마치 한국의 예술가들이 그들만의 공유지를 찾는 것처럼 대만의 일군의 작가들이 비워진 공간에 들어가 창작활동을 시작하니 타이베이 시 당국에서는 위험천만한 곳에 깃든 예술가들이 마뜩치 않아 몰아내려 하고, 가뜩이나 창작공간의 부족함과 공유지대가 없는 예술가들은 이에 대항하여 나가니 이제 집단지성의 공론장이 생기고 결국 예술지대로 만들기로 결정하며 예술인들이 입주한 것이었다.

 대만의 문화부 사무실도 타이베이 시가 재산권을 가진 이 낡고 오래된 역사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주조장이었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아카이빙도 되어 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로 들어온 각종의 장르 예술이 환하게 관객을 향해 열어두고 있어 좋았다. 우리에게도 이런 건물이 있다면 하는 부러움으로 유망주들의 눈은 초롱하게 빛나며 하나라도 더 보고자 두어 시간을 지치지 않고 다닌다.

 당시 37도에 이르는 대만의 날씨는 이런 우리들의 몸에 땀을 흥건히 선물한다. 습도가 높은 곳이고 비가 잦은 탓에 건물의 외벽에 자라는 나무들은 가지와 뿌리가 외부로 노출된 것이 부지기수이고, 어떤 나무는 건물을 박차고 나와 또 하나의 이색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류의 나무가 잿빛의 건물을 푸르게 바꿔 놓은 곳에서는 웨딩포토를 찍으려는 예비부부들의 포즈가 정겹다. 사람 사는 곳의 풍정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더위를 식히려 북카페에 들어갔다. 꽂힌 책들을 보니 대만의 문학에 중심을 둔 판매 공간이자 회의 공간이었다. 드라이플라워들이 머리 위에 매달려 있고 한켠에서는 예술가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본디 이 공간을 이해하려면 안내를 받아야 할 것이지만 우리가 들른 시간은 이른 시간이라서 해설하시는 분을 만나지 못했다. 2만㎡에 달하는 부지의 곳곳을 돌아보면서 새삼 세상을 바꾸는 힘 중에서 예술만큼 강한 힘이 어디에 있을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이 공간을 거점 삼아 다양한 예술을 실험하고 있는 작가와 이들의 작품을 유통하고 판매하는 각종의 숍들 사이에서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생각해 본다. 저 유연하면서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세워가는 모습과 비교되는, 전당의 깍두기 같은 모습은 정이 가지 않는다. 화산에 있는 보리수나무처럼 전당의 야외광장에 심어진 팽나무들이 그나마 퍽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또 한편으로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전당의 핵심 콘텐츠가 어서 애초의 콘셉트대로 찾아졌으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도 든다.

 한 줄로 다니던 우리 일행은 이제 30분의 자유 시간을 갖고 제 눈높이로 이 공간을 탐색했다. 단체여행의 슬픔은 누군가의 지시와 누군가의 해석으로 인해 내 관심사와 상관없이 관점이 강요되는 것이기에 다른 모든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시선으로 해찰할 수 있게 내버려 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유동 전남방직이 이와 유사할까?

 모두들 다시 모여 야류로 향하는 차 안에서 물었다. 광주에서 이런 공간과 비슷한 곳이 어디냐고 했더니 유동의 전남방직이 유사하다고 말한다. 맞다. 하지만 그곳은 다른 사기업이 들어와 있다. 광주시가 활용할 수 있는 시유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작금 광주의 현실임이 또 절박하게 다가온다. 차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설명을 한다.

 “서울의 혁신테마파크 같은 경우는 과거 질병관리본부로 사용하던 곳으로, 질병관리본부가 이전하면서 생겨난 부지를 창조적 에너지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단체를 모셔와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가 사는 광주는 아직 그런 부분에서 대단히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새 정부가 각 지역별로 혁신파크를 운영하도록 한다는데, 광주는 과연 어떤 부분에서 혁신을 기할지도 의문이다. 건강하고 기발한 사고는 닫힌 곳이 아니라 열려 있고 환하거나 고즈넉한 곳에서 이뤄지며 다종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것인데, 전당이 그러하듯,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내부로 모여 들게 하는데 익숙해진 것 아닌가.”

 이제 우리의 여정은 이곳 화산뿐만 아니라 송산이라는 곳의 문화원구도 들를 예정이다. 모두 일종의 문화센터인데, 화산은 비교적 예술중심이라면 송산은 매우 상업화된 메이커스 중심이라는 사전 정보를 말해 주었다. “서울의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하여 퍼져나가고 있는 메이커스 문화는 아직 광주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작고 소소한 것 속에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름다운 수작업이 교환 판매되는 시장으로서 대인예술시장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안도 하라”고 말하며 야류로 향했다. 야류 그 아름다운 해안의 절경들을 기대하며 차는 타이베이 시내를 벗어나고 있다.
전고필 <여행전문가·대인예술시장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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