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옆 오막들, 스펀의 밤

 지우펀은 정말 긴 시간 동안 체류해 보고 싶은 곳이었다. 좁은 골목으로 형성된 시장의 매력이나 그 시장 안에 담긴 상품이 주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소구력, 그리고 시장의 전반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화려한 홍등과 각양각색의 디자인들이 그러했다. 거기에 ‘비정성시’라는 영화가 준 대만 역사의 굴곡까지가 지우펀은 발걸음을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만의 여행이 아닌지라 우리를 기다리는 차에 탑승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행선지는 모두가 기대하는 곳 스펀이었다. 스펀은 기차역이 있는 곳이다. 광주로 치자면 남광주역과 비슷한 곳이라 할만 했다. 남광주의 사람들은 그 선로를 따라 해안 지역, 산간지역의 산물을 가져와 장터를 형성하지만 스펀 역의 사람들은 기찻길 옆에서 살면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해 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기찻길 옆 오막살이 같은 천등을 파는 가게들이 연달아 있었고, 기차와 가게와의 거리는 2m도 안 되는 듯이 보였다.

 매년 정월 보름이면 이곳 일대에서는 천등 축제가 펼쳐진다고 했다. 선로를 따라 형형색색의 등에 소원이 적히고 불이 타오르며 하늘로 오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한다. 그런 유래로 평일에도 기차역을 통해 당도한 손님과 버스로 오는 손님들이 철로옆 가게에서 등을 사고, 그 등에 자신의 소망을 적은 다음 불을 지펴 하늘로 올린다. 곱게 곱게 하늘로 가는 동안 사람들은 두 손을 모아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기를 기원한다.
 
▲매년 정월보름 소원 담은 등 날려
 
 스펀에는 우리 친구들 말고도 한국인들이 무척 많았다. 그들이 등위에 적는 내용을 가만히 훔쳐본다. “로또 당첨 대박 기원”, “원하는 대학 보내주세요”, “누구누구야 우리 사랑 영원히”, “우리 가족 행복” 등과 같은 사랑과 건강과 재물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 마치 풍등 사이로 피어오르는 뜨거운 불길 같은 것이 이곳 대만하고도 스펀까지 출장온 것이다.

 우리 일행들도 함께 소원을 적는다. 은밀한 소원을 바라는 이는 타이완 달러로 150원 하는 것을 혼자 사서 날리기도 하고, 대부분은 4명이 한 조를 이뤄 4개의 면에 소망을 적는다. 그 소망 안에 각자의 현재와 미래가 드러난다. 이런 소망등은 색깔별로 구분되어 꿈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려준다. 이를테면 빨강은 건강과 평안을 노랑은 금전과 재물을 보라색은 학업과 시험을 주황은 연애와 결혼을 담은 색으로 판매되는 것이다. 유니폼을 입고 일사분란하게 등을 판매하고 글을 쓰게하고 불을 지펴주고 기념사진을 찍어주며 만족도를 높여주는 직원들의 프로다운 태도도 대단하다.

 소박한 소망들의 연찬 뒤로 하늘위에 불꽃의 향연이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는 황홀경이 스펀에서는 펼쳐지고 있었다. 한시간 여 동안의 꿈 날리기는 그렇게 끝을 맺고 모두는 지친 하루 일정을 접고 차에 올랐다.

 오늘 야류를 비롯하여 진과스, 지우펀, 스펀까지의 일정은 강한 태양과의 접전이었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의 체력과의 싸움도 되었다.

 누군가 여행은 다리가 떨릴 때가 아니라 가슴이 떨릴 때 떠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듯 했다. 비교적 폭염을 잘 견디는 나였지만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곡기를 다 채우지 못한 나는 쩔쩔 맬 수밖에 없는 강행군이기도 했다.
 
▲‘딩타이펑’ 관광지 식당의 자세
 
 우리를 태운 차는 시내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이제 저녁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저녁은 대만의 별미인 만두로 정했다. 타이빼이의 필수관광 코스라고 하는 ‘딩타이펑’ 우리 말로 해석해보면 풍요로운 커다란 솥(鼎泰豊)을 의미하는 상호를 가졌다.

 깔끔하게 단장된 식당에서 이 나라의 관광 맛집을 감상한다. 종업원의 옷차림은 깔끔하기 그지없다. 바닥이나 테이블의 셋팅도 청결하기 그지없고, 나오는 음식을 서빙하는 손길에도 프로다운 숙련된 메너가 베어있다. 예약을 하지 않고 오는 손님들은 이미 테이블이 만석이라서 돌려 보내는 것도 예의를 갖추고 응대한다. 이 정도로 하니 국제적인 관광맛집으로 알려진 것 아닌가 싶다.

 다양한 종류의 만두를 접했다. 주름이 가득한 만두를 터트리니 육즙이 입안 가득 베여온다. 대단한 솜씨다. 저 물처럼 응건한 것을 만두소로 담아내며 쟁반에는 국물 하나 흘리지 않고 내어오는 것이 그러했고, 돼지고기, 닭고기, 새우, 게 등을 소로 내어와 미각을 촉진하며 질리지 않게 맛을 전달하는 주방의 솜씨가 그야말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우리를 안내하는 유학생인 여동화라는 친구의 얘기로는 예약하기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오늘 하루의 스케쥴은 이곳 식당에 예약된 시간을 향해 달려온 여정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한다.

 새삼 우리나라의 관광지 식당을 돌아보게 한다. 얼마전 송정역 앞 떡갈비 집에 갔는데 일손이 부족했는지 종업원이 홀을 뛰어다니고 있었고, 기본 셋팅을 하는데 뼈조각을 담는 아직 물기가 덜가신 그릇에 컵과 물수건을 담아서 테이블에 내어놓는 모습에 아연실색할 정도였다. 초기 셋팅이 이러한데 본식에서 도대체 기대할 것이 못되고 이미 기분이 상한 상황에서 본식인 떡갈비를 대하게 되었지만 한번 상한 기분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히 맛없는 식사 시간이 되었고 이렇게 먹자고 했던 내 자신이 함께 한 벗들에게 무안해졌던 기억이 있다.

 광주의 관문이자 교통환승지로서 송정역과 1913 송정역 시장이란 관광 매력물을 가진 곳에서 게다가 객단가 또한 만만치 않은 이곳에서 받은 서비스 응대는 곧 광주 전체의 서비스 품질과 직결된다는 생각으로 번져왔다. 사실 관광은 철저하게 인적 서비스에 의존하는 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담양의 쌍교 숯불갈비와 같은 경우는 종사원의 교육과 복지에 더 진력했고 그 덕분에 청결, 친절, 풍만함 등으로 인기를 지속하는 것 아닌가 비교가 되는 것이다.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상품화
 
 허기진 배를 채우고 우리는 시내의 마트를 들렸다. 사람 사는 모습도 보고, 그 동네의 식탁이 무엇으로 꾸며지는지와 생필품이 무엇인지 궁금했으며, 무엇보다 숙소에서 하루의 소감을 들어보는 자리를 만들고자 음식이 필요해서였다. 마트의 꾸밈새는 여느 한국의 마트와 다르지 않았다. 동남아 지역이라 야채와 과일이 더 다양했고, 곳곳에 이국적인 상품들이 보였다. 무엇보다 한국 음식의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된장과 쌈장과 고추장과 김치, 장아찌, 김, 햇반 등이 유독 눈에 도드라졌다. 야채와 돼지고기와 빵, 음료와 술을 사들고 지친 몸을 끌고 모두는 숙소로 돌아왔다. 정말 숨 가쁘게 달린 하루의 여정이었지만 회고하는 자리에서 보고, 만지고, 느끼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했던 자기만의 대상을 보는 방식이 확연히 드러났다. 일반적인 패키지를 택하는 대신 우리들이 코스를 짜고 함께 다니며 현지의 여행사는 차와 식당만 예약해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 주효했다. 그렇다고 대만의 명소를 생략하지는 않고 명소와 공부 사이를 두루 보는 방법이 적절했던 것이 숙소에서의 대화에서 드러났다.

 어둠이 깊어지고 낯선 타국에서 누군가 기타를 꺼내온다. 기타의 선율을 따라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뒷걸음치듯 빠져나와 발코니에서 담슈이 강물과 교량을 내려다본다. 불빛으로 치장한 도로와 붉은 불빛과 푸른 잔디와 먹빛 강물의 행렬을 보며 여행의 감회에 젖어 든다. 그래 익숙한 것들 사이에 비집고 나온 낯선 것들이 주는 탄성은 놀랍게도 언젠가 보았던 혹은 예감했던 것처럼 크게 놀랍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다가오는 것 아닌가 싶다.

 이제는 대만이 좀 더 친근해졌다. 어찌보면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설의 화법으로 자원을 대하고 상품화 하는 기법이 오히려 우리들의 음흉한 생각보다는 더 낫지 않는가.

 잠자리로 들어가 내일의 코스를 그려보았다.

 송산문화창원구, 보장암, 타이빼이 아트 빌리지, 스린 야시장이니 크게 바쁘지는 않지만 보고 듣고 질문해야 할 것이 많은 곳이라는 생각이 인다.

 그렇게 대만을 본격적으로 들어간 하루는 저물어 갔다.
전고필 <여행전문가·대인예술시장 감독,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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