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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타이베이에 들다<6>
도심 흉물이 문화 생산기지로
송산문창원구와 보장암 국제예술촌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8-02-23 06:05:02
 대저 문화의 힘은 어디에서 발원하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인류 저마다가 겪어야 할 외부적 환경은 지질과 대기의 영향권에서 각기 다르게 조응하게 된다. 인도의 우기는 수행자들의 사원을 동굴 속 사원으로 끌어 들였다. 산지가 많은 한반도는 평지형 사찰 보다는 산지형 사찰이 우세하다. 농업 중심의 역사를 가진 우리 조국은 한강을 수계로 그 이남은 논농사가 성행하고 이북은 밭농사가 성행했다. 덕분에 논농사를 가진 아랫녘은 추석을 크게 쇠고, 밭농사 중심의 위쪽은 단오를 크게 쇤다.

 그러한 공동체적 삶을 대대로 누려오다 급격하게 산업화로 치달으면서 공장 중심의 생산 사회로 접어들었다. 공동체 사회가 해체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반도의 동쪽을 중심으로 들어선 공업지대는 연기가 그칠 날이 없었고, 사람들의 이주는 그런 공장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신유목 사회로 접어들었었다.

 그러한 공장 중심의 사회가 첨단 산업의 시대로 이행되면서 또 한편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인구의 대부분은 수도권으로 집중되어 있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맡아서 할 사람들이 사라져 버렸다. 낡은 체제의 공장은 기계화로 대체되면서 비어진 곳이 많아졌고, 주택 중심으로 살던 사람들은 성냥곽 같은 아파트로 살 자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폐산업 시설이 많아지고, 빈집이 많아지고, 유휴공간이 곳곳에 생겨난 상황이 지금 한반도의 현실이다.
 
▲폐쇄된 술공장에 연극인들 몰려들어
 
 거기에 자가용의 공급과 스마트 시대로의 이행은 라이프 스타일에 있어 너무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상품의 수명주기도 예전 같으면 각광을 받는 제품이 십 수 년은 생활에서 함께 했지만 이제는 불과 몇 개월 만에 신제품이 사용하던 제품을 밀어내기 일쑤인 상황이 되었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접점인 시장이라는 것도 소비자의 트렌드 변화와 이에 즉시적 대응을 하는 대형마트에 밀려 소멸되어 가고 있는 처지가 되고 만 것 아닌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인류는 처음 공장을 건립할 때 물의 공급이 원활하며 노동력이 쉽게 모여드는 곳을 택했다. 공장이 도심 내에 입지한 것은 그러한 연유였다.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당인리 발전소 같은 경우가 그에 해당하고 청주의 연초제조창도 그러하다.

 타이빼이도 그런 역사적 과정을 겪었다. 이전에 들른 화산창의문화원구는 술 공장이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찾은 송산문창원구는 담배 공장이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시내의 중심지에 담배 공장이 들어섰다. 1998년 공장이 폐쇄되기 전까지 60여 년간 담배생산 기지의 역할을 한 것이다. 화산의 폐쇄된 술공장에 연극인이 들어와 공연을 올리면서 사회적 담론을 형성했던 기억이 이곳 송산에 까지 도달했다. 도심의 흉물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문화생산의 기지로 탈바꿈하는 것에 대한 예술가들의 의지가 화산을 넘어 송산으로까지 확산된 것이 이곳이 문화 창작의 원천이 된 이유다.

 뜨거운 날씨임에도 나무 그늘아래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들의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연못에는 여름 철새들이 자맥질을 하고 있다. 그 오리들의 모습이 작품이 되어 건물 외부 곳곳에 배치돼 있다. 대만인들의 시름을 달래준 담배공장이 이제 대만인들의 문화를 살찌우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거대하게 비워진 공간에는 각종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가우디의 전시는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었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의 전시도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공장의 많은 유휴공간이 이렇게 수준 높은 전시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또 한편에서는 예술가와 기술자들이 협업하여 만들어낸 각종 생활용품이 보였다.

 직접 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를 겸한 숍 공간은 수제작을 통해 오직 하나뿐인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우리나라로 보면 마치 세운상가와 같은 Makers Studio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디지털 라이징 시대, 아날로그 생산양식
 
 함께 간 일행들은 이런 파격적인 공간 운용에 대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도 전국 각지의 아트마켓이 성행하고 있지만 이런 류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그다지 많지 않다. 기계화와 첨단화, 대량생산화 등은 물질 이기주의를 부추기며 대량소비 사회를 이끌어 가는데 이곳은 정 반대였다. 수작업만이 이곳에 상주하며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디자인의 창의력을 가진 세상에 하나 뿐인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고, 디자인 숍을 중심으로 현장 판매를 진행하고 있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몇 해 전 일본에서 만났던 메이커스 베이스의 생각이 났다. 어른들을 위한 비밀 아지트라는 닉네임을 가지면서 평생을 수작업을 하고 은퇴한 장인들이 놀면서 자신이 가진 재주를 드러내고 제도화된 틀에서는 생산해 내지 못했던 창의적인 제품을 직접 만들어 보게끔 여건을 갖춘 공간을 제공하는 시스템이었다.

 세상은 디지털 라이징으로까지 변해 가는데, 여기에서는 아날로그로 구축된 새로운 생산양식을 경험할 수 있었고, 모든 공간과 설비가 그에 부응하게 편재 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이 모습이 너무나 경이로웠다.

 대인시장의 야시장을 수제품 중심의 세러를 초대해서 진행하고 있지만 관람객의 이목을 끌만한 새로운 창작품이 쉽게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서 끙끙 앓고 있는 처지였던 것이다. 한데 타이빼이시가 주도하여 이 공간을 창작자들에게 내어주고 각종 설비와 지원을 하고 있으며, 판로까지 개척해주는 시스템이 부러워졌다. 더불어 이곳에는 대만 디자인센터까지 입주해 있었다. 이를테면 소규모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창작 공간은 아시아문화전당의 창작소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문화가 삶의 중심이 되는 도시 광주에서 온 내게 송산문창원구가 보여준 모습은 광주만 그렇게 살지는 않고, 세계의 유수한 도시가 문화를 삶의 표피가 아니라 내부로 견고하게 강화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해 준 것이다.

 서점과 전시회장과 창작 스튜디오와 오래된 정원과 숍을 돌아 나와 바로 앞 백화점에 들어섰다. 백화점의 2개의 층은 바로 송산문창원구에서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생산과 소비의 동시성이 목도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송산문창원구 참으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새겨 두었다.
 
▲포크레인 앞 보장암, 예술인들이 접수하다
 
 이제는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음 코스로 향했다. 그 유명한 대만의 펑리수를 사는 시간이었다. 줄이 늘어서 있는 가게에는 이 진기한 모습을 촬영하는 외신 방송사도 나와 있었다. 저마다 한 아름씩 펑리수를 사는 모습이 나로서도 신기하게 보였다. 군산의 이성당이나 대전의 성심당 보다 더 심할 정도의 구매력을 가진 이들의 진풍경은 대만의 음식문화의 상징과 같아 보는 내내 즐거웠다.

 쇼핑을 마친 일행과 우리는 숙소가 있는 보장암으로 돌아왔다. 쭝차오 선생이 우리는 기다리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군사 시설이 있던 곳, 이곳에 국민군이 거주지를 자처하며 들어와 마을을 형성한 곳이 바로 보장암이다. 대부분의 대만 마을이 그러하듯이 마을 중심에는 사당이 있고, 산자락을 따라 물고기의 비늘처럼 집이 들어서 있었다. 부유하진 않지만 옹기종기 살던 이 마을을 2000년대 초반 미관을 바꾼다는 명목으로 포클레인의 삽질이 들어왔다. 어찌 보면 입도인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 역사성을 지닌 곳이자 일반 시민들이 살고 있는 곳인데 이곳의 주민들을 내몰려는 정책에 많은 주민들이 분노하며 철거반과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뜻에 동조하는 예술인들이 보장암으로 들어왔다. 길고 지루한 싸움 끝에 마을을 보존한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빈집을 중심으로 예술인 레지던스를 실행하며 주민과 예술인과 만나고 실천하는 협력 구조를 가꾸어 낸 곳이었다. 곳곳에 영상에술인들이 있고, 연극인들이 있으며, 시각예술인들 또한 둥지를 틀고 있었다. 마을의 아이들과 함께 실행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이 전시되고 있었고, 주민과 함께하는 마을 연극 프로그램에는 부산의 자갈치라는 극단 단원 2명이 레지던스를 하면서 동고동락을 하는 모습까지 만나게 되었다.

 2006년 아시아문화전당과 5·18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아시아민중극제가 기억에 떠올랐다. 광주의 극단 신명을 중심으로 부산의 자갈치, 충청의 우금치, 홍콩, 상하이, 일본, 대만 등에서 온 민중극단들이 펼쳤던 난장. 그 네트워크가 지금도 가동되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물론 그 중심에는 광주가 있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정부를 중심으로 도시재생에 대한 사업들이 각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보장암 국제 예술촌이 보여주는 사례는 남의 일이 아닌 것으로 읽혀지는 시간이었다. 쭝차오 선생의 안내를 받으며 돌아본 보장암에서의 일정은 함께 간 유망주 친구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이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우리의 숙소가 위치한 곳이면서 정작 내부를 이제야 보게 된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또 스린 야시장으로 향했다.
전고필 <여행전문가·대인예술시장 감독,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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