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셜 스튜디오

 여행의 마지막 앞날 우린 영훈의 차를 타고 유니버설스튜디오에 도착했다. 그가 몇 달 간 준비한 계획의 하이라이트 코스였다. 다만 그는 몸이 아파서 그날만은 동행 하지 못했다. 그전에도 몇 번 친인척들과 가봤던 곳이라 그도 크게 아쉬움을 갖진 않았다. 이전 동물원에서 그랬듯 우린 아픈 두 분을 모시고 다니는 게 심적으로 무척 부담스러웠고 그분들 역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을 것이었다. 드디어 오늘만은 서로 그런 부담에서 해방되었고 그 동안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우리 부자만의 짧은 미국 여행이 성사되었다.

 이곳 유니버셜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영화 시작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거대한 지구본 앞에서 남들처럼 우선 인증샷부터 날리고 기념품점이 즐비한 입구를 지나 메인게이트에서 체크인하고 들어갔다. 해리포터의 호크 와트(돼지 사마귀?) 성에서 탈 것을 타려니 가이드가 예매서류를 보여줘도 뭐라고 자꾸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면서 들여 보내주지 않았다. 뭐가 잘못되나 싶어서 많이 당황만 했지 전혀 그녀의 말을 못 알아듣고 멍하니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비겁하게 광훈을 앞세웠다. “뭔 말 하는 거야?” 아무래도 이런 쪽은 영어를 한참 공부하고 있는 광훈이 촉이 더 나을 듯했다. 난 늘 무슨 일이든 나보다 조금 더 전문가가 있으면 그를 앞세우는 걸 좋아한다. 여기서 전문가는 광훈이었고 난 추종자였다. 결코 일부러 뒤로 빠진 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다. 다행히 광훈은 귀를 쫑긋 세워 듣더니 그 혼란한 말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나보고 다시 입구로 나가자고 했다. 무작정 따라갔더니 오다가 얼핏 본 티켓 부스에서 예매서류를 익스프레스 목걸이와 교환했다. 광훈은 오다가다 이상하게 생긴 것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았고(나 역시 그랬지만) 그 사람 말과 정확히 꿰어 맞춘 것이다. 와우! 이번 여행에서 광훈이의 재발견 중 끝판왕이었다. 처음에는 영훈의 바지자락을 붙들고 다니려 했는데 차츰 광훈이 옷자락을 잡고 다니고 있었다.
 
▲ 증강현실 속 놀이기구를 맘껏 누려
 
 우린 일단 가까운 곳부터 찾아가 모험(적어도 내겐)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미니언즈’관, 입체안경을 끼고 탈것을 타니 롤러코스트를 타고 ‘미니언즈’들이 안내하는 세계로 함께 들어가는 스릴 넘치는 모험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AR, 즉 말로만 듣던 증강현실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짜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 스릴 넘치고 재밌었다. 현실이었으면 타는 게 훨씬 힘들었을 텐데 만화 캐릭터들을 따라가는 가상현실이라 일단 무엇보다 안전해서 최고였다. 여기서 자신감이 붙어 심슨과 함께 떠나는 모험, 워킹데드의 별로 재미없는 좀비의 집을 차례로 돌고 쥐라기 공원에 들어가 물위에서 보트를 타고 주변 공룡들을 구경하다가 폭포에 떨어져 온통 물벼락을 맞기도 했다. 특히 재미있던 곳은 ‘트랜스포머’관에 들어가 범블비같은 로봇 주인공들과 함께 지프차를 타고 시가전에 뛰어든 것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여기저기 돌고나니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는데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해리포터의 마법의 빗자루를 타고 정신없이 공중을 날았더니 드디어 멀미가 나버렸다. 미이라관과 워터월드관 가는 것은 아쉽게도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그토록 꺼리던 놀이기구를 이렇게 많이 탄 내 자신이 스스로 대견했다. 광훈의 안내대로 따라다니니 전혀 어려움이 없었고 우린 세계적인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100%이상 즐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휴식 겸 해서 여러 나라 사람들과 어울려 유니버설 스튜디오 무대장치 속을 한 바퀴 도는 트랩투어에 나섰다. 특급권은 어디서나 무조건 우선 입장이어서, 왜 영훈이 굳이 이 비싼 걸 일부러 끊어줬는지 실제 체험하고는 우린 매번 고마워했다. 서부영화에 잘 나오는 모래먼지 날리는 황량한 마을, 실제로 추락한 비행기 잔해, 베이츠 모텔에서 식칼 든 살인자가 달려들고, 킹콩 무대에서는 넘어진 지하철이 날아오고, 홍수가 눈앞까지 밀려오기도 하고, 죠스의 상어가 나타나 선창가가 불바다가 되기도 했다. 함께 탄 이국적인 외국인들을 힐긋 힐긋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미국 여행 동안 광훈은 남녀 백인 사람들에게 무척 반한 모양이다. 나 역시 백자처럼 새하얀 그들의 외모에 절로 눈이 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미국 현지에 오니 서양인들이 더욱 멋지게 보이고 우리 동양인들은 자꾸 위축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사실 난 유럽이나 호주에서도 살짝 느꼈던 거지만 광훈이도 조금 자존심은 상하지만 나와 비슷하게 느끼고 있구나 생각했다.
 
▲캐릭터들과 함께 영화 속에 빠져
 
 난 처음에 ‘설마 하루 종일 여기를 돌란 말이야? 나머지 시간을 어쩌지?’하고 지레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최고의 영화들로 꾸며진 이곳은 정말 미국 SF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겐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좋아하는 영화의 캐릭터들과 함께 영화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기회를 선물해준 영훈에게 너무 너무 감사했다. 중간 중간에 드라큘라, 호그와트의 학생들, 배트맨의 조커, 프랑켄슈타인, 마다가스카르의 사자와 여우원숭이, 심슨의 로지, 슈렉의 피오나 공주 등등 수많은 영화 속 캐릭터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꺼이 함께 사진모델이 되어주었다. 먹을거리도 풍부해 점심은 어느덧 익숙해진 미국식 거대햄버거로 먹었고 해리포터관 앞에서 파는 버터맥주는 정말 달달하고 맛있었다. 기념품점에서 테라에게 미니언즈 신발, 광훈이는 미국청년들의 드림카인 닷지차. 난 미니언즈 뱃지를 샀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전혀 피곤한 줄 몰랐고 정말 알차고 소중하게 하루를 보냈다. 석양 무렵에 몸을 추스른 영훈과 명녀가 영화 ET가 그려진 주차장 앞으로 제 시간에 데리러 와 주었고 잠깐 쇼핑센터에 들러 중저가의 옷들을 한국가족들 선물용으로 몇 벌 사게 해주었다. 영훈은 우리에게 분단된 한반도를 직접 디자인한 캐릭터 티를 만들어주었다. 그날 저녁은 명녀가 일부러 가정식 불고기 상추쌈을 만들어 주어 입을 쩍 벌리면서 마지막 만찬을 풍족히 즐겼다. 테라도 신발을 “오마이갓! 큐~티!”하고 좋아하며 광훈이와 나에게 번갈아가며 빅허그를 해주었다. 마지막 날이라 대학생인 테라에게 용돈을 좀 주려했지만 계속 “탱큐!”만 하며 피해서 결국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아침에 떠나면서 용돈을 영훈의 컴퓨터 안에 감추어 두고 비행기를 탄 후에 문자로 알려주었다. 여행 도중에 일어난 영훈 친구 모친상에 대한 부주와 테라의 용돈을 따로 넣었다.
 
▲‘굿바이 아메리카! 오마이 갓! 탱큐 유.’
 
 한국으로 먼 길을 다시 떠나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영훈은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체 우리를 다시 톰 브래들리 공항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동안 나보단 우리 광훈에게 훨씬 정이 많이 쌓인 것 같아 참 다행이었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해 어느 여행이나 조금 길어지면 같이 간 사람들마저 어색하고 어려웠는데 이번엔 광훈이 나의 그 약한 고리를 잘 매워주었다. 간단히 공항에서 아침을 먹고 서로 별 말도 없이 공항 안을 배회하다 정작 비행기 탑승장에 들어갈 때는 정말 서로 눈물이 났다. 영훈은 끝까지 우리를 지켜봐주었다. ‘언제 우린 다시 만날까?’ 사실 멀고 먼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전혀 기약은 없지만 우리에겐 서로 죽을 때까지 공유할 소중한 경험과 추억이 아로 새겨졌다. 나이 들수록 이런 추억은 돈이나 명예보다 훨씬 더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영훈, 명녀, 테라 그리고 여행 중 만났던 수많은 친절한 미국인들과 외국 사람들, 모두를 정겨웠고 다들 한결같이 ‘그레잇 피플!’ 이었다. 물론 따뜻하고 풍족한 도시 LA 역시도. 왜 여기를 나성, 천사의 도시라고 하는 줄 어렴풋이 짐작했다. 이 사막의 척박한 곳을 일군 부지런하고 강인하지만 심성 고운 사람들이 개척하며 살아왔고 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테라버전으로 ‘굿바이 아메리카! 오마이 갓! 탱큐 유.’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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