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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타이빼이 배움 여행<3>혁신 공간들
3일간 느릿하되 깊게 보다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9-03-22 06:05:01
▲ 화산의 거리공연.
 타이빼이 시내의 토요일이다. 이른 아침 아직 여명이 걷히지 않는 타이빼이 시내를 본다. 509.2m에 달하는 101 타워가 숙소 앞에 바로 서 있다. 일하러 나가는 길목이니 사람들의 움직임을 찾아본다. 기대감에는 수많은 오토바이의 행렬이 있었다. 하지만 몇 대의 모터 싸이클만 보았다.

강소기업을 바탕으로 바지런히 움직였던 그래서 오토바이의 행렬로 대표되었던 역동적인 대만의 모습은 이제 바뀌었다. 누군가는 그 힘이 베트남으로 이전했다고 했다. 우리도 70년대에 어느 제철 공장으로 향하는 자전거 행렬을 역동감의 표상으로 전파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듯이 대만도 변화하고 있다.

노동을 최우선 덕목으로 여기며 경제개발에만 힘쓰던 것들이 이제는 노동과 삶의 질 사이에 고뇌를 한다. 대만의 젊은이와 혁신가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예술 생산기지서 유통·소비까지

 이런 간극 사이를 헤집으며 마음의 움직임에 충실하자고 하는 것이 문화다. 담양의 공직자와 나는 그런 세계를 함께 찾고자 대만에 온 것이다. 숙박비는 시내 중심가라 야속하게도 비싼 곳인지라 지난 밤 카운터와 다툼이 있었다. 일견 이 부분을 현지의 가이드에게 부탁한 것이 문제이기도 했다.

취소의 위약금이 너무 커서 4박중 2박만 이곳으로 하고 2박은 다른 곳으로 하기로 서로 양보를 하면서 종결지었다. 덕분에 조식이 제공된다는 정보를 취득하지 못해 우리는 아침을 커피와 빵으로 때우고 1937년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담배공장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송산문창원구로 향했다.

송산문창원구의 정원.

 토요일은 사람들이 붐비는 지라 일찌감치 돌아보려 했다. 그러다 보니 너무 일러 안내소가 문을 열기도 전에 문창원구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일종의 컨베이어 시스템처럼 ‘ㅁ’자로 구성된 곳이라 복도를 따라 다양하게 완비된 레지던스 공간과 창조 공간, 갤러리 등을 방문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규정된 공간에 담겨진 것이 사람들의 창조적인 힘이라면 허름한 창고 공간 곳곳에는 팝업 스토어가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인형이나 캐릭터 소품 등을 가지고 기꺼이 사진도 찍고 즐기면서 구매를 촉발할 수 있도록 짜인 가변형 공간은 담배공장의 무거움을 경쾌한 분위기로 바꿈 하면서 예술의 공간을 유행과 패션의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거기에 각종 음악 공연과 전시는 송산문창원구의 지향성이 드러나는 힘이 되었다. 예술의 생산기지에서 유통과 소비가 이뤄지는 점이 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었다.

송산의 창작공간.

 시간이 되어 자원봉사자의 안내를 받게 되며 이러한 원리에 대해 질문을 하니 그 힘은 어떻게든 지속가능하도록 이끌어야 하는 데에 있다고 한다. 예술지상주의의 논제가 아니라 예술가와 향유자가 함께 접점을 형성하는 것이 이곳의 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만든 말이었다.

광주의 아시아문화전당을 보면 프레임에 갇혀서 대중과의 거리감이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그나마 숨통을 트인 곳이 어린이 문화원과 예술극장의 몇몇 공연임을 볼 때 더 큰 개방성을 지니지 않으면 광주 안에서 조차 고립될 것임을 걱정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유수의 영재들이 근무하는 전당에서는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설마 아직도 여기는 실험공간이야 혹은 여긴 전문가만의 공간이야, 여긴 국립기관이야 라는 자기 우월성에 빠져 있진 않겠지 질문해 보는 시간이었다.
 
▲최대 양조장이 예술 거점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1914 화산문화창의산업원구로 걸음을 옮겼다. 그 시기에 세워진 대만 최대의 양조장이라고 했다. 낡았지만 드높은 굴뚝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일제의 우민화 혹은 식민화의 징표 같다는 생각이 일었다. 1987년 비워지고 방치된 공간을 예술가들이 점거하면서 촉발된 대만의 예술정책은 사실 화산 그 이전과 이후로 바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산의 양조장 아카이빙 공간.

 화산에서 일련의 연극인들이 밀고 나간 공연장화와 미술인들의 공공미술이 엄숙주의와 국가주의에 빠져있는 예술계를 후끈 달아 올렸다. 그리고 대만 정부와 타이빼이 시와 협상을 하면서 이곳을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창작거점으로 보장하게 된다. 새로운 거점과 예술지향의 정책을 쟁취한 예술가들의 작업은 자유로웠고 신선했고, 모두를 향해 발신했다.

 그럼에도 한계는 있었다. 바로 팔리지 않는 예술작품에 관한 문제였다. 드넓은 공간에 창작자들의 고뇌가 깊어졌다. 시정부는 이곳의 원형을 살리면서 리모델링을 하고, 다시 전열을 정비했다. 물론 예술가들과의 협의를 통해서 수행했다. 그리고 몇몇 공간은 상업적 공간으로 임대하고 몇몇 공간은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결코 상업적이지 않은 실용성 있는 디자인 제품과 현지에서 직접 창제작한 예술상품들이 진열장을 메웠다.

송산의 상업공간.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곳이 데이트 장소가 되고, 웨딩포토를 찍는 명소가 되고, 팬시한 제품, 실용성에 디자인 성까지 가미된 제품의 판매처로서 브랜딩이 된 것이다. 그렇게 입지를 다지면서 시 정부는 이곳을 대만의 예술단체에 위탁 경영을 하도록 했다. 정부가 할 역할은 이제 지속가능하도록 재원을 공급하는 것 외에는 간섭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2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예술특구같은 화산 문화창의산업원구는 그렇게 구동되고 있었다. 그 내부를 거닐며 이곳이 과거 술 공장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오래되고 낡은 병을 만났다. 대만인들의 땀과 열정과 노동이 느껴지는 공간은 좁고 짧았지만 강렬했다. 아카이빙의 공간을 고민하는 담양의 선생님들에게는 시시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에 반해 내부의 동력은 그야말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목도한 모두는 무언가의 허탈감이나 목마름 같은 것을 동시에 느꼈다.

바오피랴오 거리에서 발표회를 하는 모습.

 주스를 한잔 마시고 모두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바오피랴오 역사지구였다. 삼나무 껍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곳, 해상교류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었는데, 이곳에 대만 고유의 건축과 서양의 바로크식 건축이 교집합을 이뤄 하나의 세트장 같은 공간을 연출했다. 흡사 우리로 치면 인천의 개항도시의 창고건물 같은 곳이었다.

비워진 공간에서는 신진 예술가들의 스튜디오가 자리하고 각종 발표회가 이어지고,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예술 행위와 영상 촬영이 끝없이 이어지는 세트이되 내용과 형식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급속 가변형 공간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었다.
 
▲중앙정부-시정부 일치된 호흡
 
 낡은 것, 오래된 것은 모조리 쓸어버리고 재건축에 돌입하는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 감탄스러웠다. 대만인들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용산사의 지근거리에서 대만의 역사와 오늘을 만나는 점이 지대로서 바오피랴오는 존재했다.

 어느새 날씨는 어둑시근해지고 우리는 타이빼이 아이 라고 하는 대만의 대표 공연을 보러 갔다. 사자춤과 경극으로 대표되는 대만의 공연 문화, 특히나 상설 공연을 본다는 것은 우리 일행에게는 매우 의미가 있는 코스였다.

 광주, 전주, 서울, 경주, 진도 등등 각 지역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상설공연을 올리고 있지만 서울만한 흥행은 쉽지가 않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만큼 있어야 하고, 내부 수요자도 있었야 한데, 그렇지 못하다.

난타로 대표되는 상설 공연문화가 정착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시종일관 흥미를 끄는 공연은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면서도 분리되지 않았다. 두 마리의 사자와 타악 주자들의 연기는 넌버벌 퍼포먼스가 지닌 교감 능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높은 난간을 곡예 하듯 뛰어넘는 사자, 그 사자 안에 들어있는 두 명의 예능인을 보며 손에 땀을 쥐고 격려하는 관객들. 그런 고마운 관객들에게 객석에 뛰어 들어 과자를 선물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공연은 시종 일관 우리의 눈을 압도했다.

타이빼이 아이의 공연 모습.

 더욱 다른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공연이 카메라를 들지 못하게 하는데 공연 도중에도 포즈까지 취해주는 여유로움과 배려에는 이곳이 국가 대표 공연이라는 것을 풍미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했다. 연기자들의 자부심과 전문성 거기에 공손함까지 어느 것 하나 흠 잡을 수 공연 사이 인터미션 시간에는 경극 배우들이 휴게실에서 자신의 장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벌써 팬이 되어버린 이방인들과 교감하는 모습은 신기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오늘 하루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아버린 나와 일행들은 그런 모습에 피곤함을 싹 잊어버리고 흐뭇한 모습으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간단한 호프타임에서 각각의 소회를 말씀하신다. 작은 섬나라지만 오늘 보았던 대만의 문화력은 예술인들의 노력과 국민들의 호응, 중앙정부와 시 정부의 일치된 호흡에서 발원하는 것임을 교감하는 시간이 되었다. 향후 담양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가 무거운 가운데 이틀째 밤은 쉬이 잠이 들었다.
전고필<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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