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서 보면 솥뚜겅 모양, 그래서 부산

▲ 168계단 정상에서 바라본 마을과 부산항.
 한 도시에 대한 이미지를 규정하는 것은 어쩌면 교과서나 유행을 쫓는 시대의 흐름에 맡겨 따라하는 것에 길들여져 버렸다. 남원하면 춘향이, 목포하면 항구, 영광하면 굴비 이런 것들. 부산도 마찬가지다. 부산은 번듯한 항구도시다. 그래서 부산을 에워싼 바다와 해변이 부산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어 버렸다. 한데 이런 선입견이 정말 부산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훼방꾼이 되어 있다. 부산이란 지명에는 바다가 담겨 있지 않고 산이 담겨있다 게다가 ‘솥단지’까지 있으니, 땔감과 솥단지의 궁합은 절로 어우러진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의 지명 유래라는 책에서 부산에 온천이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지명 안에 담겨 있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그러니 부산에 동래온천이 있구나 라고 고개까지 끄덕 거렸던 기억이 선연하다. 그런 부산에 여러 준비를 마쳐 들어간다. 2013년 자발적으로 부산의 산복도로를 대상으로 한 투어를 기획하고 기꺼이 마을 여행사가 되어 부산의 구석구석을 누비는 부산여행특공대의 손민수 반장이 운영하는 주간과 야간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우리 지역에 도입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 볼 요량이었다.

함께하는 이들은 한국관광공사의 광주전남 지사와 테마여행 10선의 남도 맛기행 권역 연구원들과 해당 지역인 광주, 나주, 담양의 공무원분들이다. 목포시도 해당되는데 안타깝게 일정에 참여가 어려웠다. 맛의 도시, 슬로우시티 지정 등으로 그야말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는 목포시 공무원들의 일상이다 보니 더 권유하기 힘들기도 했다.
 
▲부산여행특공대를 만나다
 
 미니버스를 타고 출발한 우리 일행은 맨 처음 이 도시의 이모저모와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취지와 현황을 들어 보기로 하고 한 호텔의 미팅룸에 모였다. 손 반장이라 불리는 손민수 대표는 준비한 PPT를 통해 부산의 옛적과 오늘을 거침없이 이야기 한다. 그의 별칭은 ‘이바구스트’다. ‘이바구’는 부산말로 이야기를 뜻하니, 거기에 ‘~스트’는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 같은 사람을 칭하는 것이리라. 이야기꾼이니 천상 생각하는 것 모두를 말로 풀어내는 특출한 제주가 있을 법 했다.

 과연 그러했다. 부산의 지명은 과거 부자의 부자를 쓰다 지금의 솥뚜껑의 부 자를 가져온 내력을 말한다. 바다에서 본 증산이라는 산이 솥뚜껑 모양이어서 가져왔다고 한다.

 산복이란 부산이 땅이 좁고 바다가 더 많으니 사람이 바다에는 살수 없어 땅이 조금이라도 있는 산으로 산으로 넓혀가다가 결국 그들의 삶이 연결되는 통로 길이 있어야 해 산 허리를 꿰어 만든 길이 산복도로로 명명 된 것이라 했다. 전장 64KM에 달하는 산복도로는 어찌 보면 부산 사람들의 배꼽과 같은 역할이자 혈관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터를 잡고 살아왔던 이들이 바다와 인접하여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의 시절을 몸부림치던 이방인들은 부산에 뉘일 곳을 찾아 산으로 산으로 올라갔을 터이다. 하니 부산은 산마을의 도시이고, 계단의 도시이며, 피난민의 도시이고, 물이 없는 대신 목욕탕이 발달한 도시이다.
배움여행의 시작.

 어느 문학인이 부산은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말한 그 낭만적인 이야기에 무릎을 치던 낭만이 손 반장의 이야기 속에서는 얼마나 속내를 모르고 사치스럽게 부산을 보는 시각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따스한 트리의 온기와 메시지로 세상이 더 아름다운 것 아닌가 싶기도 한다.

 50여 분간의 부산 개황에 대한 설명은 풍경으로서의 부산을 자제하고, 부산의 역사와 현재적 삶에 접근하는 방식의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해발 60-70M 정도에 위치한 산복도로의 아래위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특히 부산항을 향해 열려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항구에 배가 들어오면 바지런히 지게를 지고 부두에 도착해서 일을 얻어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하는 구절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을 육지의 오만한 시선이 아니라 뱃사람과 섬사람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진정하게 보인다는 섬연구자 김준 박사의 말씀이 떠올리기도 했다.
 
▲168개 계단·해발 60-70M 산복도로
 
 오늘 내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산을 타고 오르는 집들 사이로 아스라이 보이는 배가 그들에게는 곡식창고 였다는 사실. 아픈 몸을 끌고 계단을 빨리 내려야 일을 받아 저녁이면 돼지고기 한 근이라도 끊어 올수 있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보수동 맞은편의 돼지갈비가 유명한 거리가 바로 그 이유로 발달했다는 사실에서 또 확인할 수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는 지게꾼들의 행렬이나 돼지고기와 덤으로 준 뼈다귀를 신문에 말고 새끼로 묶어 지게에 혹은 손에 달랑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지금 내 눈앞에 환히 보이는 것처럼 착시가 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그 현장으로 가기로 했다.
168계단의 전경.

 오늘 우리가 들리는 길은 168계단이 첫 번째이다. 무척이나 가파른 언덕을 집들이 물고기 비닐처럼 촘촘히 박혀있다. 박혀 있는 집들의 정 중앙에 계단 168개가 자리하고 있다. 저 아래로 부산항과 영도다리와 부산대교가 보인다. 그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우리 보다는 두 눈이 짓물러지도록 바다를 보며 들어오는 배를 기다렸을 아버지가 감당한 생애의 무게가 문득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더 낳은 삶을 위해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를 때 저분들은 오늘 한 숟가락의 밥을 위해 처절하게 계단을 뛰어 내리고 올랐으리라 실감이 났다. 그리고 계단이 시작되는 초입에는 우물이 있었다. 168개의 계단에 의지하는 모든 삶을 길러냈을 우물은 예사스러운 우물이 아니리라 절로 숙연해 졌다.

지금 이곳에 사시는 분들은 고령화로 인해 더 이상 계단을 이용하기 어려워하시니 그 옆에 궤도를 만들고 주민에게는 복지시설로 관광객에게는 체험 시설로 활용하고 있는 지혜도 돋보였다. 소위 유니버셜 디자인이나 베리어 프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행되는 현장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문화부에서는 이곳에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을 수여했다. 당연한 결실로 보였다. 주민들은 이곳을 이바구 마을로 명명하고, 게스트하우스나 시대를 담은 상점, 커뮤니티 공간 등을 열고 더 멋진 공동체를 향해 발을 딛고 있음이 느껴졌다. 일본과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도 이곳을 배경삼아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한국의 늙어가는 골목길을 더 깊게 음미하고 있었다.

도개한 영도다리.
 
▲영도다리 도개 이제는 하루 한 번
 
 우리는 다음 코스로 영도 다리를 향했다. 과거 많게는 하루 여서 일곱 번 다리를 들어 올려 큰 배가 접안하게 했다는 다리였는데 이제는 하루 한번 오후 두시에만 올린다고 한다. 예정보단 좀 더 빨리 영도섬에 들어간다. 태종대를 담고 있는 섬인데, 사람들은 영도에 태종대가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 별로 많지 않다. 그들은 영도는 가지 못했고 태종대에 다녀왔다고 여긴다. 주객이 전도되는 아이러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영도 다리가 올라가는 두시의 사이렌을 기다렸다.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른 현인 선생이 영도 출신이라고 그이의 동상이 있고 노래도 울려 퍼진다. 마치 춘천의 소양강변에서 들었던 소양강처녀 같은 감성이 일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이라는 그 아픈 상처의 시절이 상기되기도 한다. 영도 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라는 구절에 담긴 사연은 피난 시절 영도다리가 만남의 장소였다고 한다. 모두들 부산으로 향하면서 생이별을 할 때 우리 살아있으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 라는 다짐이 그 다리 난간 곳곳에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구인광고 붙이듯 나풀거렸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과거 KBS가 여의도에서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할 때 재현된 것이었으니 결코 낯선 풍경은 아니었구나 싶다.

부산의 아이들에게 영도다리는 또 다른 추억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말 잘 안 듣는 아이에게 부산의 어머니는 영도다리에서 주워 왔다고 한단다. 그러니 몇몇 아이들은 자신이 정말 영도다리에서 주워온 아이로 알고 친구와 말을 하다보면 그 친구도 그말 들었다고 해서 둘이가 우리 형제 아이가 라면서 더 가까워진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준다.
영도에서 바라본 부산의 전경.

 과거 부산시청이었던 곳에 롯데마트가 들어서 있다. 계림동의 광주시청이 홈플러스로 변하듯. 롯데는 원래 그곳에 100층짜리 호텔을 만들기로 했지만 아직 시간을 벌고 있다고 한다. 대신에 영도다리의 6차선화와 개보수는 천몇백억원을 들여 해 주었다고 한다. 도개의 다리가 올라갈 때 용두산 타워와 함께 사진을 찍으니 롯데마트의 상호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영도다리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버린 것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한편으로 이런 얄궂은 회사가 호남에는 한 개라도 있을까 싶어지기도 하면서 씁쓸해 진다.

 15분간의 영도다리 도개 행사를 마치고 우리는 한국전쟁 1023일 동안 임시수도가 되었던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향한다. 손 반장의 숙련되고 재치 있는 안내 덕분에 무럭무럭 공부를 하다가 하마터면 이 원고 마감도 못할 뻔 했다. 아직 부산에 새롭게 다녀야 할 곳, 들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전고필<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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