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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장구목의 새벽
새벽을 깨우고 흐르는 강물처럼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9-10-11 06:05:02
▲ 장구목의 새벽.
 우리 국민의 여가 패턴 중 등산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은 시대에서 이제 낚시로 옮겨갔다는 뉴스를 신년에 들었다. ‘국민들의 역동성과 실효적 이익을 구하고자 하는 시대로 갈아탔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근 나도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낚시를 시작했다. 작년 곡성 섬진강변에서 쏘가리 매운탕이 7만 원대에 달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더랬다. ‘저 고기가 그렇게 맛있고 귀한 것인가’라는 생각에 도달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낚시는 맑은 강가의 돌무더기나 모래와의 경계에 사는 쏘가리 낚시에 도전하기로 했다. 우리 강역에 토착어종으로 자리 잡아 물고기 중에서는 최상위 포식층에 속하는 것으로 몸에 얼룩진 표범무늬를 지니고 있는 고기다. 돌 밑이나 돌 틈에서 서식하는데 먹이활동은 주로 저녁과 새벽에 이뤄진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그들의 생활 리듬에 조응해야 하는 법이니 낚시를 가는 시간도 고기가 먹이를 위하는 시간보다 좀 더 일찍 시작해야 한다. 게다가 물 맑은 1급수에만 산다고 하니, 가는 곳이 산천이 수려한 곳일 수밖에 없다.
 
▲ 쏘가리가 살만한 맑은 물 찾아
 
 내가 남도에서 아는 물 맑은 곳을 떠올린다. 탐진강의 보림사 아래쪽, 그리고 탐진댐 아래쪽, 보성강의 장흥 장동, 주암, 압록, 순창의 적성강, 그리고 그 상류의 장구목. 결국 장구목으로 낙점이 된다.

 계절이 여름 장마철인지 아님 가을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 날. 자꾸 태풍은 한반도를 넘나들며 기온이 들쭉날쭉하는 어느 날 맘을 잡았다. 휴일 새벽4시 차를 발진했다. 장소는 순창군 동계면 장구목이다. 집을 나서자마자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안개는 원래 11월이면 지상의 더위와 하늘의 냉기가 충돌하며 시작되는 것인데 지금 안개는 잦은 비 때문이라 생각된다. 안개 속을 저속으로 가며 내가 가는 곳의 풍경을 생각한다. 안개가 이불처럼 덮어주는 마을, 그 안에서 물고기들 튀어 오르고, 백로와 왜가리와 해오라기들 한없이 물속을 투시하는 모습, 물 안을 이리 저리 헤집고 다니는 신출귀몰한 수달의 몸짓까지.

 그렇게 차는 광주를 빠져나와 담양을 지나 순창에 이른다. 간혹 산꼭대기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산야는 안개로 가득하다. 적성으로 가는 길, 여암 신경준 묘소 가는 길의 이정표가 보인다. 시야가 안 보이는 안개 속에서 저분만 유독 눈에 보이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 길을 가면서 들러봐야하는데 마음먹으면서도 스치길 수십여 년하고 있으니 그럴 것이다. 언젠가는 꼭 들러 묘지의 사진과 순창 남산의 귀래정과 산경표의 지도를 올리고 답사기를 써야 하는 강박이 내겐 있다.

 우리나라의 국토 체계를 다 잡은 분이 바로 신경준선생인데. 해서 백두대간과 정간과 정맥으로 산하의 체계를 잡으신 분인데, 지금 순창뿐만 아니라 이 나라는 여암을 너무 홀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순창남산의 세거지에서 정원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키우며 세상과 초연했던 것을 기록화 했던 것이 순원화훼잡설인데. 인재 강희안의 양화소록이나 유박의 화암수록,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등 원예를 담은 몇 안 되는 책들이 각광을 받는데도 아직 번역조차 안 되어 있는 현실이 놀랍도록 이상하게 여겨진다. 하긴 나도 그분의 묘소조차 안 갔는데, 뭐 별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 주민들이 되찾은 장구목 요강방위
 
 차는 그곳을 스치며 적성강 즈음에 도달한다. 매운탕을 좋아하는 이들은 화탄매운탕집으로 이곳을 더 잘 알고 있다. 실가리에 메기를 넣은 걸쭉한 매운탕은 연신 땀을 흘리게 하면서도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큰 비가 오면 침수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주인장이 경이스러운 집이다.

 이곳에서 차를 확 꺾어 들어간다. 지금이야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 데로 가면 되지만 십수 년 전만 해도 해찰하다가는 지나치거나 깊은 산골에 들어가 다시 되돌아오는 것을 여러 차례 반복했던 곳이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다. 고개몬뎅이 올라 또 확 좌회전하면 내리막길이고, 산만 있는 곳 같은데서 유장한 강물을 만나며 산세 수려한 장구목의 아침을 맞이하는데, 웬일인지 찻길이 변해 있다. 아. 강의 건너편 산자락을 깎아서 도로를 내어 버렸다. 언젠가는 그럴 줄 알았다. 구경 오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이곳은 오지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오지에 해당되는 곳이다. 지척에 섬진강댐을 두고 있지만 큰 물지면 물이 빠지는 통로가 좁아서 물이 차올라 한참은 위쪽인 장구목 마을까지 홍수로 범람하는 경우도 있었던 곳이다.

 그것을 명분 삼아 수자원공사에서는 2000년대 초반 댐을 만들고자 한 적도 있다. 불과 20㎞ 상류에 댐이 있는데, 또 댐을 만든다는 것이 논란이 되었고 댐 공사는 시행되지 않았다. 그런 댐이 들어서고자 했던 곳에 교각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예전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던 길은 묵혀지진 않았지만 거의 사용의 흔적이 없어 보였다.

 어둑시근할 때 왔는데 이제 사방이 환해진다. 물소리가 세차진 것이 바로 옆에 강물이다. 섬진강의 상류에 해당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언젠가 마을에 중장비로 이런 저런 선심을 쓰며 돕던 사람이 그 중장비를 이용해서 마을의 상징과 같은 바위를 통째로 뽑아갔던 곳이다. 물경 10억 원에 가격을 매겨 경기도 광주의 야산에 두어 새 주인을 찾으려는데 마을 주민들이 수소문하여 그 바위를 찾아내고 마침내 제자리로 옮겼던 사연이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김훈의 글로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 유명한 장구목의 요강바위 사건이다.
 
▲낚싯대, 긴 줄, 그리고 인간
 
 하류로 내려가면 물은 평안하게 가지만 이곳은 바위 사면과 산비탈을 훑고 지나는 길목이다. 크게 보가 있거나 둔덕이 있지도 않으면서 물줄기를 저장하고 그것을 넘으면 급하게 흘러가는 곳이다.
거미줄에 맺힌 이슬.

 안개가 머무는 곳에 카메라를 들이민다. 물은 고요하고 바위는 묵언중이다. 그 정경 위에 카메라 소리가 침묵을 깬다. 몇 컷의 사진을 담고 낚싯대를 들고 물로 간다. 하나 둘 셋 초리의 탄력으로 가짜 미끼인 미노우를 넣는다. 물속에 떨어지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오고 릴을 감아 고기를 유인한다. 해가 떠오르면 입질이 그치기 때문에 남은 시간은 불과 한 시간. 백여 차례를 던지고 감고, 가끔 매듭이 꼬이거나 미노우가 바위에서 빠져 나오지 않아 몸을 움직여 겨우 빼내고 다시 투척. 미세한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는 일에 전력투구한다.

 언젠가 내가 낚시를 하는 것을 본 후배가 “성이 그 정도 노력을 공부에 투자했음 요렇게 안 살 것인데”라는 일갈도 떠오르며 슬며시 웃어본다. 여긴 누가 잡아 갔나 보다 하면서 자리를 옮긴다. 이렇게 자리를 옮길 때도 명분이 필요하다. 낚시는 그야말로 집중 그 자체의 스포츠이기도 한 탓이다.

 왼편으로 요강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산전수전에 법정에 까지 서본 요강바위가 안개와 이슬을 머금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며 다시 상류로 간다. 이미 해는 떠올라 사방이 환하다. 그래도 아직 쏘가리에 대한 욕심은 여전하다. 20년 전 내게 처음으로 루어 낚시를 하자고 제안했던 서울의 호경선생이 생각난다. 그때 우리가 강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던 곳이 천담 마을 위로 가서 진뫼마을과 중간 지점이었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까지 간다. 둘이 낚시를 하다 나는 더 잡을 욕심에 이곳저곳 뒤지는데 그 선생은 자꾸만 던지고 감아야 하는 낚싯대를 그냥 물에 둔 채 넋을 잃고 풍광에 몸을 맡겨두던 기억이 인다. 잠시간 그가 왜 그럴까 하다가 내버려 두었다. 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바위와 벼랑과 소나무와 미루나무와 세찬 여울 사이의 낚싯대 하나와 긴 줄과 전봇대 같은 인간 하나.
낚시 중인 필자.
 
▲고기를 잡는가, 풍경을 낚는가?
 
 지금은 서울로 가버려서 연락이라고 해봐야 일 년에 한두 번 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그와 꺾지며 배스를 잡으러 다녔던 2000년대 초반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나는 잡으러 낚시를 했고, 그이는 풍경에 도취하러 루어를 택했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서울서 살지 궁금해 하며 마침내 그곳에 도달했다. 오솔길이었던 곳이 포장이 되고 차가 교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쉼터가 있는 곳에 나무 사이마다 거미줄이 널려 있다. 웬 거미줄 하면서 자세히 보니 거미의 줄과 또 고추집을 지으려는 곤충들의 집이 교차해 있는 곳이었다. 괴기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이색적인 풍경이다. 그 중에 한 거미줄을 유심히 본다. “거미로 그물 쳐서 물고기 잡으러”라는 낭만 고양이 노래가 생각난다. 거기에 이슬이 초롱하게 달려 있다. 밤새 거미줄은 이슬을 보석으로 다듬는 작업을 했나 보다 라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너무나 영롱하여 감히 손 하나 댈 수 없는 자연의 풍정에 넋을 놓는다.

 이제 물가로 가니 이번에는 수달이 저 건너편에서 바지런히 움직이다. 새끼 수달인데 작은 물고기 하나 먹고 다시 물속으로 텀벙하고 가버린다. 흐르는 강물 속으로 나도 몸을 담가 본다. 그때 그이가 삼십여 분을 꼼짝 안던 물속에 나도 서서 풍경의 일부로 남아 본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니 아침 여덟 시 반, 원고 빚 갚으러 세상으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었다.

 안개도 깨고 나도 깨어난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은 내가 잠잘 때 가꿔져 있었고, 잠에서 깨어날 때 사라져 있었다.
전고필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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