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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낙동강 천삼백리 발원지 황지에서
장엄했던 수원, 인공물에 갇히다
전고필
기사 게재일 : 2019-11-01 06:05:02
▲ 황지의 상지.
 천상 물과 가까운 곳에 내가 사는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물의 언저리에 존재한다. 낚시가 그렇고, 캠핑이 그렇고, 술도 그러하고, 현장에서 흘리는 땀방울도 그러하며, 나를 키워준 소쇄원도 모두 물이 주인공이 된다.

 강원도 태백에서 전화가 온 것은 한 달 전의 일이다. 광산의 도시 태백의 첫 번째 광산인 장성탄광 근처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하고 있는 벗이 불렀다. ‘마을에 시장이 있는데, 탄광일이 줄어들면서 시장의 생기도 멈춰져 있으니 그분들 사기 좀 올려주고 대인시장의 경험도 들려주실 겸 한번 왕래 하시오’가 내용이었다.
 
▲소설 속 이몽룡 실존으로 부활
 
 10월 17일은 대한민국테마여행 10선 관련하여 18일까지 대전에서 회의가 있고, 18일 오후부터는 대구에서 지역문화활동가들의 포럼이 1박 2일로 진행되었다. 모두 참석하고 19일 토요일 대구에서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태백까지는 멀고도 험한 여정이 될 것이지만 강의 시간이 저녁이니 가는 길에 칠곡의 담양담도 만나고 봉화에서 여차하면 루어낚시도 해 볼 참이었다. 하지만 칠곡의 담양담을 보는 것도 그냥 패스해 버리고 말았다. 담양부사를 지낸 석담 이윤우의 공덕을 기리며 담양 고을의 사람들이 이곳 칠곡까지 와서 농사를 지어주고 허물어진 담장을 쌓아주어 500여 년의 세월동안 그대로 남아있는 담이 바로 담양담이다. 언제가는 다시 들러서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면에서 공감하고 싶었다.

 차는 북으로 향하다 다시 동쪽으로 향해서 간다. 안동을 지나 용궁역이 있는 그래서 토끼간빵이라는 유명한 빵을 만들어낸 예천을 슬며시 지나 부석사가 있는 영주를 관통한다. 이맘때면 부석사앞 은행나무가 물들어오고, 사과는 붉은 빛을 더욱 빛낼 터인데, 이마저도 그냥 간다.

 이윽고 봉화에 이른다. 내 친구 홍창식 박사 고향이 봉화라는 것, 때문에 할머니에게 손부가 여자 친구를 보여주기 위해 서울에서 소백산을 넘어 상견례를 위해 눈길을 갔던 1997년의 기억이 새삼 떠오르는 곳이다. 그 사이에 내 눈길을 확 당기는 표지판이 나온다. 이몽룡 생가! 소설속 주인공이 살아서 여기 있는 것이다.

 담양의 관방제림을 쌓은 이가 부사 성이성이었다. 그는 봉화사람이었고, 아버지가 남원부사를 역임한 성안의였다. 소년기 그가 남원에서 성장하며 기생 여진의 여식인 춘향과의 러브스토리가 있었다고 전해오는 실존감을 연세대학교의 설성경 교수가 1999년에 논문으로 발표하며, 춘향전이 실재한 이야기로 밝힌 것이다.

 암행어사를 3번을 수행한 이이며, 청백리로 이름 높은 성이성이 바로 성춘향과의 러브라인을 형성했던 성장의 역사가 있었고, 그가 태어나고 잠든 곳을 성이성의 생가가 아니라 이몽룡의 생가라고 표시해 둔 것이었다. 그렇게 확 땅기는 그 팻말도 포기하고 또 길을 간다. 과거 갔으면 지도를 펴보길 반복하며 내 가는 길이 맞는지 자꾸 확인해야 하는데 내비게이션이 등장하며 지도도 보지 않는다. 그저 목적지만 안중에 있을 뿐, 길의 주변부는 이제 과감히 생략된다. 불우한 여행길이 틀림없는데, 그것이 마치 옳은 일인냥 몸에 굳어 버린 시대의 비련. 서둘러 갈 필요도 없는데 나는 그렇게 봉화 석포의 어느 물가에 이르렀다.
봉화 석포의 어느 물가에서 만난 V트레인.
 
▲산천에 묻혀 낚싯대를 던지다
 
 물살이 거세지고 다시 유속이 느려지는 곳에 차를 세워두고 루어낚시대를 챙겨 나간다. 사위는 단풍으로 물들고 저편으로 철교가 보인다. 승부역, 석포역, 철암역 등을 오가는 협곡의 열차가 다니는 곳에 나도 편입되어 있다.

 지난 여름 거센 폭우가 다녀갔는지 물가의 자갈이 하나같이 한 방향으로 뉘어져 있다. 우둘투둘한 돌이 한 개도 없다. 저 고요한 물길이 얼마나 돌을 다듬었는지 한결같이 동그란 모양새다. 돌 몇 개를 만지작거린다. 자연의 손길이 다듬어낸 걸작에 취해 본다. 저 돌은 화순의 고인돌공원 선사주거지에 갈판으로 두어도 좋겠네 싶고, 저것은 우리 집 돌확의 확돌로 쓰고 싶고, 저 돌은 문진처럼 사용해도 되겠다 싶은 탐욕스런 욕심이 드는 돌들이 지천이었다.

 점심도 거르고 산천에 묻혀 낚싯대를 던져본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지만 이 시간이 가장 편안하다. 누군가는 낚시를 세상의 시름을 잊는다고 하지만 생계형 어부를 자처한 나는 가장 몰입의 순간이다. 어떻게든 물고기를 물 밖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집요함으로 투척을 한다.

 두 시간여를 던지고 감길 반복하며 물가의 상류와 하류를 오갔다. 그 사이에 기차가 온다. V트레인이라고 했던가. 저 협곡을 차고 오르는 기차가 마치 V 자형의 계곡을 다니니 명명했을 터이다. 잠시 그 기차에 내가 올랐으면 싶어지고 윤도현과 부가킹즈의 노래가 떠오른다. `여행길’이라는 노래였던가. 넋을 잃고 기차의 뒤꽁무니를 보다 다시 미노우를 단 가짜 미끼를 던진다. 휙 하며 무언가의 입질이 들어온다. 끄리다. 예쁜 자태를 보고 다시 놓아주고 있으니 전화벨이 울린다. ‘어디쯤이냐’는 태백시 도시재생센터의 전화다. ‘네 석포에서 낚시중인데요’, ‘2시가 다 되었으니 어여 오세요’. ‘네? 두시가 강의예요?’, ‘네 두시예요’, ‘어여 가겠습니다’ 나의 달콤한 시간은 놀람으로 변하고 말았다. 저녁 7시라고 생각하고 여유를 부리며 이곳저곳 해찰하고 심지어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까지 보고 강의하고 대구로 다시 내려올 생각이 깨져 버린 것이다.
낙동강 발원지 표지석.
 
▲태백 탄광 근처 전통시장 재생 꿈꾸다
 
 1시 40분, 목표지점까지는 10여킬로니 두시 안에는 도착하겠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차에 올랐다. 장성은 무언가의 웅성거림으로 분주했다. 오래된 연립 아파트의 장례식을 치르고 이제 주민의 총화된 힘을 모아 재생의 길로 가고자 하는 의지들이 번뜩이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진짜 상여를 동여메고 장례 절차를 치렀다고 스텝들이 전해준다.

 중앙시장의 점포는 50여개 정도 되고 상권은 저 비워진 아파트와 운명을 함께하는 듯 보였다. 시장의 맞은 편 야외에 난장을 펼치고 그곳에서 강의와 질의응답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한분 두 분 모이시기 시작하더니 30여명 남짓한 분들이 의자에 앉는다. 내 강의에 앞서 시흥의 도일시장 김정식 상인회 총무이사님이 먼저 포문을 열어 주셨다. 똑같은 상인으로 장사를 하다가 전통시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자신의 시장이 을씨년스러운 것을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먼저 솔선하여 청소하고, 이웃과 대화하고,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각종의 지원사업을 유치하여 일치된 힘으로 더 좋은 공간, 더 좋은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사장님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결자해지인데, 나는 대인시장에서 용병과 같은 역할이 아니었는가 싶었다. 내 시간에 나는 담담하게 명과 암을 애기했다. 시장의 주축은 상인인데, 문화가 시장을 바꿀 수 있다고 선뜻 자부했던 지난 일들이 부끄러웠다.
황지의 하지.

 태백의 장성, 애정이 가득한 분들의 질의와 자기 경험과 한편의 체념과 자부심을 들으며 어느 덧 약속한 시간 다섯 시에 이르렀다. 배가 고팠지만 22년 전에 찾았던 태백의 황지를 향해 가야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땡전 한 푼 없는 내게 고등학교 친구가 전화해서 이번 여름에는 영월과 정선 쪽을 다녀오자는 제안, ‘너는 운전만 하렴, 비용은 내가 델 테니까’. 그 달콤한 제안에 나섰던 길에 나는 부득불 여기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를 가자고 우겨 해 어스름제에 도달했다.

 노을이 지는 가운데 시내의 가장 한복판에서 콸콸 분수처럼 솟아나는 물을 보며 나는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저 힘찬 동맥이 이 산하를 적셔준다는 사실이, 저 물줄기가 거대한 낙동강을 밀고 가는 힘이 되는 것에 벅차고 감격스러워 하는 것은 내게 당연한 일이었다. 노을빛의 황지에서 한참을 앉아서 솟구치는 물을 바라보았던 기억은 이후 내게 어느 곳이 당신이 다녀온 곳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냐고 물으면 대뜸 황지라고 말하곤 했다. 언어의 익숙함과 달리 나는 그곳을 24년 만에 두 번째 방문한 것이다.
석포의 강자락.
 
▲24년 전 장엄했던 그 물은…
 
 그렇게 추억을 복기하며 당도한 황지의 풍경은 달라져 있었다. 그때의 경관은 꾸민 듯 방치된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많은 인공물이 들어서 있었다. 가뜩이나 건물 사이에 있어 과연 이게 낙동강의 발원지가 맞는지 의심을 품었는데, 발원지의 신성함 보다는 시내의 장식적 요소처럼 돼 버린 안타까움이 있었다.

 물들어가는 단풍 사이로 연인들과 관광객들이 섞여 있다. 거대한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느라 분주한 분들이 있고, 망부석 신화, 장자못전설의 일종인 황부자의 이야기를 조각으로 꾸민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는 분들도 즐비하다. 옛적 스님이 시주를 청할 때 여기 살던 황부자는 바가지에 소똥을 가득 주었다고 한다. 이를 본 며느리가 몰래 바가지를 씻고 쌀을 주었는데 스님이 여긴 곧 물에 잠질 것이니 뒤도 돌아보지 말고 산으로 가라고 했더란다.

 하지만 눈에 밟히는 시아버지 때문에 뒤돌아 볼 수밖에. 시아버지는 이무기로 변하고, 집은 연못이 되고, 결국 그녀는 굳어져서 미륵바위가 되어 삼척 도계리에 있다고 한다. 장흥 제암산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와 닮아 있다. 그곳이 지금의 황지가 되었다는 이야기. 20대 때의 벅찬 감정은 다시 솟구치기에는 너무 내가 닳아져 있나 보다. 크게 감흥이 일지 않는다. 다만 하나하나 물줄기를 눈여겨보고, 이곳저곳 들어선 조형물이 왜 눈에 거슬리는지 심드렁하게 볼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광주에서 대전을 그리고 대구를 거쳐 봉화의 계곡과 태백의 장성과 태백 시내의 꿈에 그리던 황지를 친견한 것이다. 다시 대구로 향하는 길, 분식집과 레스토랑 사이를 오가다 허름한 호떡집에서 씨앗 호떡 세 개와 환절기 비영에 좋다는 작두콩 2봉지를 들고 차에 올랐다. 다음 여행길을 정말 차분히 해찰하며 다녀야 되겠다는 것과 일정표를 잘 관리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안고.
전고필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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