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신년제례, 본향당으로
만개한 매화향 맡으며 전입신고

▲ 양식장 주변을 떠나지 않는 갈매기들.
 일찌감치 날짜를 잡았다. 지난해의 수고와 올 한해의 다짐을 세우는 마당으로 워크숍을 제주에서 정월 보름에 하기로 한 약속이다. 하지만 급습해 오는 코로나19의 광풍은 모든 것을 주저하게 하였다.

아직 젊은 연구원들은 이 순간에 움직이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해서 몇 가지의 방안을 가지고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첫 번째는 강행, 두 번째는 다른 대안지를 찾아가는 것, 세 번째는 연구원들은 두고 이사진들만 가는 것 중에서 고르라했다.

연구원들의 의견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네 번째 결정이 있다. 모든 것을 내려두는 것, 하지만 대표를 맡고 있는 친구는 네 번째는 선택지에 두지 않았다. 그럼 답은 세 번째, 늙어가는 우리들끼리 가는 것으로 그렇게 결정되었다.

 세분은 대구에서 출발하고 나는 광주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갓 환갑이 된 분과 오십대 중반이 조합한 여행이다. 목적은 두 가지로 정해져 있다. 하나는 사단법인의 활성화와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 또 하나는 제주의 본향당 굿을 관람하는 것이었다. 2월5일부터 7일까지 2박3일의 여정이다.

 첫 숙박지는 애월의 바닷가에 정해져 있고, 둘째 날은 아직 미정인 상황. 차는 렌트를 해서 모두 제주 허 씨가 되기로 했다. 셋째 날 점심 식당이 예약되어 있었다. 무척 기대를 한 해녀의 부엌이라는 곳에서 공연과 더불어 정식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20여 명이 참여하기로 했다가 15명 정도가 못 오게 되니 사전에 취소를 말씀 드렸다. 최근의 질병 때문에 못 간다고. 하지만 규정은 천재지변이 아니니 위약금 50%를 물렸다. 남은 우리라도 가고자 했지만 이미 마음이 상해 버린 터라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할 것 같아 그곳은 포기했다.
 
▲코로나도 못막은 중년들 제주행
 
 그렇게 날짜는 다가와 5일이 되었다. 오전 책방에 들려 몇 가지 일을 추스르고 12시10분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나갔다. 한산한 공항, 하지만 비장미 같은 것이 흐른다. 공항내 대부분이 마스크를 하고 있는 상황이 그렇게 연출한 풍경이다.

좌석 배정을 받으며 곧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다 삼킨 말이 있다. “또 비행기 날개 있는 쪽으로 자리 주시려고요.” 이 말도 지상승무원에게는 비수가 될 것 같아 꿀꺽 삼켰다.

 언제부턴가 내 자리는 비행기의 제일 뒤편이거나 아니면 중간의 날개 부분이었다. 간혹 하늘풍경이 시원하게 비추는 앞자리에 앉을 적이면 날씨가 도움을 주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어서 하늘에서 지상을 찍을 수 없는 우울한 시간이었다.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속으로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비행기가 선회하면 한라산 정상의 모습이라도 잡는 게 되겠지 하며 위로했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내 상상은 현실화 되었다. 남도의 섬들이 눈에 들어와 셔터를 누르려 하면 비행기의 날개가 언제나 망점을 가렸다.

드디어 눈 쌓인 한라산의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휴대폰의 렌즈를 힘차게 당겨 찰칵, 또 찰칵, 반쯤 성공했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깜짝할 사이 내려 먼저와 있는 일행과 만났다.

 시장기가 동한 시간 점심 메뉴는 두 패로 갈렸다. 보말죽과 고등어회. 나는 통과의례처럼 제주항 근처의 식당 이름을 호명했다. 다수가 한 명에게 져주었다. 전화를 걸어 고등어회가 있냐고 하니 자연산 한 마리가 남았다고 한다.

넷이서 싱싱한 자연산 회를 먹고 갈치조림으로 요기를 때우고 바닷가를 따라 숙소를 찾아 나섰다. 회와 식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내륙 깊숙한 대구에서는 쉽게 맛보기 힘든 회다보니 그러했나 보다 하며 해안길을 따라 동쪽으로 간다.

기내에서 바라본 한라산 정상.
 
▲송당본향당과 와흘본향당
 
 이번 여행의 동선은 제주의 동쪽이다. 송당본향당과 와흘본향당이 각각 6일과 7일 신년과세를 하는지라 그 언저리를 다니는 것이 시간의 손실도 없애고 효율적일 것이라는 친구의 셈법이다. 모두들 동의하며 먼저 와흘리 본향당을 향한다. 정작 제례가 없는 때만 찾았던 곳이라 나는 내일의 일이 설레기만 한데 이렇게 사전 답사까지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차안에서 잠잠하던 전화기가 울리고 통화를 하는데 불쑥 창밖으로 화사한 매화가 나타난다. 검은 나무의 골격에 상고대와 같이 하얀색으로 마감을 해버린 매화. 차를 불쑥 멈추어 달라고 했다. 만개한 매화의 향을 맡으며 전입신고를 했다. 겨울답지도 않은 겨울을 보내는 나무들, 그리고 이 나무를 키우는 주인들의 걱정은 갑작스럽게 다가올지 모르는 혹한이다.

벌써 물이 오른 나무들이 싹을 올리는데 한파가 몰려오면 나무는 견뎌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이다. 풍경의 이면에 나타나는 생태계의 고통들은 이제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란 걱정이 들기도 했다.

 차는 와흘본향당 앞에 멈춰 섰다. 내비가 시키는 대로 따라다니며 길과 마을과 지리적 개황을 놓치고 산다. 매화라도 만나지 못했다면 그곳이 육지의 길인지 제주의 길인지도 모르고 접근했을 것이다.

 본향당은 모레 있을 굿을 준비하는 현수막이 펄럭이고 내부로 가는 길은 금줄이 쳐져있다. 위치를 확인했으니 이제 중산간서 다시 해안으로 내려와 숙소를 향한다. 해는 아직 중천이지만 베이스캠프를 점검한 후 움직이자는 중론이다.

 가는 길에 또 해찰해야 하는 곳을 만났다. 너븐숭이 공원이다. 북촌마을의 4·3은 학교와 해안과 이 너븐숭이 일대에서 참담하게 나타났다. 어린 아이들마저도 목숨을 앗아간 집단학살이 있었고 그 아이들의 시신이 이곳 언덕배기에 안치되었다. 검은 현무암으로 경계를 두른 곳에는 이곳을 다녀간 순례자들이 남긴 조그만 인형이나 장난감 같은 것이 있다.

 가슴이 미어지는 감정을 추스르며 현기영 선생의 순이 삼촌 기념비 쪽에 다가간다. 누구도 입 밖에 꺼내지 못한 금기의 언어를 소설 속에 담아내며 갖은 옥고를 치러낸 선생님의 글이 비문에 새겨져있다. 바위가 다 닳아도 잊히지 않은 역사의 현장은 오늘이라고 결코 평안하지 않다.
한국식 등대 김녕 도대불.
 

▲한국식 등대 김녕 도대불
 
 다시 길을 나선다. 해안가에 갈매기들이 떼로 몰려든 곳이 나온다. 필시 양식장의 배수구가 있는 곳이다. 광어를 비롯해 각종 활어류를 키우는 곳은 인공의 사료들이 쓰인다. 그 찌꺼기들이 흘러나오는 곳에 갈매기들이 불로소득을 기다리며 줄지어있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과 같은 멋진 갈매기를 우리는 구걸꾼으로 만들고 있는 참담한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그 뒷맛은 여전히 꿀꿀한 즈음이었다.

 바다의 색감은 코발트와 우윳빛이 뒤엉켜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그리하여 육지부의 사람들에게 제주살이라는 꿈을 부여해 주었던 동쪽 해안, 우리의 숙소는 그곳에 있었다. 바닷가 어부의 집을 개수하여 펜션으로 만들었다. 여느 농가와 같아 편안하게 하룻밤을 지낼 수 있을 것을 우리는 동감했다.

중요한 것은 밤에 벗이 될 술과 안주를 어디서 구하느냐의 문제가 있지만 사실 지금까지의 여행에서 이것이 난감했던 것은 지리산과 같은 산정 등반에서나 있었지 마을이 있는 곳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적은 기억에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짐을 숙소에 두고 더 동쪽, 이를테면 횟감이거나 먹을거리가 있는 곳으로 더 움직여 보기로 했다.

 그렇게 수없이 찾아간 그곳이지만 또 낯선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도대불이다. 서귀포의 보목에서 만났던 한국식 등대를 이곳 김녕에서 조우한다.

현재의 높게 솟은 등대가 제국의 반도 침탈과 아시아를 넘보았던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했다면 우리의 등대인 도대불은 연안에서 조업하는 어부들이 해 가는지도 모르고 생업에 열중하다 좌표를 잃을까봐 탑처럼 쌓아올린 돌 위에 등잔불을 얹어 여기가 포구라는 것을 알려주는 지극히 가정적이고 소박한 공동체적 삶의 소산이다.

 제주 해안에는 이런 도대불이 십여개 남아있지만 이 삶의 유물에 눈길을 뜨겁게 주는 이들이 그닥 많지 않다. 여행자의 시선이 늘 낯설고 감각적이고 우월한 것이나 특별한 것들에 눈길이 가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 우리 것, 제 땅에서 키워낸 것들을 분별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 씀에 대해 공부해본 적이 없어 낯설기 때문이기도 하다.

 알면 재미지고 더 파고 싶어지는 것을 외려 외면하는데 익숙하고 그저 눈으로만 쏘옥 들어오는 것에 판단을 마쳐버리는 주마간산의 여행법에 나도 어지간히 익숙해진 것도 사실이다.

대체 이런 관습을 어디서부터 바꿔야하는지 만만치 않은 과제인데, 이런 것들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없다. 진정한 여행법이 어릴 적 교과서에 등재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길섶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매화.
 

▲마구잡이 개발중, 월정리 유감
 
 여튼 김녕도대불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이제 월정리다.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몸살을 앓게 했던 청춘의 파라다이스 같은 곳, 하지만 중년의 우리들에게는 마구잡이로 개발하여 서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건축물들의 창문전쟁 같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카페 보다는 달달한 빵이 땡기는 오후 골목사이로 들어가 빵집을 찾았다. 문은 열어져 있지만 주인은 없고, 눈길을 끄는 글이 보인다. 두조각을 내어주는데 자꾸 네조각 내어달라고하지 말라는 글이다.

 문득 그 글에서 쓸쓸한 보헤미안의 현주소를 보는 듯 하다. 내 빵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돌려 먹고 싶다. 하지만 나도 먹고 살아야 하니 판매한다. 그런데 구매자들은 물론 알아봐주는 이들도 있지만 그저 요기나 주전부리 정도로 취급하며 내 제빵의 내력과 이후 관리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나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야 잉. 그런 호소와 자부심이 엉켜있었다. 어디선가 우리의 모습을 보았는지 주인장이 들어왔다. 늙어가는 중년 넷이서 인사를 했지만 주인장은 눈도 마주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어집니다)
전고필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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