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7일 담양장 둘러보기

 이른 출근 7시. 담양읍내로 들어오는 담양교는 벌써부터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 장날인 것이다. 담양에 개설한 책방은 부수적인 선물을 안겨 주었다. 관방제림과 가깝게 있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을 하기에도 적격이다. 게다가 더 실한 선물이 바로 매 2일과 7일이면 서는 담양장이 인접해서 열리는데 그게 오늘이다.

 접수해야 할 서류를 준비하다 시장으로 간다. 딱히 살 것이 없어도 시장에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무엇인가 신기한 것들이 나타나줄 것 같은 기대감이 드는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창평장에 가시면 온종일 기다렸던 경험이 있다. 제발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쓴 적도 있지만 그 부탁은 언제나 거절 혹은 외면당했다.

 시장을 제대로 구경한 것은 거의 중학교 다닐 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머니는 뒷박으로 쌀을 퍼서 차대기에 담았다. 그러시곤 쌀을 사러 간다고 하셨다. 분명히 팔아서 다른 것으로 바꿀 것인데 ‘산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설의 언어에는 무언가가 담겨 있을 듯 생각한 것은 더 커서야 완성되었다. 이를테면 저 귀한 곡식을 감히 판다는 것은 허용되지 않은 시대였을 것이다. 밥이 곧 하늘이었던 시대, 그것은 코로나19의 현재 상황에서도 마트의 식료품이 제일 먼저 바닥을 보였던 것이 입증해 주었다. 그때와 지금 먹는 것과 양은 달라도 밥은 곧 하늘과 동의어가 맞다.

 쌀전에서 쌀을 사가는 주인장은 되질을 잘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 양반이 되질로 먹고 산다고 했다. 즉, 어머니가 쌀 세 되를 팔면 되당 1000원씩 3000원에 사고, 그이는 이것을 3000원에 되판다. 그런데 똑 같은 3000원에 사고팔면 이문은 어디에 있나? 바로 되질에 있는 것이다. 그분은 세 되의 쌀을 세 되 반으로 만드는 신출귀몰한 능력이 있다고 했다. 쌀을 세운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즉 살 때는 쌀의 빈틈이 없이 되질을 하는데, 팔 때는 쌀과 쌀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양을 적게 줌으로서 남은 것에서 수익을 얻는 것이란 설명을 해 주셨다. 참 별별 사람이 다 있는 곳이 시장이라 여기며 신나게 시장 구경을 했던 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죽물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
 
 담양장하면 나이 드신 분들은 모두들 죽물시장을 생각한다. 하지만 죽물시장은 2000년대 이후 소멸되었다. 플라스틱의 등장과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지에서 들어오는 값싼 죽물에 담양의 죽세공은 거의 소멸지경에 이르렀다. 가장 왕성한 경제활동의 하나였던 담양 죽세공이 쇠퇴하면서 휘청일 수도 있지만 담양은 잘 견뎌내었다. 아무래도 대도시와 인접한 위성도시다 보니 민첩하게 근교농업으로 전환한 덕분이기도 하다. 거기에 더해 죽녹원과 같이 경관자원으로 대나무를 전환해 내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모셔오는 효자가 된 것이다. 이런 관광객을 응대하는 음식점이나 서비스업이 죽세공예 자리에 들어섰고 한편으로는 죽물시장의 멸치국수를 팔던 분들이 지금의 국수거리를 형성하여 오기도 했다. 그 중심 공간이 바로 관방제림이라 할 수 있다.

 관이 나서서 방제림을 쌓았다고 해서 딱딱하게 불리는 관방제림. 그 숲 아래에 하천부지에서 장은 섰다. 그러다 죽물시장이 소멸되며 장이 위로 올라왔다. 점포를 만들고 상설화 했지만 사람들은 언덕에 난전을 치고 장사를 한다. 만성교에서 담양교까지 대략 500여 미터의 이쪽과 저쪽에 장이 선다. 없는 것이 없다. 관상용 조류도 있고, 상추 종묘나 치커리 같은 채소류, 더덕이나 도라지 같은 산채, 칠게나 밤게, 굴비, 갑오징도 나와 있다. 연신 칼을 가는 분도 있고, 그릇 장수 아저씨는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에게 농을 던진다. “통 안보잉게 산에 들어가부렀는가 했는디, 묏동속에 들어갔다 뽈깡 인나갔고 인자 왔소”라는 반가운 인사를 한다. “그려 나도 와보고 자팠는디 그게 안되등만. 잘 있었제”라고 응수를 하는 선한 얼굴의 이웃들이 코로나에도 휘청이지 않고 거기 있다.
 
▲물건만 팔면 마트, 인심이 오가야
 
 시장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 단지 물건의 거래만 있다면 그것은 서구식의 마트일 뿐이다. 장에는 만남의 광장이 가장 큰 역할이다. 서로의 안부를 물어주고, 새 소식을 물어다 주고, 가장 핫한 이슈가 무엇인지 공감하는 자리가 형성되고, 흥이 나면 놀이판이 벌어지고, 아예 놀이판을 빙자하여 약장사가 진을 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정기공연이 출발한 지점을 장시로 보는 이가 있을 정도다.

 500미터를 걸으며 우리의 생활양식을 본다. 한 허리 굽은 할머니가 꽃 파는 난전을 기웃거린다. 꽃장사 총각은 선뜻 나서서 반갑게 “엄니 꽃 심으실라고라우?” “나도 이삔 것은 알어”라고 하면서 붉은 수국꽃을 집어 들며 활짝 웃으신다. 좀 더 걸으니 이번에는 카세트테이프와 USB가 담긴 레코드 행상이 있다. 5집이나 나왔다는 송가인의 음악이 거기 있다. 이거 잘 나가냐고 여쭈니 나주장 보다는 담양이 못하다고 하신다. 나주에서는 불티나게 팔리는데 여긴 좀 덜하다고. 그분의 표정에서 문화적 취향이나 호주머니의 상태가 지역별로 분별이 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생강이고 감자고 고구마고 모두 순이 나와 있는 종자 가게 옆을 지난다. 움이 트는 것에서 봄이 정말 깊숙이 와있음을 또 느껴본다. 다라이에 밤색과 뻘색의 게들이 꿈틀거린다. 며칠 전 어머니가 밤게가 자시고 싶다는 말씀을 하셔서 이거구나 싶어 여쭈니 사랑게라고 한다. 두 가지가 다르냐고 여쭈니 같은 건데 자라는 환경이 달라서 색이 다른데 밤색은 순천, 뻘색은 무안이라고 한다. 가만히 보니 생태학습도 되는가 싶어진다.

 그 옆으로 꽈배기 집이 있다. 함께 간 친구는 3000원을 주고 꽈배기를 산다. 여기가 5일에 한번 서는 유명한 꽈배기 집이라고 하면서 만족도 높은 웃음을 보여준다. 어물전에는 간고등어와 병어와 황시리 같은 것들이 가득하다. 과일 전에는 토마토와 키위와 포도 같은 것들이 가득한데, 이 계절에 이런 과일을 보는 것만으로 청량한 기분이 느껴진다. 김이 모락거리는 두부난전이 다가오고 콩나물을 시루째 가져온 콩나물집도 지나친다.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지는 시장 구경이다.

 예전보다는 사람살이가 넉넉해져서 인지 당최 흥정하는 목청 높은 상인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그 소리 또한 시장을 구성하는 풍경이었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게 그립기만 하다. 담양교 근처에 이르렀다. 다리는 온통 화초장수들의 차지였다. 이 질서 없을 것 같은 시장에도 각각의 구역이 있음을 나도 경험했던 시절이 있었다.
 
▲문화 꽃피우고, 지역언어 성장하는 곳
 
 1997년에 문흥동에서 옥수수 장사를 한 적이 있다. 그냥 비집고 들어갔다가 경칠 뻔했더랬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분이 무진장 화를 내니 그 옆의 갈치 파는 아저씨가 내 자리를 정해 주어 정리가 되었었다. 그러면서 시장의 질서를 가르쳐주었던 기억이 새삼 돋아난다.

 꽃나무 구경도 재미지다. 봄이 담양교 다리 위에서 피어난 듯 싶다. 버들처럼 늘어진 수양 복숭아가 눈길을 자극하고, 본디 수수꽃다리였던 미스김라일락이 향기를 뿜어낸다. 유실수들을 사가는 아저씨에게 심는 법을 가르쳐주는 대목도 귀에 속속 들어온다. “여기 흙에 묻었던 칸 있지라우. 거기 보다 십전만 우게 심으면 돼요 잉” “알았당께” 저런 묘목을 여기 저기 장으로 옮기면서 신기하게도 싱싱한 상태를 유지하는 비법이 궁금했지만 여쭈지 않았다. 저분은 생업이고 나는 사지도 않으면서 괜한 말만 붙이는 철부지가 될 듯해서였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며 복기해 본다. 장이라는 것이 이렇듯 생동감 있게 서로에게 안부를 여쭙고, 세상 물정도 나누고, 어떤 것에 대한 특별한 지식도 공유하는 자리임에 틀림없다. 하니 이런 공간에서 문화가 꽃피우고, 지역의 언어가 성장하고, 사람들의 공동체성도 특정되는 것 아니겠는가 싶어진다. 그러니 장터를 중심으로 지역의 민란이 일어나고, 만세운동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어느 특정 장사꾼이 정말 특별한 기행이나 선행을 하면 모두의 박수를 받고 팬심이 생겨나고 응원자들이 나타나는 것도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곽재구 시인의 다산초당 가는 길이라는 시에서 등장하는 벗들에게 다산초당을 찾아가려거든 강진의 도암장날을 택해서 가라는 구절이 문득 다가온다. 그렇다. 담양도 마찬가지다. 죽녹원, 관방제림, 메타세퀘이아 가로수 길을 방문하는 이들은 가급적 담양장날 오시라. 저기 울 엄니 같은 아지매들이 산야에서 갓 캐낸 푸성귀며 나물들을 공급하고 있으며, 마트에서는 결코 만나지 못할 대면적 상황의 슬기로운 생활양식이 한가득 보일 것이며, 아름다운 남도언어의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을 것이니 말이다. 거기에 덤으로 올 한해의 농사 행보와 대처에 나간 자식들이 얼마나 효자 효녀인지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단. 마스크는 꼭 쓰고 말이다.
전고필<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