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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의 다시, 고전!]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일 하고 놀아” 노는 목적이 노는 것 아닌 시대
자본주의가 전락시킨 ‘놀기’의 가치 회복해야
김태균
기사 게재일 : 2017-03-20 06:00:00
▲ 버트런드 러셀.
 사람은 일을 하거나, 일하길 원합니다. 일 하고 있는 사람은 늘 일을 그만두고 싶어 안달입니다. 반면 일하길 원하는 사람은 일을 하고 싶어 안달입니다. 하면 그만두고 싶고, 안 하면 하고 싶은 ‘일’이라는 녀석만큼 사람의 마음에 변덕을 불어넣는 녀석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이란 무엇일까요.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행질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람은 왜 일을 할까요. 사람은 왜 일하기 싫어할까요. 사람은 왜 일하고 싶어 할까요. 대게 ‘먹고살기 위해’ 혹은 ‘먹여살리기 위해’가 일하는 이유일 것이고, 먹고살기 위해 혹은 먹여살리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고 참아내야 하니까’가 일하기 싫은 이유일 것이고, 다시 ‘먹고살기 위해’ 혹은 ‘먹여살리기 위해’가 일하고 싶은 이유일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 일이란 먹고살기 위한 혹은 먹여살리기 위한 행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무슨 저급한 소리냐”며 “일은 자아를 실현하게 해주는 수단이야”라고 반박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반박이 일에 대한 깊은 사유 속에서 나온 것인지 의문입니다. 일을 하다보면 자신을 내세워야할 때보다 자신을 죽여야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으니까요. 끊임없이 자신을 죽이고 상사 혹은 고객의 니즈에 따라야 하니 일은 오히려 자아를 죽이거나, 변형시키거나, 내 안에 또 다른 자아를 잉태시키는 수단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과 ‘일을 시키는 사람’

 

 “그렇다면 일이란 무엇인가? 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지표면 혹은 지표면 가까이 놓인 물질을 다른 물질과 자리를 바꿔 놓는 일이다. 또 하나는 타인들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시키는 일이다. 첫 번째 종류의 일은 즐겁지 못하고 보수도 박하다. 두 번째의 일은 즐겁고 보수도 높다. 또한 이 일은 무한히 확대될 수 있어서 지시를 내리는 사람들뿐 아니라 어떤 지시를 내려야 할지에 대해 조언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 흔히, 조직화된 두 개의 집단에서 정반대되는 두 가지 조언이 동시에 나오게 마련인데 이게 소위 정치역학이다. 이런 류의 일을 하는 데 요구되는 기능은 어떤 조언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말과 글로써 설득하는 기술, 즉 선전에 관한 지식이다.” -본문 中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하 러셀)은 일이란 “물질의 자리를 바꿔 놓거나 물질의 자리를 바꾸라고 시키는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물질이란 물체의 본바탕으로 물체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체는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며,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물체입니다. 즉 러셀은 보고 만질 수 있는 물체의 재료의 자리를 바꿔 놓거나, 이를 지시하는 행위를 일이라 정의한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일이란 물체에 변화를 주거나 변화를 주라고 시키는 행위로 봐도 무방할 것 입니다.

 러셀의 정의에서 좀 더 나가자면 사람이란 ‘일을 하는 사람’과 ‘일을 시키는 사람’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러셀보다 60년 앞서 태어난 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는 사람을 무산자와 유산자로 구분했습니다. 무산자란 생산수단 즉 공장을 갖지 못한 노동자들이고, 유산자란 공장과 같은 생산수단 가진 자들입니다.

 사람을 일하는 사람과 일을 시키는 사람으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걸출한 두 철학자의 사유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이 소비자금 마련을 위한 일(생산)과 휴식으로써의 소비로 채워진지 오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생산)을 하는 동안 우리는 일하는 사람이 되고, 소비하는 동안 우리는 일을 시키는 사람이 되기에 어쩌면 이 시대에 있어 사람을 일하는 사람과 일을 시키는 사람으로 단순하게 분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생필품 생산 정도의 최소 노동만 해야

 

 “노동 시간을 4시간으로 줄여야 한다고 해서 나머지 시간이 반드시 불성실한 일에 쓰여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 얘기는 하루 4시간 노동으로 생활필수품과 기초 편의재를 확보하는 한편, 남는 시간은 스스로 알아서 적절한 곳에 사용하도록 되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보다 더 많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그 교육의 목표에 여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데 필요한 안목을 제공하는 항목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필수적이다. 나는 지금 소위 ‘지식인’으로 만드는 따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본문 中

 러셀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쓴 독일의 철학자 막스 베버와 같은 이들의 청교도적 관념에 직구를 던집니다. 청교도적 관념은 “육욕과 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신을 위해서 부유해지도록 노동해야 한다”를 주된 논리로 사람들에게 신을 위해 근면 성실할 것 즉, 강도 높은 노동에 대한 인내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통해 사람들이 생필품을 생산할 수 있을 만큼의 최소 노동(하루 4시간)만 해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18세기 전까지 사람들의 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4시간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러셀의 하루 4시간 노동설은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산업화가 빼앗아간 과거를 되찾는 일일 뿐입니다. 하루 4시간 노동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무척이나 즐거워집니다. 그런데 하루 4시간 노동은 러셀의 글이나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실현 불가능한 일일까요.

 저는 하루 4시간 노동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취업을 못 해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과 나눠하고, 최첨단 로봇기술을 사회 곳곳에 활용한다면 하루 4시간 노동이 영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경제적 정의를 이룩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전체 생산물의 많은 부분이 일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생산을 통제하는 중앙 기관이 없으므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이 대량 생산된다. 결국 우리는 많은 노동 인구들을 놀게 만든다. 그들의 노동은 다른 노동자들의 과도한 노동으로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 中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도한 노동에 짓눌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준다는 삼성 입사자들의 조기퇴직율은 30%를 넘습니다. 대다수의 퇴직자들이 ‘과도한 업무로 인해 나를 잃어가는 삶을 살기 싫다’는 이유로 삼성을 박차고 나옵니다. 배부른 소리라 욕할지 모르지만 삼성을 그만둔 친구의 말로는 삼성의 업무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에 분배할 일을 몇몇에 집중

 

 흔히들 연봉을 많이 주니 일을 많이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과도한 업무로 인해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을 그만둔 이들에게 쓴 소리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삼성을 비롯한 이 나라의 대기업들은 2명 분량의 일을 시키고, 1.5명분의 임금만 지급하고 있습니다. 숫자상으로는 타 기업들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기업 직원들 역시 일한 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며 착취에 시달리고 있음을 우리는 헤아릴 줄 알아야합니다.

 일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노동의 결핍으로 인해 생계를 위협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일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넉넉하지 못하다거나 구직 활동을 위한 노력이 부족해서 일을 못 하고 있는 거라고 함부로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일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을 못하고 있는 이유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에게 분배해야 할 노동을 몇 몇에게 집중시켜 절감한 인건비로 부의 축적을 일삼아 온 소수가 경제 정의를 망친 탓에 누구는 과잉 노동에 시달리고 누구는 노동 결핍에 신음하는 문제가 발생한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속편하게 노는 것에 대한 수용력이 있었다. 그러나 능률 숭배로 인해 그러한 부분은 사라져 버렸다. 현대의 인간은 모든 일이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일하는 법이 없다.” -본문 中

 이제 더 이상 노는 목적이 노는 것인 시대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에너지 충전의 목적으로 놉니다. 저의 초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20년 전만해도 어른들은 “학교 갔다 와서 놀아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는 ‘놀아도 되는데 할 일은 마치고 놀아라’는 사고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어른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놀아라”라고 말합니다. ‘할 일을 잘 하기 위해 놀아라’는 사고가 이 시대를 지배한 것입니다.

 물론 맡은 일을 잘 하기 위해선 놀아야합니다. 그러나 놀기의 목적을 놀기 자체에 두는 것과 놀기의 목적을 다른 일을 잘하기 위함에 두는 것은 다릅니다. 놀기는 인간의 본능이기에 노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 살고 있다는 증명입니다. 놀기의 목적을 다른 곳에 두면 놀기는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일을 못 하는 사람은 놀지 말아야한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이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머물기 위해서라도 효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자본주의가 전락시킨 놀기의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더불어 노는 것 자체가 썩 괜찮은 일임을 자각해야합니다.

 

 과도한 노동에 학습 기회 빼앗겨

 

 “여가의 현명한 이용은 문명과 교육에 의해 가능하다. 평생 동안 장시간 일해 온 사람이 갑자기 일을 하지 않게 된다면 따분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상당한 양의 여가 없이는 최상의 많은 것들로부터 차단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박탈을 겪어야 할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없다. 다만 우매한 금욕주의-그나마 자기는 지키지 않으면서 남에게나 강요하는-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필요 하지 않은 과도한 노동을 주장케 할 뿐이다.” -본문 中

 잘 놀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합니다. 술을 즐기려면 술을 자주 접하며 술에 대해 학습해야 합니다. 영화를 즐기려면 영화를 자주 접하며 영화에 대해 학습해야 합니다. 이렇듯 모든 즐기는 행위 즉 놀기는 학습을 바탕으로 실현됩니다. 우리는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잘 놀기 위한 학습의 기회를 빼앗겼고, 12년의 정규교육을 받으면서도 잘 놀기 위한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놀기의 범위는 몇 개의 행위(술마시기, 영화보기, 맛집방문, 스포츠 경기 관람 등)로 한정되었고, 우리의 놀기는 일을 잘하기 잠깐의 에너지 충전으로써의 놀기에 머물러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학습이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잘 놀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정의’를 외치고 음식과 정과 울분을 나누며 놀았던 지난 3개월의 평화로운 촛불집회.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놀기가 불의의 축인 박근혜를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과정을 보며 우리는 정말 위대하게 놀 수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법과 질서를 철저하게 준수하고 반대세력에게는 사랑으로 맞서며 잘못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김태균<자유기고가>
지난 10일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주문낭독을 통해 대통령 박근혜에 대해 파면을 선고하는 장면.<사진=JTBC 캡쳐>
탄핵 결정이 난 10일, 탄핵인용을 축하하는 광주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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