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른 형제 성장 ‘관전기’
“반반 섞였으면?” 욕심을 거두자

 무량이와 태수는 친정엄마가 황소 두 마리가 사립문을 열고 들어오는 꿈을 꾼 다음 3년 터울로 태어난 우리 아이들의 태명이다. 나는 근면 성실하고 건장함을 표상하는 황소에 만족하였지만 한편으론 평생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것이 못마땅해 무량태수처럼 유유자적하며 느릿느릿 여유롭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를 희망하며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에서 작가가 설파하듯이, 남녀사이에는 화성과 금성만큼이나 넓고 깊은 간격이 있어 둘 사이의 언어와 사고방식은 다르고 또 그로 인해 성격차이가 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남자 형제인 무량이와 태수가 화성남자 금성여자처럼 성격이 다른 것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태몽까지도 할머니가 한날 한시에 똑같이 꾸었는데도 말이다. 무량이는 노는 것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출산일이 훌쩍 지나도록 세상으로 나오지 않는 바람에 엄마인 나를 무척이나 고생시켰다. 그렇지만 무량이는 태어난 이후부터는 나를 전혀 힘들게 하지 않았다. 간혹 앵앵거리기라도 하면 우유만 물려주면 끝이었다. 무량이는 자기 배만 부르면 만사가 `오케이’! 천하가 태평성대였다.

 그런데 태수는 무량이하고 달랐다. 성격이 확실한 아이였는지 일분일초도 어김이 없이 예정된 날짜에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왔다. 나는 무량이와 다르게 정확한 날짜에 나와 준 태수를 대견해하며 날아갈 듯 마음이 가벼웠다. 이제부터는 우유만 잘 물려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태수는 달랐다. 먼저 엄마인 나와 첫 대면하는 신고식도 요란하고 대단했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르고 나니 한밤중이었다. 태수를 만나려고 신생아실로 연결된 복도를 걷는데, 이 한밤중에 유독 한아이가 병원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울고 있다. 타고난 목소리인지 계속 울어대서 목이 쉰 것인지 허스키한 울음소리는 짠한 마음을 배가 시켰다. 다들 `코~’ 하고 잠잘 시간인데 목이 쉬도록 울어대다니…. 지금 신생아실에 있는 태수가 저 아이 때문에 단잠에서 깰까봐 신경이 쓰여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신생아를 보살피는 간호사에게 내 이름을 말하고 태수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뿔사! 간호사가 부드러운 포대기에 다부지게 싸인 작은 베개만한 아이를 보듬고 나에게 다가오는데 허스키한 울음소리도 함께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맞다. 그랬던 것이다. 목이 쉰 채 울고 있는 아이는 다름 아닌 태수였던 것이다.

 

 한 부모 자식임에도 이렇게 다를 수가

 

 처음엔 신생아실의 간호사들이 태수를 소홀히 보살펴 그 지경이 되었을 것으로 지레짐작했다. 나는 간호사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아이를 낚아채 조심스럽게 안고 서둘러 내 방으로 데리고 왔다. 그런데 태수는 엄마인 내 팔에 안겨서도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더 큰소리로 “앙 앙 앙” 울어댔다. 순간, 엄마인 내가 자기를 낯선 곳에 홀로 떼어 놓았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낀 태수가 나를 원망하며 그리 서럽게 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랬다. 태수가 무량이와는 아주 다르게 무척 예민해 깨까닥스럽다는 것을 알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힘든 일은 낮밤이 심하게 바뀌어 버린 태수의 생체리듬이었다. 한밤중인 자정에는 말할 것도 없고 꼭두새벽에도 일어나 우유를 찾았다. 만약 내가 졸다가 우유를 조금이라도 늦게 대령하면 온 동네가 떠나가라고 울어댔다. 기저귀가 조금만 젖어도 난리가 났다. 오줌을 찔끔 재려 아직 뽀송뽀송한 감촉이 남아서 아까운 마음에 그 기저귀를 다시 채워주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세상이 떠나가라 또 울어댄다. 태수가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까지 나는 밤새워 비상대기를 하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이 되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곯아떨어지는 생활을 반복했다.

 다섯 살이 되자 태수는 감파졌다. 방안에서 탱탱볼을 가지고 놀 때면 하필 천정에 달린 전등이나 창문에 던지는 바람에 전등커버나 유리창에 찌지직 금을 내고 말았다. 주의를 주고 쫓아내면 작은 방으로 가서 장미뿌리로 한 껏 멋을 낸 혼수장롱 손잡이를 부러뜨렸다. 그런데 태수는 그렇게 사고를 쳐도 혼날 걱정은 없었다. 어쩌다 한번 마음먹고 혼내주려는 순간, 격앙된 내 목소리를 들은 아빠가 번개처럼 나타나 선수를 치며 태수를 구해준다. 아이가 다치지 않았는지부터 확인해야지 아이를 혼내냐며 되레 나를 나무란다. 잠시 주춤하는 사이 어느새 태수를 덥썩 안고 내빼버린다. 당시, 남편이 태수에게 쏟아낸 정성은 드라마 `역적’에서 길동이가 애기장수임을 한 눈에 알아본 아모개가 펼치는 애틋함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아마 남편은 탱탱볼로 유리창에 금을 낸 것을 길동이가 조약돌로 바위를 박살내버린 것 만큼이나 대견해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남편은 태수가 자기와 같은 곱슬머리를 가지고 태어난 것에도 흡족해 하였다.

 

 머릿결도, 돈 쓰는 패턴도 천차만별

 

 무량이는 나를 닮아 곧게 뻗은 직모를 가졌다. 강동원처럼 무량이의 머릿결은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에도 나부낀다. 태수는 아빠처럼 심한 곱슬머리이다. 남편은 대학시절 머리를 길렀는데 곱슬머리 사이로 파리가 들어가면 나오지 못할 정도로 곱슬이었다고 실실거리며 철사같은 태수의 머리카락을 쓸어주곤 했다. 그런데 태수는 마치 할머니들이 파마를 한 것처럼 머리가 한다발로 엉켜있는 곱슬머리가 불만이었다. 태수는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가벼운 고갯짓만으로 툭 치듯 넘겨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입매에 살짝 미소를 얹고 손가락으로 빗질하듯이 마무리 하는 동작까지 더하면 미션 클리어! 반대로 무량이는 머릿결이 아무런 힘이 없는 직모라서 불만이었다. 머리를 조금만 길러도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는 게 불편했다. 하루라도 머리를 감지 않으면 기름기가 흘러나와 떡진머리가 되는 것도 못마땅했다.

 무량이는 고등학생, 태수는 중학생이던 여름방학 때였다. 친정엄마가 꾼 태몽처럼 사립문 대신 현관문을 열고, 태수같은 파마를 한 무량이와 무량이 머릿결처럼 스트레이트를 한 태수가 함께 들어왔다. 약속이나 한 듯 달라진 서로의 머리모양을 바라보며 멋쩍어하며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무량이와 태수는 머릿결만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용돈을 관리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행태도 많이 다르다. 무량이는 옷가지나 신발을 살 때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려고 하는 고민에 필요한 시간은 단 3초다. 3초면 끝난다. 구매기준은 간단하다. 텔레비전에서 광고를 `빵빵’하게 때리는 최신 유행의 비싼 신제품을 망설임 없이 지른다. 물론 몇 달이나 아껴가며 모은 용돈이 한 번에 날아가지만 비싼 것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으며 `뽀대’나고 `간지’나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는 기분파다.

 그에 비해 태수는 고민에 고민을 더해 신중하게 구매하는 실속파다. 5000원 짜리 면티 하나를 사더라도 최소 3일 이상 요모조모 따져보며 신중을 기한다. 인터넷만으로 정보가 부족하면 발품을 팔아 매장을 직접 방문하여 확인까지 해보고 구매를 한다. 당연히 브랜드를 따지지 않고 가성비 높은 물건을 선호하여 중저가브랜드 제품이 대부분이다. 태수는 고급브랜드와 중저가브랜드의 품질에는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고급브랜드가 비싼 것은 광고비와 유명 모델들에게 지급하는 엄청난 비용 때문이라 여긴다. 대신 태수는 저렴한 것으로 여러 벌 자주 구입한다. 무량이는 일주일 내내 값비싼 제품 하나만 입고 다닌다. 태수는 중저가 제품이지만 다양한 옷과 신발을 구비해 놓고 날마다 갈아입으며 멋을 부린다.

 

 둘다 스포츠 매니아긴 하지만…

 

 무량이와 태수가 똑같은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그것은 바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이다. 기아타이거즈의 열혈팬인 것은 당연하고, 박지성의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시작해 기성용의 `스완지(스완지시티)’를 거쳐 손흥민의 `토트넘’을 넘어 메시의 `바르샤(FC 바르셀로나)’까지. 주말이면 유럽 빅리그의 축구경기를 보느라 시험을 망친적도 많았다. 하지만 둘이 닮은 것은 여기까지다. 무량이는 보는 것만 좋아한다. 나이가 하나둘 더해지면서 시청하는 운동 종목도 점점 늘어났다. 죤시나의 프로레슬링, 김동현의 UFC, 커리의 NBA까지 거의 모든 스포츠를 섭렵했다. 지금도 무량이가 가장 행복해 하고 즐거움을 느낄 때는, 다름 아닌 주말이나 여유시간에 노트북으로 다양한 스포츠중계를 보는 순간이다. 용돈이 넉넉해 통닭이나 피자랑 함께 한다면 그야말로 천하가 태평하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그런데 태수는 머리가 굵어지자 보는 것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직접 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태수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축구다. 학년이 올라가면 맨 먼저 하는 일이 같은 반 아이들과 축구팀을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중학교 때 축구를 좋아하는 절친들과 만든 `카르페디엠’이란 팀은 대학생이 된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태수가 축구를 아~주 잘하는 편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진학문제로 담임샘과 상담하는데 “태수는요, 운동신경은 별로인데 축구열정 하나는 끝내주는 아이네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약간은 실망했다. 어쨌든, 그래서 태수는 주로 수비수를 하는데 축구 열정만큼은 최고수준이다.

 우유만 물려주면 태평하게 낮잠을 자던 무량이와 허스키한 목소리로 애타게 엄마를 찾으며 밤새 울던 태수의 어릴 적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벌써 두 아이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무량이는 무엇이 얼마나 바쁜지 전화 통화 한번 하기도 힘들다. 나는 무량이가 목표하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 낙담할까 살짝 걱정했는데 한마디로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나의 염려와 달리 학교생활에 만족해하며 너무 즐겁게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연휴가 이어지는 주말이나 방학 때도 내려오지 않아 계절에 한번 보기도 어렵다. 그런데 아직 신입생인 태수는 틈만 나면 전화로 나를 찾는다. 그리고 무슨 큰일이 없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집에 내려와 고딩 때 친구들도 만나고 필요한 물건들도 챙겨간다.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무량이에겐 제발 전화 좀해라 하고 통사정도 해보고, 어쩔때는 그렇게 전화 한통 안하면 용돈을 삭감하겠다는 엄포로 극약처방까지 내린다. 한편, 태수에게는 전화 좀 작작하고 그 시간에 룸메이트와 대화하고 책도 좀 보라며 냉랭한 말투로 전화를 받는다. 집에 내려 올 거라고 미리 이야기 하면 무슨 일이냐고 묻고 필요한 물건은 택배로 부치겠다고 이야기하면 말하기 곤란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단다.

 아이들과 전화통화를 할 때면 나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두 가지 색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무량이와 태수를 얼르고 달래고 때로는 호통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알았어요. 알았어”라며 듣는 시늉만 할뿐이다. 쇠귀에 경 읽는 것과 다르지 않고 세종대왕께 영어로 인사하는 격이고 고양이에게 멍멍하는 짓이라고나 할까?

 비가 오면 짚신장수 하는 아들 걱정하고 햇볕이 쨍쨍하면 우산장수 아들 걱정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너무 다른 둘의 성격이 양념반 후라이드반 처럼 딱 반반씩 섞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가끔한다. 그러다가 이내 하릴없는 욕심을 거두어들인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는 우리아이들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부처님의 이 말씀을 이렇게 읽는다.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자기자신이다. 즉, 자기자신보다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복잡다단한 세상사. 너무 촉을 세우고 힘들고 버겁게 살지는 말자. 아직 태안에 있을 때, 너희들을 부르던 그 이름처럼 무량태수로, 마른수건 짜듯이 용쓰지 말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역량의 70% 정도만 쓰면서 좀 널널하게 살자. 사랑하는 무량태수야! 나는 그 바람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단다.

홍은숙<웃음꽃도서관 소피움 연구원>

일러스트=이영섭 <호남대 의상디자인학과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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