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눈으로 보는 책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동생이 있습니다. 내 동생은 특별하지요. 그런 동생은 그리 흔하지 않답니다. 내 동생은 피아노를 칠 줄 알아요. 우릉우릉 울리는 느낌을 좋아하지요. 하지만 노래는 못 부른답니다.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까요.

 내 동생은 짝이랑 춤도 출 수 있고, 줄 맞춰 걸을 수도 있어요. 깡충 뛰고, 뱅글 돌고, 뒹굴 구르기를 좋아하고, 구름 사다리 올라가는 것도 좋아해요. 나랑 같이 올라갈 때는 나를 쳐다보아요. 나도 내 동생을 쳐다보고요.

 그 애는 “조심해!”소리를 못 들어요. 하지만 내가 자기 앞을 가로막고 흔들흔들 하는 건 볼 수 있어요. 그 애는 웃으면서 뒤로 매달려 흔들거리며 내 다리를 잡아당겨요.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동생이 있습니다. 그 애는 나랑 같이 집 뒤쪽 풀밭으로 나가는 걸 좋아해요. 오늘 우리는 사슴을 뒤쫓고 있어요. 나는 뒤로 돌아 그 애한테 말을 해요. 목소리로 하는 게 아니라 손가락이랑 입술로요. 그 애는 내 말을 알아들어요. 내가 밟은 데만 밟으면서 뒤를 따라오지요.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들어 내는 사람은 나예요. 풀밭의 아주 작은 움직임까지 보아 내는 사람은 내 동생이고요.

 내 동생이 아주 작은 꼬마였을 적에, 나는 학교에 다녔지만 그 애는 안 다녔을 적에, 내 동생은 말하는 법을 배웠어요. 날마다 엄마랑 같이 마룻바닥에 앉아 낡은 구두 상자 속의 놀잇감을 갖고 놀면서요.

 “이건 공이야.” 엄마는 말하곤 했어요. “이건 강아지. 이건 책.” 나도 집으로 오면, 같이 마룻바닥에 앉았어요. 내 동생은 상자 속에 손을 집어 넣었어요.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지요. “공.” 내게는 그 소리가 고오오옹처럼 들렸어요. “이건 공이야.” 나는 엄마처럼 말해주었어요. “공.” 동생은 다시 말했어요. 여전히 나한테는 고오오옹으로 들렸지요.
 
▲“내 동생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내 동생도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엄마는 집에서 입술 읽는 법이랑 말하는 법을 가르쳤어요. 내 동생이 하는 말을 선생님이랑 친구들은 다 못 알아들었어요. 언니, 물, 손가락 같은 말들을요.

 오늘 내 동생 친구들이 나한테 말했어요. “쟤, 파랑이라고 말했어!” 나는 내 동생이 그 소리 하는 거 진작에 들었는데 말예요. 하긴 그 애들은 나처럼 내 동생이랑 오년동안 함께 산 게 아니니까요.

 나는 내 동생 마음을 알아요. 내 동생도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어요. 천천히 말하면서 손을 많이 움직일 때는 더 많이 알아듣지요. 그런데 그 애가 보는 건 내 손가락이랑 입술만이 아니에요. 어제는 내가 썬글라스를 썼어요. 아주 큰 안경이었어요. 알은 아주 새까맸고요. 내가 말을 하니까 동생은 안경을 벗게 했어요. 내 갈색 눈이 그 애의 갈색 눈에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집에서 노는 것보다는 밖에서 공놀이 하고 싶다는 말일까요?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는 말일까요?

 그래요. 나는 내 말을 알아듣는 동생이 있어요. 하지만 언제나 그런 건 아니에요. 어젯밤 나는 물었어요. “내 파자마 어디 있니?” 동생은 부엌으로 가더니 식탁 위의 과일 그릇에서 바나나를 꺼내 가져왔답니다.

 내 친구들은 동생 얘기를 물어 보곤 해요. “소리를 못 들으면 귀가 아프니?” “아니.” 나는 대답해요. “귀는 안 아파. 하지만 사람들이 이해해 주지 않을 때 마음이 아프단다.”

 내 동생이 나한테 자기 기분을 전할 때, 말로는 다 못해요. 어떤 때는 손으로도 말을 다 못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애는 화나거나 행복하거나 슬플 때, 얼굴하고 어깨로 말해요. 그 누구보다 더 많이 말할 수 있답니다.

 나는 친구들에게 내 동생 이야기를 해요. 그 애는 가까이에서 개가 짖는 걸 알아차리고, 그 소리의 느낌이 안 좋다고 말한다는 걸요. 그 애는 우리 고양이가 무릎에 앉아 있을 때는 언제 골골거리는지 알아 낼 수 있어요. 라디오를 손으로 만져 보고는 켜져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고요.

 하지만 내 동생은 전화기 벨이 울린다는 것도, 누가 문을 두드린다는 것도 절대 몰라요. 길거리에서 빈 깡통이 딸그랑 구르는 소리도 절대 못 들어요.

 (중략)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동생이 있습니다.
 
▲색이 없어 더 소리에 집중하게 되는…
 
 아주 특별한 동생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언니와 조금 더 특별한 동화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책입니다. 이번 책은 그동안 소개된 책들보다 훨씬 글밥이 많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작은 소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 이야기가 담담하면서도 울림이 있어서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책을 아이에게 읽어준다면 아주 조용한 곳에서 천천히 읽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의 소묘로만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자극적이지 않고 더 감성적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동생의 세계처럼요.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섬세한 느낌이 있습니다. 색은 많은 상징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색을 배제해 버렸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수묵화가 그런 것처럼요. 언뜻 보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같지만, 나머지 색은 글을 읽은 이의 상상력과 이해로 충분히 더 멋지게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림을 그린 이도 아마 이런 바람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책을 넘기다 보면 동생은 집안에서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데, 짐을 잔뜩 든 가족들이 현관문을 애타게 두드리고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글 내용 중에 그런 내용이 있지는 않지만 화가의 상상력이 이 장면을 태어나게 했을테지요. 이 장면에서는 분명 ‘쿵쿵쿵!’ 세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소리를 눈으로 보게 하는 책인 셈이지요. 색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더 집중해서 소리를 상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자매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장면에서는 피아노 소리를 상상하게 되고, 집 뒤 풀밭으로 나가 놀 때는 바람에 풀잎이 사그락 사그락 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사슴이 껑충 뛰어오르는 소리도요. 색 대신 소리를 더 섬세하게 상상하도록 만든 책입니다. 다른 이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생처럼 독자도 소리를 상상하기 위해 흑백의 그림에 더 매달리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장애’에 대해 남보다 부족한, 정상적이지 않은, 안타깝고 아픈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청각 장애 동생을 둔 언니의 입을 통해 장애를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 애는 화나거나 행복하거나 슬플 때, 얼굴하고 어깨로 말해요. 그 누구보다 더 많이 말할 수 있답니다. 그 애는 가까이에서 개가 짖는 걸 알아차리고, 그 소리의 느낌이 안 좋다고 말한다는 걸요. 그 애는 우리 고양이가 무릎에 앉아 있을 때는 언제 골골거리는지 알아 낼 수 있어요. 라디오를 손으로 만져 보고는 켜져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고요.’

 이렇게 소개된 내용들만 봐도 언니가 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지요. 이 책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책일 수도 있지만, 장애인도 결국 평범한 우리처럼 한명 한명 다 특별함을 지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내가 썬글라스를 썼어요. 아주 큰 안경이었어요. 알은 아주 새까맸고요. 내가 말을 하니까 동생은 안경을 벗게 했어요. 내 갈색 눈이 그 애의 갈색 눈에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이 부분을 보면 동생은 좀 다른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말 대신 얼굴과 어깨로 더 많은 말을 하고 상대의 눈을 보며 더 많이 듣고 있다는 걸을 이해한다면 우리도 동생처럼 그들을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내겐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
 
 그들의 노력은 당연하게 여기고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그들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이기적입니다. 우리도 한발짝 다가가야 공평합니다. 함께 사는 세상이니까요.

 장애는 좀 다른 것일 뿐, 서로 이해하고 함께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이런 책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어른이 먼저 이런 책에 공감하고 아이에게 읽어줘야 한다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런 책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을 문밖에 나서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무수히 많은 계단과 불편한 대중교통시설도 있지만, 정상인(“)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림책은 아니지만 참 감동적으로 읽은 ‘내겐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책에 소개된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주인공 대관이는 1987년 대만에서 태어났습니다. 대관이는 5살때쯤 부터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대관이는 소아암이라는 판정을 받아 한쪽다리를 자르게 됩니다. 그후 대관이는 어린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나게 되었지만 소년이 남긴 시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했습니다.
 
 베토벤은 두 귀가 다 멀었고
 두 눈이 다 먼 사람도 있어
 그래도 나는 한쪽 다리가 있잖아
 난 지구 위에 우뚝 설 거야
 헬렌 켈러는 두 눈이 다 멀었고,
 두 다리를 다 못 쓰는 사람도 있어.
 그래도 나는 한쪽 다리가 있잖아.
 난 아름다운 세상을 다 다닐 거야.

 -‘내겐 아직 한쪽다리가 있다’ 책 본문 중에 주인공 대관이가 한쪽 다리를 수술하고 쓴 시
 
 장애는 결코 동정의 대상이 아닙니다. 함께 사는 사람의 좀 특별한 모습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삶의 자세와 도전이 우리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이하늘 <인문학공간 소피움 연구원>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