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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전을 만나다]황인숙 ‘말의 힘’ & 위베르 니망 ‘개미’
내가 만나는 언어가 진실을 막는다
박혜진
기사 게재일 : 2018-04-16 06:05:02
▲ 브리튼 리비에르 ‘연민’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 황인숙 ‘말의 힘’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이 “빛이 있으라.”하니 빛이 있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때로 말은, 있던 것도 없게 하고 없는 것을 있게끔 하는 어마 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한 무지개. 내게 무지개는 늘 일곱 빛깔이었다. 아니 일곱 빛이어야 했다. 해가 부채꼴로 기울 준비를 하고 바람이 서서히 일어서던 여름, “아!”하는 아이의 탄성을 따라 가닿은 창밖에 무지개가 있었다. 창에 손바닥을 대고 아이들과 함께 바라보았다. 도시란 언제나 사물의 민낯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일을 꺼려서, 급작스러운 소나기 멈춘 후의 하늘에 버젓이 뜬 무지개도 왠지 흐릿하기만 하다. “빨주노초파남보” 아이들도 나도 어느새 이구동성, 일곱 가지 색을 눈으로 찾고 있다.

 그러나 이상도 하지, 그날 나의 눈은 다섯 가지 색밖에 보지 못했다. 아마도 도시의 배기가스 때문일 것이라고,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색과 색의 경계에 미간을 잔뜩 모으고 보이지 않는 색을 찾던 나는 ‘무지개는 일곱 색’이라는 배움의 언어를 배신하지 않고자 침침한 눈을 탓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무지개에서 세 가지 색만을 본다지. 무지개를 다섯 가지 색으로 그리는 나라의 아이들도 있다지.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철저히 신봉하는 나이지만, 때로는 내가 습득한 지식의 언어가 내가 만나고 있는 현상을 바로 보거나 진실하게 말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글과 말은 오묘해서 한 번 뇌에 표상되면 그렇게 밖에 보지 못하게 하는 무소불위의 위력이 있다. 그래서 정치가는 자기 수양보다 끗발 날리는 슬로건 제작에 매달리고, 한 번 퍼진 소문은 진정성 여부와 상관없이 소문의 주체가 된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관습과 상식의 힘이다. 나를 즉자적이며 무비판적으로 만드는 상식적 배움, 상식적 말, 상식적 언어들. 배운 상식에 따라 무지개에서 일곱 색을 찾고 있는 나는 얼마나 의심 없이 길들여져 있는가. 때로 관행을 들먹이며 뉘우침 아닌 변명을 하는 뭇 공인들의 행태도 그들의 시대로부터 의심 없이 받아들인 의식의 하나일 것이다. 상식은 이성을 좀 먹는다.
 
 미안해, 고마워.

 개미들의 침묵이 싫어 마법으로 초록개미와 파란개미에게 말의 능력을 부여했던 요정 엘로이즈는 말로 인해 두 세계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을 예감할 수 없었다. 엘로이즈야말로 거친 입담의 소유자, 자신이 알게 된 비밀을 참지 못하고 모두에게 알려 싸움이 발생하면 자신의 잘못을 ‘호기심’과 ‘솔직함’으로 돌렸던 배덕자. 아이들은 프랑스 작가가 쓴 짧은 우화 ‘개미’를 읽고 말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으나 옳게 말하는 기회는 얻지 못했던 개미들에 공감하고 이 가벼운 요정에게 분노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적이 있어요.” 이 말은 가해자인 적도 피해자인 적도 있다는 말이다. 나 또한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나의 말이 누군가의 등을 어루만지고 나의 마음에서 그의 마음까지 이어지는 밝은 길을 내는 일이 좀 더 많기를. 말로 인해 조금이라도 아팠다면 그 의도와는 관계없이 나의 잘못이며 나의 불찰임을. 당신이 던진 말로인해 내가 상처받는다면 반드시 이야기할 것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얘들아 미안하다. 학교는 작은 사회. 투명한 아이들은 어른의 세계를 가감 없이 반영한다. 그들이 익힌 언어는 어른이 만들어 배포한 영상과 드라마와 가까운 이들의 거친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이므로.
박혜진 <문예비평가>
페르디낭 게오르그 발트뮐러 ‘할머니 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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