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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다시 보는 그림책]시인과 요술 조약돌 /팀 마이어스 글, 한성옥 그림, 보림출판
하이쿠를 이야기로 만나고 싶다면
이하늘
기사 게재일 : 2018-09-10 06:05:02
▲ 시인과 요술 조약돌 /팀 마이어스 글, 한성옥 그림, 보림출판.
 오늘 소개할 그림책은 일본의 위대한 시인 ‘바쇼’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책이다. 언뜻 보면 평범하기 그지 없는 말같지만 곱씹어 보면 볼수록 그 깊이가 심오한 정신성을 아주 짧은 시로 표현한 바쇼는 렌가(連歌·두 사람 이상이 번갈아 한 행씩 읊는 시 놀이)의 첫 구인 홋쿠를 독립시켜 오늘날 우리가 ‘하이쿠’(석줄, 열일곱 음절로 됨)라고 부르는 차원 높은 문학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바쇼는 수백년 전에 태어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시인이다. 그는 소박하고 영적인 삶을 살았고 끝없이 여행을 하면서 그 흔적을 글로 남겼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이쿠라는 짧은 시를 깊이 있고 아름다운 예술 양식으로 끌어올렸다. 바쇼는 세상 어떤 것도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마라고 가르친다. 그래야 진정한 이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글쓴이 ‘팀 아이어스’의 말 중에서)
 
 “나의 시는 하로동선 夏爐冬扇(여름의 화로, 겨울의 부채)처럼 쓸모가 없다”-바쇼

 겸손하기까지 했던 바쇼의 하이쿠 몇 개를 먼저 소개해 본다.
 
 딱다구리도 / 암자만은 쪼지 않는 / 여름 나무숲
 
 오래된 연못 / 개구리 뛰어드는 / 물소리
 
 세상 사람은 / 찾지 못한 꽃이여 / 처마 밑 밤꽃
 
 바쇼의 시는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이 책을 쓴 미국의 작가 ‘팀 마이어스’도 일본에서 3년동안 살며 일본을 비롯한 동양의 문학에 관심을 가질 때 바쇼의 시에 매료되었으리라. 오늘 소개할 그림책에는 팀 마이어스가 바쇼의 정신을 배워 쓴 하이쿠 두 편이 담겨 있다. 이야기로도 하이쿠로도 긴 여운을 주는 예쁜 그림책이다.


 서두가 길어져 이제야 오늘 소개할 그림책의 제목을 밝힌다. ‘시인과 요술 조약돌’이다.
 
▲돌은 가난을 아랑곳 않고, 강만 사랑하누나
 
 마쓰오 바쇼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입니다. 하지만 바쇼가 후카가와의 여우들과 어떻게 평생 친구가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바쇼가 후카 강 근처로 이사 와 보니 자기 땅 안에 벚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바쇼는 버찌를 그곳 여우들과 나눠 먹기로 했지요. 한동안은 무척 평화로웠습니다. 바쇼와 여우들은 서로 잘 어울려 지냈지요. 그러다 여우 몇 마리가 슬그머니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버찌를 좋아하던 젊은 여우 하나가 바쇼를 속여 넘기기로 작정했지요. 여우들은 요술을 부릴 줄 알았습니다. 둔갑도 잘 했고요. 젊은 여우는 휘리릭, 떠돌이 중으로 둔갑해서는…. 강가에서 조약돌 세 개를 주웠습니다. 그리고 조약돌을 금돈으로 만들었지요. 여우는 바쇼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쇼의 초라한 오두막으로 간 여우는 햇빛을 받으며 책을 읽고 있는 바쇼에게 은근한 목소리고 말을 걸었습니다.

 “어떤 마음씨 좋은 상인이 나한테 이 금돈을 주었답니다. 이걸로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이 근처 여우들이 먹을 게 별로 없어 보이더군요. 이 금돈을 드리면, 저 벚나무의 버찌를 여우들한테 모두 넘기겠다는 계약서를 써 주시겠습니까?”

 사실은 바쇼도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숲과 들을 돌아다니며 시를 쓰느라고 돈을 거의 못 벌었거든요. 버찌는 맛있기는 하지만 일 년에 한 철만 열리지요. 바쇼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붓을 집어 들어 여우 중이 말한 대로 쓰고 자기 이름을 적었습니다. 계약서를 받아든 중은 낄낄거리며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 젊은 여우는 오두막으로 살짝 다가갔습니다. 요술이 풀려서 금돈이 조약돌로 되돌아온 것을 보고 바쇼가 얼마나 화를 내는지 보고 싶었던 거지요. 그런데 창문으로 엿보니, 바쇼는 조약돌 세 개를 상 위에 올려놓고 싱글거리면서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여우는 어리둥절했지요. 그 때 바쇼가 창가에 여우 귀가 삐죽 나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보게 친구!” 바쇼가 밝은 목소리로 여우를 불렀습니다.

 “들어와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한 번 보게!”

 궁금해진 여우는 총총히 걸어 들어왔습니다.

 “어제 어떤 중이 나를 찾아왔다네. 버찌를 모두 여우들에게 넘기는 대가로 내게 금돈 세 개를 주었지. 그런데 여우가 둔갑한 중이었던 모양이야. 진짜 돈이 아니더라고, 오늘 아침에 보니까 조약돌로 변해 있지 뭔가. 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지 좀 보게!”

 바쇼는 흐르는 물에 둥글게 다듬어진 조약돌을 들어올리더니, 부드러운 감촉과 풍성한 빛깔에 감탄했습니다. “처음에는 금돈을 잃었다는 생각에 실망하고 화도 났다네. 정말 바보같았지! 하지만 조약돌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깨닫게 됐어. 그리고 시가 떠오르더군!”
 
 돌은 가난을 / 아랑곳 않고 강만 / 사랑하누나
 
 시를 듣자 여우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갑자기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여우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제가 바로 중으로 둔갑해서 선생님을 속인 여우입니다. 저는 욕심에 눈이 멀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달으셨군요! 앞으로는 금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마음깊이 새기겠습니다.”


 바쇼는 여우를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은 시는 돈보다 더 값지다네. 그리고 훨씬 더 오래가지. 솔직히 털어놓아 주어서 고맙네 친구.” “가르침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우는 절을 하고 물러났습니다. 여우는 무거운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시인에게 진 빚을 어떻게 갚을지 곰곰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여우는 뭔가 떠올랐습니다. 옛날에 어느 절 석등 아래 금돈 세 개를 묻어 놓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요! 그 돈이면 시인이 겨울을 날 양식은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여우는 금돈을 파내서 다시 바쇼의 오두막으로 갔습니다. “선생님, 버찌를 모두 여우들에게 주겠다고 하신 계약서는 찢어버려도 되겠지요? 제가 선생님을 속였으니까요.” 여우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바쇼가 반대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짐작대로였습니다. “그러면 안 되네. 사과는 받아들이지. 하지만 나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어. 계약을 안 한 것처럼 구는 건 내 이름을 더럽히는 짓이야.” “그렇다면 적어도 버찌 값이라도 치르게 해주십시오!” 여우는 바쇼에게 금돈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건 진짜 금돈이라고 다짐을 하면서 말이에요.

 “이보게 친구, 까다롭게 굴고 싶지는 않지만 자네는 이미 버찌 값을 치렀잖은가. 덕분에 나는 시를 썼고. 그걸로 충분해! 난 그런 동정은 받고 싶지 않네.” 여우는 또다시 부끄러워졌습니다.

 여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강가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러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에 눈길이 닿는 순간, 바닥에 아름다운 조약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우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웃음을 지었습니다. ‘내가 뭘 해야 할지 이제 알겠어!’

 
▲더불어 먹는 버찌는 혼자보다 더욱 달콤해
 
 다음날 여우는 조그만 주머니를 들고 다시 바쇼의 오두막을 찾아갔습니다. 여우가 다가오는 것을 본 바쇼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습니다. 저 친구가 또 돈을 주려나 싶었거든요. “선생님”여우는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하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오늘 제가 가져온 건 선생님을 동정해서 드리는 게 아닙니다. 이건 제 존경심을 표시하려는 조그만 선물입니다.” 여우가 열어 보인 주머니에서 예쁜 조약돌 세 개가 나왔습니다. 바쇼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아니, 이보게!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로군! 그래. 이건 받지. 이 선물 덕분에 또 시가 나올 거야. 고맙네, 자네는 정말 친절하군!” 여우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다 머뭇거리며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선물을 받으시겠다는 말씀이죠?” “물론이지.” 바쇼는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여우는 이렇게 외치고 팔짝팔짝 뛰어갔습니다.

 그날 밤 바쇼는 잠자리에 들기 전 상에 올려 놓은 새 조약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촛불을 껐습니다. 다음날 아침 햇살에 눈을 뜬 바쇼는 기지개를 켜다 딱 멈췄습니다. 조약돌을 올려놓았던 상 위에 금돈이 있는 것입니다! 금돈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습니다. 바쇼는 금돈을 하나하나 만져 보았습니다. 진짜 금돈이었습니다. 확실했어요. 그 돈은 지난번에 여우가 주려고 했던 금돈이었습니다. 바쇼는 문득 뭔가를 깨닫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건 처음부터 조약돌이 아니었습니다. 여우가 또 바쇼를 속인 것이었어요. “정말 꾀 많은 친구로군.” 바쇼는 혼잣말을 했습니다. “내가 약속을 지키리라는 걸 알았던 거지. 속아 한 약속이라도 말이야.” 바쇼는 금돈을 집어 들고 잠깐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돈이면 겨울 동안 먹을 양식을 충분히 살 수 있으테니까요. 바쇼는 여우가 어디에선가 지켜보고 있을 것 같아 문을 열었습니다. 여우를 불러들이려고요. 하지만 보이는 건 벽에 붙어 있는 종이 한 장뿐이었습니다.

 ‘선생님, 처음에 드린 조약돌 덕분에 선생님이 시를 쓰셨듯이, 이 일 덕분에 저도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먹는 버찌는 / 혼자보다 / 더욱 달콤해
 
 석줄, 열일곱 음절의 감동이 버찌향처럼 입안에, 마음에 감돈다. 우리도 하이쿠를 쓸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 여우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에 감동이 있다면 말이다.
이하늘 <인문학공간 소피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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