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은 저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저항하는 카뮈와 참회하는 오웰은 양심을 쏘지 않는다

▲ 버마의 젊은 영국 지식인은 훗날 그의 에세이에 부끄러움을 토로한다. 제국주의 국가의 젊은 인재들이 식민지 국가에서 벼슬하기란 심히 고역이었을 게 틀림없다.
 “어디로 가시죠?”
 “겨우 여기까지 왔소.”
 “그럼 당신들 여기서 잘 작정이세요?”
 “아니, 나는 엘 아뫼르로 돌아갈 테니 당신이 저 자를 탱귀로 좀 데려다 주시오. 합동수사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무슨 말씀이죠? 사람을 놀리는 겁니까?”
 “천만에, 나는 명령을 받았소.”
 “명령이요? 그렇지만 그것은 내 직책이 아니지요.”
 “거 무슨 소리요? 전시에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하오.”
 “그렇다면 선전포고를 할 때까지 기다리지요.”
 “다시 폭동이 일어날 모양인지 공기가 심상치 않아요.”
 “대체 저 자가 무슨 짓을 했나요?”
 “자기 사촌을 죽였다오.”
 “왜 죽였나요?”
 “잘은 모르지만 집안싸움을 했던가 보오. 서로 곡식을 빌려주거나 했던 모양인데.”
 “이런 일은 마땅치가 않아요. 나는 그를 연행하지 않겠어요. 당신과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 짓은 못해요.”
 “이건 명령이요. 거듭 말하지만 복종해야 하오.”
 “내가 한 말을 부대에 가서 보고하세요. 나는 그를 연행하지 못하겠어요.”
 “나를 힘들게 하지 좀 마시오. 당신의 본심은 잘 알고 있소. 어쨌든 서명은 해야 하오.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 알베르 카뮈의 ‘어떤 손님’
 
▲부조리한 포승을 놓아야 양심적 지식인이다
 
 여기는 북아프리카의 고원지대. 아마도 알제리 쯤으로 추정되는 아랍 지역. 북아프리카가 지리학적으로는 아랍이 아니지만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특성과 아라비아라는 문화적 특성이 존재한다는 면에서 범아랍권이라고 부른다. 때는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고 있었던 시기. 식민지 고원지대 산간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군의 늙은 헌병이 더 깊은 산간의 조그만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프랑스 출신 젊은 교사 다뤼에게 살인을 저지른 아랍 청년을 고원 너머 먼 재판소까지 호송하라는 상부 명령을 전달하고 있다.

 늙은 군인과 젊은 교사의 긴 대화를 보면 아무래도 이 죄수 호송명령은 관철되기 어려워 보인다. 일상에서야 군인이 교사에게 명령을 할 이유가 없겠지만 역사적으로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로 지배했었고 알제리 역시 한때 프랑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독립전쟁을 벌인 바 있으니 비상시국 하에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군대가 교육기관에 명령을 전달하는 모습은 근거없는 일이 아니다. 폭동의 조짐과 항쟁의 기운이 일고 치안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교사가 군인 노릇도 해야 하는 모양이다.

 이상한 것은, 두 사람의 실갱이에서 정당한 명령은 거절되고 있고 부당한 거절은 주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 살인은 저질러졌고, 그것도 고원지대 벽촌의 작은 부족 안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민족적 분쟁이라거나 또는 정치적으로 왜곡되어진 일도 아닌 듯하다. 그런데 왜 젊은 다뤼 선생은 이토록 당당하게 살인자의 호송을 못마땅해 하며 거절하는 것인가?
 
 그날 아침 일찍 소도시 반대편 경찰서의 전화를 받았다. 코끼리가 시장을 박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랑말을 타고 나섰다.
 누군가의 시체가 진흙탕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검은 피부의 드라비다 인도인이었다. 벌거벗다시피한 몸은 죽은 지 얼마 안된 것이었다. 거대한 짐승의 발이 가한 마찰력은 마치 토끼 가죽을 벗기듯이 그의 등과 등가죽을 깔끔하게 발라놓았다.
 코끼리는 많은 사람들의 접근에도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풀더미를 찢어서는 무릎에 탁탁 쳐서 진흙을 털어내며 입에 집어넣고 있을 따름이었다. 코끼리를 보자마자 저걸 쏘아서는 절대 안된다는 걸 알았다. 평화롭게 풀을 먹고 있는 코끼리는 소보다 더 위험할 것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 주변에 나를 둘러싸고 모인 군중이 눈에 돌아왔다. 적어도 2000명은 넘었을 텐데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길이 양쪽으로 멀리까지 꽉 막혀 있었다. 코끼리가 곧 사격당할 거라는 기대로 얼굴마다 흥분과 기쁨이 넘쳤다. 쇼를 시작하려는 마술사 보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들은 나를 싫어했지만 마법의 총을 들고 있는 그 순간의 나만큼은 값진 구경거리였다.
 나는 코끼리를 결국 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코끼리를 쏘고 싶지 않았다. 코끼리의 할머니같은 분위기에 정신이 팔린 채 그가 풀더미를 무릎에 탁탁 치는 걸 바라보고 있자니 그를 쏘는 것은 살인같았다.
 나는 탄창에 총알을 박아넣었다. 군중의 소리는 잦아들었다. 수많은 목구멍에서 마침내 공연의 막이 올라가는 걸 보는 관객들처럼 깊고 낮고 행복한 탄식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

제국주의 국가의 지식인으로서 양심적 갈등을 겪은 두 사람. 조지 오웰과 알베르 카뮈는 저항하고 참회함으로써 지식인의 사명을 다했다.
 
▲부조리한 사격을 멈춰야 양심적 지식인이다
 
 여기는 동남아시아의 아열대 지대. 지금은 미얀마라고 불리는 버마에서 벌어진 일을 작가 조지 오웰이 훗날 기억을 더듬으며 에세이로 남긴 글이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영국 역시 20세기를 훌쩍 넘기고서도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고, 인도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외조부의 영향으로 작가 오웰 역시 식민지 생활과 그 문화를 접하면서 살아왔는데, 이 에피소드는 버마에서 있었던 ‘코끼리 사건’에 관한 드라마다.

 코끼리 한 마리가 난동을 부리고 있다. 야생 코끼리가 아닌 사육되어 길들여진 코끼리지만 발정기에 접어든 코끼리가 번식을 위한 행위를 하지 못하자 우리를 부수고 나와 사고를 친 것이다. 식민지 본국은 기본적으로 군대와 경찰같은 물리력으로 식민지를 통치하지만 장기적으로 안정된 지배를 강고히 하기 위해선, 자칫 저항을 받을 수 있는 폭력적 방법보다는 더 세련되고 유연한 방식을 취하게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법이다. 영국은 그런 점에서 지나치게 세련된 법으로 가혹하게 식민지를 지배해왔다. 그런 제국주의 경찰이 원주민도 아닌 발정난 코끼리 한 마리를 놓고 이 무슨 나약하고 허약한 고민타령이란 말인가?

 필자의 말대로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가 코끼리가 다시 발광을 하면 쏘아 죽이고 그렇지 않고 잠잠하면 물러가 행정적으로 사후 처리만 하면 끝나는 일이다. 목격자를 불러 재산상의 손실을 따지고 사람의 생명을 해친 일에 대해 코끼리 주인에게 손해배상을 시키는 등의 손쉬운 절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코끼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이유는 뭔가?

 작가 오웰의 살아온 내력을 보면 누구보다도 야만적 전제정치와 파시즘을 증오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다. 지식인의 지적 자산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시대를 뛰어넘어 계속되어 왔고 그때마다 사회적 담론은 일시적 배반을 제외하고는 늘 정의로운 결과를 내렸다. 지식인은 악의 편에 서선 안된다는 것, 지식인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 지식인은 폭력과 억압과 착취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으로 받아들여졌다.

 식민지 경찰로서의 정체성과 양심적 지식인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필자는 고민한다. 식민지를 만들어 착취하고 식민지 민중을 억압하는 조국 영국을 지식인으로서 증오하지만, 제국주의 국가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허접하게 시비를 걸거나 사소한 해코지만 즐기는 식민지 민중을 경찰로서 혐오한다. 양심은 코끼리를 쏘아선 안된다고 소리치지만, 코끼리 한 마리도 쏘지 못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와 이후에 있게 될 공권력에 대한 무시와 저항이 두려워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오웰은 결국 그 자리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리고 그토록 증오하던 영국 제국주의의 경찰로서 이기적 선택을 한 자신을 몹시도 부끄러워 한다.
 
▲지식인의 숙명, 낯선 이방인과 반가운 손님 사이
 
 북아프리카 고원의 산간벽지 작은 학교의 젊은 교사 다뤼는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필시 이 다뤼라는 젊은 지식인은 작가 알베르 카뮈의 아바타인 듯한데, 카뮈이자 동시에 다뤼인 이 지식인도 법과 양심의 경계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일까? 프랑스가 알제리를 지배한다는 건 단순히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 국가를 지배한다는 것민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정 종교가 특정 종교를 지배하고 특정 문화가 특정 문화를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는 기독교 국가이며 알제리는 이슬람 국가다.

 법은 짧고 종교는 길다. 종교와 같은 관습은 오랜 기간 전통으로 계승돼 오지만 법은 상대적으로 그 기간이 짧으며 더구나 본국이 아닌 식민지의 법은 부정적으로 유연하다. 과거의 전통이 살아있는 종교적 문화적 공동체에는 그들을 지키는 법 이상의 것이 있게 마련이다. 곡식을 훔쳤거나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곡식을 빼앗기거나 돌려받지 못해 한 가족 또는 한 부족이 생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법이란 늘 엄정하고 냉정하며 객관적이라고 하지만 법은 시시때때로 매우 느리고 매우 불평등하며 매우 게으르다. 생명과도 같은 곡식을 빼앗은 자에 대한 처형이 1천년 넘게 율법으로 자리잡은 이슬람의 전통을 어찌 가벼이 볼 다뤼란 말인가?
 
 “대추하고 빵하고 사탕이요. 이틀은 먹을 거요. 자, 여기 돈 백 프랑도.”
 아랍인은 받아든 것을 어찌할지 몰라 어물어물 하고 있었다. 다뤼는 동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탱귀로 가는 길이요. 두 시간만 더 걸어가면 되오. 거리에서 헌병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아랍인은 여전히 보따리와 돈을 두 손에 든 채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뤼는 그의 팔을 잡아 남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게 고원을 횡단하는 길이오. 여기서 하루만 더 걸으면 초원과 목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법도에 따라 당신을 숨겨 줄 거요. 아무 말도 마시오. 자, 나는 그만 가보겠소.”
- 알베르 카뮈의 ‘어떤 손님’
 
 알제리의 젊은 프랑스 지식인은 제국주의 법을 버리고 지식인의 양심을 선택했다. 이후에 있게 될 불이익이나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순간 만큼은 양심이 시키는대로 따랐다. 버마의 젊은 영국 지식인은 훗날 그의 에세이를 어떻게 마무리했을까? 제국주의 국가의 젊은 인재들이 식민지 국가에서 벼슬하기란 심히 고역이었을 터,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본국에서나 식민지에서나 손님 아닌 손님으로, 이방인같은 손님으로 낯선 여행을 했음에 틀림없다.

알제리의 젊은 프랑스 지식인은 이후에 있게 될 불이익이나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제국주의 법을 버리고 지식인의 양심을 선택했다. - 카뮈의 ‘어떤 손님’을 모티프로 한 영화 ‘신의 이름으로(Far from Men, Loin des hommes)’

 나중에 당연하게도, 코끼리를 쏜 일에 대해 긴 말이 오갔다. 코끼리 주인은 몹시 화가 났지만 법적으로 나는 옳은 일을 했다. 나중에 나는 쿨리가 죽은 걸 아주 기쁘게 여기게 됐다. 그로 인해 내가 한 일이 합법적인 행위가 되었고 코끼리를 쏜 일에 충분한 전후사정이 돼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궁금하다. 내가 순전히 바보로 보이는 걸 피하기 위해 그 짓을 했다는 걸 누군가는 알았을까
-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

김시인 <인문학공간 소피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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