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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기대며, 함께 나누며]‘엄마 마중’ 이태준 글, 김동성 그림, 보림
늦게 온 7월
하수정
기사 게재일 : 2019-02-11 06:05:01
▲ ‘엄마 마중’(이태준 글, 김동성 그림, 보림) 중에서.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중에서
 
▲믿음 없이는 기다릴 수 없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네가 들어오지 않은 채 문이 닫힐 때마다 문이 열렸다 닫힌 횟수만큼이나 네가 더 그리워진다는 것을.

 모두들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다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다림의 대상이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감정일 수도 있고, 또 시간일 수도 있다. 그리고 팔이 아파도 절대로 내려놓을 수 없는 삶의 깃발일 수도 있다.

 간절히 기다리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시에서는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네가 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나는 기다리고 있다. 오기로 한 너의 그 약속을 내가 믿기 때문에 나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믿음 없이는 기다릴 수 없다.
 
 “선생님, 나, 7월에 집에 간다요. 아빠가 7월에 집에 간다고 했어요.”
 “야! 빨리 앉아라. 공부 시작해야지!”
 “뭐~ 민우 너나 앉아라.”
 준형이의 눈이 감출 수 없는 즐거움에 반짝이고 있다. 고개도 살짝살짝 흔들고, 어깨도 덩실거린다. 민우는 그런 준형이를 보는 것이 불편한가 보다. 쳐다보는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말이 날카롭게 날아간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즐거워하는 준형이가 더 민우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지 두 아이가 자꾸자꾸 티격태격한다.

‘엄마 마중’(이태준 글, 김동성 그림, 보림) 중에서.
 
▲기다린대도 찾아올 기대가 없어…
 
 민우의 엄마는 비혼모라는 이름표를 달고 열 달 동안 민우를 뱃속에 품고 키웠으며, 그리고 낳았다. 비혼모로 뱃속에 있는 아기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혼모라는 이름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선명한 주홍글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곱지 않는 눈초리와 배려 없이 쏟아지는 걱정의 말과 원하지 않는 무거운 충고들이 엄마를 괴롭혔을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엄마를 괴롭히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두려웠겠지만, 열 달 동안 아기를 꼭 품어 지켜냈다. 엄마는 뱃속의 아기에게 가만히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괜찮아. 우리는 잘 해 낼 수 있어.’라고.

 세상은 의지로만 살아 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민우를 오랜 진통 끝에 낳은 엄마는 이제 핏덩이를 먹이고 입히고 보살피며 살아가야만 한다. 어린 것을 먹이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요하지만, 어리고 비혼모인 엄마에게 세상은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젖먹이 아기까지 돌보아야 하는 조건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기에 대한 사랑만으로 버티고 있는 엄마는 현실의 냉혹하고 단단한 벽에 자꾸자꾸 부딪쳤을 것이고, 세상 앞에서 자꾸자꾸 작아졌을 것이다.

 핏덩이 어린 자식을 쉽게 떼어놓는 부모는 그 어디에도 없다. 사랑하는 아기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비혼모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기로 용기를 낸 어린 엄마가 끝까지 아기를 지키고 온전히 키울 수 있도록 이 사회나 국가가 어떤 지원을 했고 어떤 보호막을 제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엄마가 현재 시행되고 있는 비혼모 지원 제도나 조직을 찾아보았는지, 적극적으로 지원과 보장을 받으려 노력했는지 등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엄마는 결국 민우의 양육을 시설에 위임했다. 민우 엄마 혼자서는 아기를 키울 수 없었나 보다.

 민우는 엄마를 모른다. 그래서 민우가 엄마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민우에게는 찾아오는 가족도 없고, 돌아갈 집도 없다. 그래서인지 민우는 명절이 제일 재미없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은 명절이면 가족이 찾아와서 외박도 나가고 외식도 나가는데, 민우에게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은 명절을 기다린다. 하지만 민우는 명절을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면 자신을 찾아올 사람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민우 앞에서 준형이가 몇 달 후면 집에 갈 거라고 자랑을 하였으니, 민우는 내놓고 속상한 마음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불편함을 감출 수 없어서, 날카롭게 준형이에게 말을 내뱉은 것이다.

‘엄마 마중’(이태준 글, 김동성 그림, 보림) 중에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추워서 코가 새빨간 아가가 아장아장 전차 정류장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낑’하고 안전지대에 올라섰다. 이내 전차가 왔다. 아가는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다.
 “우리 엄마 안 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차장은 ‘땡땡’하면서 지나갔다. 또 전차가 왔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다.
 “우리 엄마 안 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이 차장도 ‘땡땡’하면서 지나갔다.
 - 이태준의 ‘엄마 마중’
 
 그 다음 전차가 또 왔다. 아가는 전차가 올 때마다 “우리 엄마 안 오?” 라고 묻고 있다. 번번이 차장은 ‘땡땡’소리만 내고 지나가버렸지만, 아가는 계속계속 물었다. “우리 엄마 안 오?” 아가는 다음 전차가 오기를,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면서, 정거장표지판에 매달려도 보면서, 쭈그려 앉아도 보면서 엄마를 계속 기다린다.

 준형이는 8살 때 시설에 들어왔다. 준형이방 담당선생님이 준형이 손을 잡고 와서는 ‘준형이 아빠가 바빠서, 우리 준형이에게 맞춤법을 못 가르쳐 주셨어요. 하지만 준형이가 영특한 아이여서 금세 따라 배울 거예요.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지도해 주세요.’라고 당부를 하고 갔다. 준형이는 글씨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6, 7, 8세 시기는 문자, 언어를 폭발적으로 습득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또 방 담당선생님의 말처럼 준형이가 영특하기도 하고, 학교선생님과 준형이방 담당선생님이 준형이의 맞춤법지도에 특별히 신경썼기 때문에 준형이는 한 주 한 주 눈에 보일 만큼 빠르게 문자를 습득해 나갔다.

 준형이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보호시설에 오게 되었다. 준형이의 아빠는 일자리가 고정되어 있기 않아서, 생활이 불규칙했다. 혼자 있는 아이에게 제대로 된 식사와 적절한 보호와 보살핌을 제공하지 못했다. 교육 또한 이뤄지지 못 했다. 그래서 법원은 1년 간 준형이를 시설에서 보호하며 양육하고 보살피라고 결정했다. 준형이 아빠의 경우는 의도하지 않은 생계형 방임이었던 터라, 준형이가 시설에 들어온 후에도 준형이를 보러 시설에 자주 찾아왔다. 명절 때 준형이는 아빠 집에 가서 명절을 보내고, 가끔 아빠가 쉬는 날에는 아빠와 외출을 하기도 했다. 아빠가 사 준 장난감이라고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자랑을 하기도 했다.

 준형이의 시계는 아빠가 7월에 집에 갈 거라는 말을 한 이후로 7월에 맞추어져 돌아갔다. 준형이는 날짜 이야기만 나오면 ‘7월’을 이야기 했다. 진아는 2월, 유은이는 4월, 민우는 7월, 준형이는 12월. 아이들의 생일을 수첩달력에 기록하고 있는데, 준형이가 씩 웃으며 ‘내 생일에는 선생님 못 봐요. 7월에 집에 가거든요.’라고 말한다. 수업 중에 추석 때 송편 먹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준형이가 또 씩 웃으며 ‘추석 때 선생님 못 봐요. 7월에 집에 가거든요.’ 라고 말하고,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준형이가 씩 웃으며 ‘크리스마스 때에는 나 여기 없어요. 7월에 집에 가거든요.’라고 이야기한다. 수업내용 중에 ‘너에게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고,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 있니?’라고 물으니 준형이는 ‘우리 친구 진명이랑 노는 거요. 우리 아파트에 사는데요, 내가 집에 살 때는 같이 카드 가지고 놀고, 장난감 가지고 놀고, 놀이터에서 놀고 그랬어요. 집에 가면 진명이랑 또 놀 거예요. 7월에 가요.’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하루하루 손꼽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가 7월에 집에 간다고 약속을 했으니 말이다.

‘엄마 마중’(이태준 글, 김동성 그림, 보림) 중에서.
 
▲약속이 깨지는 순간
 
 “우리 엄마 안 오?”
 “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구나.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이번에는 차장이 내려와서 이야기하고 갔다. 아가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었다. 코가 새빨개져도 가만히 서 있었다.
 - 이태준의 ‘엄마 마중’
 
 치자꽃 향이 퍼지는 7월이었다. 드디어 7월이 왔다.

 교실에 들어섰는데, 준형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도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나, 못 가요.”

 라는 말만 툭 뱉고는, 고개를 다시 떨군다. 준형이는 유독 동글동글 밤톨처럼 예쁜 머리통을 가지고 있다. 그 자그마한 머리가 툭 하고 떨어져서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참, 이럴 때 어렵다. ‘그렇구나. 준형이를 계속 볼 수 있어서 선생님은 좋은 걸’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어쩌지? 다음에 갈 수 있을 거야.’라고 확신할 수 없는 비어있는 말을 무책임하게 내뱉을 수도 없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나도 잘 모르겠어서, ‘준형아, 이리 와.’하고는 그냥 꼭 안아주었다. 내 마음이 이렇게 복잡한 데, 자그마한 이 사람의 마음에는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어찼을까 라는 생각이 드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체온만 나누어주었다. 민우도 준형이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 하게 됐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고 있었다. 진아, 유은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모두 아는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내어서, 준형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는 듯 했다.

 준형이는 그 후로 한동안 수업에 집중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전에는 친구를 까불까불 장난스럽게 놀리기도 하고, 먼저 생각을 발표하고 싶다고 손을 번쩍번쩍 들던 아이가 마음에 많은 것이 들어와 무거워져 버렸는지, 기분도 태도도 가라앉아 있었다. 섬광 같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준형이는 조용했다. 한동안.
 
▲늦게 온 7월
 
 11월의 찬바람과 함께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들이 소란했다.

 “선생님, 준형이 집에 갔다요. 월요일에 갔어요.”

 “내가 편지도 써 줬어요. 준형이가 감동이라고 했어요.”

 아이들이 상기된 얼굴로 내게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바빴다. 정말 교실에는 준형이가 없었다. 준형이방 담당선생님은 준형이 아빠가 갑자기 오셔서 아이를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법원에서 정한 보호기간이 1년이어서, 1년이 지나면 보호자가 요구하면 아이를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아이를 보낸 선생님은 생활형 방임이 다시 재발되지 않도록 준형이가 다니는 학교와 마을, 방과후 돌봄 교실과 지역아동센터가 가정과 잘 연계되어 준형이와 준형이 아빠를 도왔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바람을 이야기했다.

 준형이는 아빠랑 손을 잡고 집으로 갔다고 했다. 아빠가 준형이짐을 큰 가방에 넣고 어깨에 메고 준형이 손을 잡고 집으로 갔다고 한다. 준형이는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갔다고 한다. 동글동글 밤톨 머리를 살짝살짝 흔들고 엉덩이도 몇 번 흔들었을 것이다. 준형이의 까만 눈이 반짝반짝 웃었을 것이다. 준형이가 얼마나 좋아했을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유은이와 다른 아이들도 준형이가 집에 가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아이들은 아빠 손잡고 떠나는 준형이를 보며, 언젠가 자신들도 집에 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민우는 ‘준형이, 집에 갔어요.’라는 말을 한 번만 했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어 달이 지난 후에, 민우는 준형이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조심히 했을 뿐이다.
하수정 <그림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꿈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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