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의롭지도 친절하지도 자비롭지도 않다
신앙이란, 신을 사랑하되
신의 사랑을 구걸하지 않는 것

▲ 그녀가 복수심을 품자 세상은 비로소 지옥이 되었다. 복수해야 할 대상의 부재는 사람의 내면을 끔찍하게 만든다. 영화 ‘밀양’
 십자가를 생각하면 분노로 아랫배가 뜨뜻해진다. 그리고 떠오르는 당신의 얼굴. 아마도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다가 거기서 틀어주는 잔인한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온 날.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남자가 십자가에 못이 박히자 카메라에 피와 살점이 튀었고 난 경기를 일으켰다. ‘나는 죄 없어!’ 울면서 하소연하는 나를 토닥여준 사람은 당신이었다. 그때 당신이 신앙을 가졌었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당신은 믿는 것이 여러 번 바뀌었으니. 무엇에든 쉽게 매료되는 사람이었으니. 나는 변덕쟁이인 당신이 싫었다. 나는 당신의 불안과 정열에 자주 불만을 품었다. 당신은 어디로 갔나? 지금은 어디에 있나?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언젠가 당신이 믿는 신을 나도 믿으리라 다짐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신 말고, 교회 안에 있는 신 말고 당신이 옳다고 생각한 신을. 마지막 눈 감는 순간에 본 신. 그 신이 다스리는 세계로 갔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 얘기를 달밤에 그네 타며 친구에게 말했었지만, 지금 나는 무엇도 믿지 않는 사람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 와선 이게 당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은 죄책감에서 기인한 합리화처럼 느껴진다. 나는 당신 사후에 당신의 삶에 대해 여러 번 생각했다. 때로 가볍게, 때로 민망할 만큼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당신이 평생 고군분투했다는 것을. 당신은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은 답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우습게도 그를 깨닫고 나는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난 근본적으로 종교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눈에 안 보이는 어떤 것이 있다고 믿고 거기서 위안을 얻는 것은 공허하다. 쉽게 속아 넘어가는 성격이 아닌 것이 힘들다고 느낀다.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사랑에 빠지듯, 그렇게 간단히 홀려버릴 수 있다면 차라리 편하겠다고 종종 생각한다. 가끔 신기하다. 까마귀들은 단박에 공허함을 느끼고 달아나는 장소에서 어린양들은 꽉 찬 사랑에 감복하고 눈물을 흘리고 하는 것이다. 까마귀는 아마도 어린양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겠지.
 
▲눈에 안보이는 어떤 것을 믿는다는 것
 
 ‘네 엄마는 믿음이 있잖니. 분명히 보살펴 주실 거야.’ 그렇게들 떠들어댔지만 당신은 떠났다. 한 번도 신앙을 가진 적 없던 나는 애초에 그 소리에 담담했다. 그런데 떠난 뒤에 한다는 말들이 이젠 신이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데려갔대.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놈의 사랑 좀 제발 그만하라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주제에 고귀하고 위대한 척 좀 그만 하라고. 상실은 상실로 아픔은 아픔으로 느끼라고. 아무런 방어막도 없이 이러고 있는 내가 불쌍하다면. 약을 팔지 말란 말이야. 그래 약이야 약. 약장사. 죽음은 아무런 뜻도 없다. 그것이 누구의 죽음이든.

 일 년 후 할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교회 가야지. 하나님 믿어야지. 그래야 나중에 천국 가서 엄마 만나지.’ 나는 화내지 못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때마침 내 머릿속에서 당신에게 했던 못된 말과 못된 행동이 떠올랐고. 내 부족한 사랑은 또 다시 시험에 들고. 어쨌든 그래서 나는 그 말에 대해 뭐라 지적할 수 없었다. 마치 빛을 뿌리며 지나가는 천사를 목격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 마냥 들었다. 말도 안 되는 말을. 네, 하고 대답한 순간 나는 또 다른 무대에 들어섰음을 깨달았다. 하하 웃으며, 아마도 죽을 때까지 열연을 펼쳐야 하는. 교회가 존재하고 혈연이 지속되는 한 앞으로 내 생각을 말할 기회는 없겠지.

 폭력을 당한다고 느낀다.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행사하기도 한다. 왜 이런 사랑에 그토록 목말라서. 우리는 같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것을 애틋이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서로의 상실을 다독이지 않고 왜 또 다시 시험하는 걸까. 왜 고통의 면류관을 씌우고 죄책감의 십자가에 매다는가. 그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다. 내가 죽어서 지옥에 갈까봐. 그래서 당신을 못 만날까봐. 나는 내 상처를 털어놓지 않을 작정이다. 그런 인간으로 자랐으므로. 실타래는 징그럽게 얽히고설켰고, 해결해줄 신은 당근 없고. 게다가 나는 당신을 다시 만났을 때 무슨 말을 처음 꺼내야 하는지도 정하지 못했다. 신이 있다면 답을 줄까.
 
▲“여기 뭐가 있어요? 그냥 햇빛이에요”

 “우리가 밖을 보면 사람도 보이고 차도 보이지만, 세상에는 눈에 안 보이는 것도 있거든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눈에 안 보이는 세상을 볼 수 있어요. 그 세상은 정말로 기쁘고, 감사하고, 마음에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을 몰랐을 때는 세상의 반 밖에 몰랐다고 보면 돼요. 원장님처럼 불행한 분은 하나님 사랑이 꼭 필요해요.”
 “만약에요.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크시다면요. 그렇다면 우리 준이가 왜 그렇게 처참하게 죽게 내버려 두셨어요? 그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원장님, 그래도요. 세상 모든 일에는 주님의 뜻이 있다는 걸 아셔야 돼요. 저기 저 햇볕 한 조각에도 우리 주님의 뜻이 숨어있다고요. 세상에 주님의 뜻 아닌 게 없어요.”
 “여기 뭐가 있어요? 그냥 햇빛이에요, 햇빛. 뭐가 있어 여기에. 아무것도 없어요.”
- 이창동의 ‘밀양’ 中.
 
 신애는 아들과 함께 죽은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온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작은 피아노 학원을 열고. 행복하게 잘 사는 척, 모아둔 돈도 많은 척 땅도 알아보고.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유괴를 당한다. 그녀는 전 재산이 담긴 봉투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울면서 차를 몬다. 며칠 뒤 범인은 잡히고 강둑에서 조용히 시체가 발견된다. 홀로 된 그녀는 때로 엉엉 울며 때로 멍하니 그저 가슴을 치며.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별안간 숨조차 쉬어지질 않는데. 그 순간 보이는 십자가!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예배를 홍보하는 현수막.

 신애는 교회에 들어가 가슴을 치며 오열했고, 그때 머리 위로 목사의 따뜻한 손이 내려앉았고, 그 순간 그녀는 위로받았다. 우습게도 신을 믿기에 충분한 온기였다. 신앙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그녀에게 어느 날 신이 말했다. ‘원수를 사랑하렴.’ 꽃을 사들고 찾아간 교도소에서 마주한 살진 얼굴.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얼굴 근육과 씰룩이는 입꼬리. 그 남자는 놀랍도록 평온해보였다. 그는 말했다. 신이 그를 용서해주셨다고. ‘신은 저자의 머리 위에 똑같은 온기를 내리셨구나. 내가 받은 것과 똑같은.’ 폭풍 같은 분노가 그녀를 휘감았다.
 
 “용서?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 이미 용서 받았대요 하나님한테.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대요. 이미 용서를 얻었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용서를 해요?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하실 수 있어요?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받았어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 이창동의 ‘밀양’ 中.

살인자는 놀랍도록 평온해보였다. 그는 신이 자기를 용서해주셨다고 말했다. 폭풍같은 분노가 그녀를 휘감았다. 영화 ‘밀양’.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나요?”
 
 그녀가 복수심을 품자 세상은 비로소 지옥이 되었다. 복수해야 할 대상의 부재는 사람의 내면을 끔찍하게 만든다. 그녀가 한 말이 맞다. 빛 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푸른 하늘 너머엔 광활하고 깜깜한 우주만이 있을 뿐. 목사의 설교가 울려 퍼질 때 크게 트로트를 틀어도, 돗자리 위로 유부남을 유혹해도. ‘보여? 보이냐고!’ 의기양양하게 바라본 하늘에는 아무도 없다. 그녀는 정말로 불행해졌다. 위안을 얻으려 택한 믿음이 그녀를 지옥으로 이끌었다. 믿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배신도 당할 일 없었을 텐데. ‘아무 것도 없어요. 그냥 빛이에요.’ 이제는 이렇게 깨끗이 비웃을 수가 없다. 자신을 향한 조소와 신을 향한 분노로 버려진 어린양은 미쳐간다. 쉬운 용서와 값싼 믿음은 그녀의 아픈 죄목.
 
 닐은 신에 대해 적극적인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사라는 그의 인생 최대의 축복이었고, 그런 그녀를 앗아간 것은 신이었다. 그런데 그런 신을 지금 와서 사랑하라고? 닐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납치범이 아내를 돌려준다는 대가로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복종이라면 어떻게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진정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하라고? 이것은 그가 지불할 수 없는 종류의 대가였다.
- 테드 창의 ‘지옥은 신의 부재’ 中.
 
 신이 정말로 존재하는 세계. 천사들의 강림이 빈번이 일어나는 곳. 믿는 사람은 천국에 가고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신을 사랑하거나 외면하며 살아간다. 지옥은 불구덩이도 바늘산도 없는 곳이다. 거기 떨어진 이들은 그저 영원히 신과 단절될 뿐. 닐은 자신이 지옥에 갈 것을 덤덤히 예상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아내 사라를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상황은 나쁘게 바뀐다. 결정적으로 그녀가 죽으면서. 사라는 천사 강림 시 충격으로 고통스럽게 목숨을 잃었고, 독실했던 그녀는 그 순간 천국으로 올라갔다. 이제 닐이 사라를 만나려면 천국에 가야하고, 그러려면 신을 믿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빼앗아간 존재를 한 점의 거짓 없이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닐이 빠지게 된 불구덩이였다.
 
 모든 성지에는 기적적인 치유를 바라는 대신 천상의 빛을 의도적으로 찾아 헤매는 순례자들이 있었다. 이 빛을 본 사람들은 설령 그들의 동기가 이기적이었다고 해도 죽으면 언제나 천당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음의 불안을 제거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회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금까지 줄곧 죄를 짓고 살아오다가 그 결과를 회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테드 창의 ‘지옥은 신의 부재’ 中.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신을 사랑하라. 진정한 사랑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테드 창의 ‘지옥은 신의 부재’.
 
▲천상의 빛을 좇아 성지를 찾다
 
 온갖 노력을 했으나 신을 사랑하는 것에 실패한 닐은 묘수를 찾아낸다. 바로 천상의 빛. 이 빛을 좇는 자들을 라이트시커라고 부른다. 천사가 인간계를 나고 드는 순간에만 잠시 번쩍 나타나는 천상의 빛은 보기가 아주 어렵다. 그러나 목격만 한다면 그 순간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획득한다. 단, 두 눈이 모두 녹아 없어지는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도저히 신을 사랑할 재간이 없었던 닐은 천상의 빛을 좇아 성지를 찾는다. 우여곡절 끝에 폭풍 속에서 죽어가며 천상의 빛을 목격한 그는 모든 것을 깨닫고 마침내 신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본 것은 두 눈이 녹은 채 지옥으로 떨어지는 닐의 영혼이었다. 신은 그를 지옥에 보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신을 계속 사랑한다. 지옥 속에서.
 
 오해에 입각해서 신을 사랑하지 말라. 신을 사랑하고 싶거든, 신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신은 의롭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고, 자비롭지도 않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심을 갖추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중략) 닐은 자신이 지옥으로 보내진 것이 그가 한 어떤 행위의 결과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것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고, 고차원의 목적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 때문에 신에 대한 닐의 사랑이 줄어드는 일은 없다. 닐은 자신이 신의 의식 너머에 존재함으로써 신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지만, 이것도 그의 감정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아무런 보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
- 테드 창의 ‘지옥은 신의 부재’ 中.
 
 우리가 신앙을 가지려 한다면, 누가 이토록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목적으로 필사적일까. 가족의 성화에 못 이겨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면 그만. 성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그만. 가끔 빵 한쪽과 포도주 한 모금 먹으면 그만. 그 정도의 노력으로 많은 이들이 행복과 안녕을 빌고 부와 권력을 바란다. 게다가 벌을 내리는 천사도 없으니 어떤 이들은 사기를 또 얼마나 쳤나. 천국 땅 몇 평에 면죄부를 사고팔았지 않나.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났지만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신앙이라는 이름 안에서 인간은 얼마나 달라졌나. 만약 종교가 해답을 줄 수 있는 열쇠가 되려면, 많은 이들이 손에 움켜쥔 것들을 울며불며 내려놓은 뒤라야 가능할 것이다. 큰 바위산만한 상실감과 실망과 분노를 경험한 뒤라야 가능할 것이다. 그래. 그래야만 비로소 뭔가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 사는 세상에 아름다운 천상의 빛은 내리쬐지 않으나, 대신 재미없게도 불변의 진리라면 존재한다. 첫째, 인간은 눈먼 닐처럼 신을 사랑할 수 없다. 신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둘째. 신이라 불릴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선도 악도 아니며 인간의 편도 아니다. 두 개의 진리가 얽히고설킨 황량한 터전에서 까마귀 혹은 어린양은 길을 헤맨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매일 새벽 기도를 하고 있나? 죽은 이와의 만남을 담보로 믿음을 사는가? 다 좋다. 인간적이다. 바보 같은 노력에 가슴을 치고 차갑게 배신한 하늘에 손가락 치켜세우며 욕을 내뱉는가? 인간답다. 그러나 닐처럼 되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길. 인간은 그런 사랑을 할 수 없다. 그러니 함부로 사랑을 입에 담지 마시길.
 
▲신은 도저히 개입할 수 없는 문제…
 
 지옥이 지옥인 이유는 신의 부재 따위가 아니다. 그렇게 간단하면 지옥이 아니지. 누구도 닐처럼 맹목적으로 신을 사랑을 할 수 없으면서. 다들 약았으면서. 다들 속물이면서. 매일 식탁 앞에 앉아 사랑한다 말하고, 사랑이 적힌 전단지를 돌리고, 전화를 걸어 사랑하라 말하는 것이다. 애달프고 구역질나는 사랑만이 가득한 지옥. 토닥이며 다정히 안아줄 당신은 더 이상 없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더 낮은 단계의 지옥이 있다면 기꺼이 내려가고 싶다. 신이라는 글자조차, 사랑이라는 글자조차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당신 얼굴만 그리워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했던, 아마도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말들만 되새기면서.

 신은 절대로 개입할 수 없는 당신과 나 사이의 문제. 당신만이 용서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문제. 그것이 그리움이든 죄책감이든 사랑이든 무엇이든. 자비를 베풀 권리는 오로지 내게 상처받은 당신, 내 악행을 보고 겪은 당신에게 있을 테지. 그러나 당신은 이미 백골이 되었다. 아침이 밝으면 나는 아무것도 품지 않은 희고 찬 빛 아래 앉아 지치지도 않고 자라나는 머리칼을 자른다. 머리칼을 자르듯 싹둑 잘라낼 수 없는, 그렇다고 풀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붉은 실타래를 품에 안고서. 지옥의 시민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빛이 내린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빛. 나의 머리칼에, 나의 정수리 위에.
김연우 <조선대 국문과 3년, 인문학공간 소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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