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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전을 만나다]이영춘 ‘사과, 이데아’ & 플라톤 ‘국가’
진짜와 가짜
박혜진
기사 게재일 : 2019-02-25 06:05:01
▲ 사유의 향연, 아테네 학당.
 어느 한 순간은 꽃구름 속에서 잠들기를 생각하다가
 저녁에는 면발이 긴 국수를 먹고
 밤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생각하다가
 휘영청 밝은 달덩이를 바라보고
 뉴턴의 사과를 생각하다가
 사과 하나를 먹고
 먼 길 위에서 잠드는 이들을 생각하다가
 나는 아득히 잃어버린 나를 찾아내고
 꽃구름이 둥둥 희망처럼 떠다니는 그런 나라를 생각하다가
 희망처럼 부풀어 오른 빵 하나를 물고
 빵이 없는 이들에게 빵을 줄 수 있는 살찐 영혼을 생각하다가
 나는 눈 내리는 길 위에서 눈에 묻히는 꿈을 꾼다.
- 이영춘 ‘사과, 이데아’
 
▲가상의 시대, 복제되는 세계

 시뮬라크르, 복제로 영위되는 세계다. 가상의 가상. 맛집으로 소문난 국밥집을 퇴근길에 부러 들러 2인분을 시켰다. 너무나 기대를 했던 탓인지 뼈해장국이라는 눈앞의 실재를 다 즐기지 못하고 왔다. 만약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스치듯 지나는 길에 그곳에 들렀더라면 어땠을까. 아무런 불만 없이 한 그릇 뚝딱 해치웠을 것이다. 그러나, 블로그에 사람들이 얼짱 각도로 올린 음식 사진과 감탄사로 장식된 문구들이 부풀려놓은 나의 상상계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완벽하여 눈앞의 현실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했다.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시뮬라크르로 둘러싸인 사회를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시뮬라크르는 ‘복제’, ‘모사’를 뜻하는 독일어로 영화 드라마 광고 게임 속에 펼쳐지는 현란한 이미지들이 모두 시뮬라크르이다. 아! SNS까지도. 사람들은 이제, 사랑을 하는 대신 드라마를 보고, 영웅이 되는 대신 아이언 맨을 본다. 스스로 상상하지 않고 판타지 영화를 보고, 삶의 현장에 뛰어드는 대신 게임을 통해 테스토스테론의 공격성을 해소한다. 위험을 겪지 않은 영혼은 왜소하고, 잘 길들여진 정신은 삭막하다. 내가 살아야했을 시간을 텔레비전과 극장이 대신 살아주는 시대, 시뮤라크르에 둘러싸여 나는 점점 실재로부터 멀어져간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는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동굴의 벽밖에 보지 못하도록 갇힌 죄수들이 있다. 이들은 벽에 비치는 그림자가 세계의 모든 것이며, 그림자야말로 진실이라고 믿을 것이다. 구속에서 벗어나 동굴 밖으로 눈을 돌리면 참된 앎(이데아)에 다가갈 수 있다. - 플라톤 ‘국가’ 중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사물의 원형인 ‘이데아(idea)’론을 주장했다. 우리가 감각하는 이 세계의 현상들은 ‘이데아’라는 참된 실체를 베껴놓은 모사(模寫)일 뿐이라고 플라톤은 말한다. 나는 ‘인간’이지만 인간 일부를 살아낸다. 겨울의 저 소나무는 소나무의 일부를 드러내고 언젠가는 시든다. 완전하며 절대적인, 소멸하지 않는 인간의 이상적 모습과 나무의 이데아 즉 원형은 우리 머릿속에 있다. 그래서 머릿속 원형대로 살아내려 애쓰지만 실천하고 실행한 후 밖으로 드러난 현실은 언제나 내가 생각한 원형과 어긋나고 미끄러진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다.

안평대군의 국가 이데아, 몽유도원.

 플라톤은 절대적 진리이자 선(善)인 이데아를 정초했으나 과연 그런 것이 있을까. 가장 객관적이라고 대접받는 과학 법칙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절반의 진리였음이 밝혀지고, 완전한 진리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초월하거나 포함하는 그야말로 절대 진리여야하거늘, 과연 그런 것이 있을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이데아적 사유가 완전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배제와 불타협, 희생을 용인하는 수단으로 쓰이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인간은 제한적인 감각기관을 통해 사물을 볼 뿐, 우리의 인식기관과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자체(物自體)’는 알 수 없다는 칸트의 말은, 인간은 이데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혹은 그런 게 과연 존재하는지 아닌지조차 언급불가능하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그러나 한 사회가 공유하는 사상과 신념의 체계인 이데올로기(ideologie)가 사라져버린 시대의 인간들은 얼마나 빠르게 세속화하는가. 또 그러나, 지향해야할 이데올로기가 다른 이질적인 것과 부딪힐 때, 이데올로기라는 이데아는 얼마나 빠르게 이성의 이름을 입고 야만이 되던가. 그러니 내 안에서 ‘옳다’, ‘이것이 진짜다’하고 올라오는 믿음들을 경계하라. 그것은 주입된 도덕인가. 습관이 된 상식인가. 아니면 나의 사유와 행위를 통해 온 깨우침인가. 그러나 당연하게도 나의 깨우침마저 나에게만 들어맞는 옷이다. 그래서 사람의 길은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누어진다고 니체는 말했던가. 개인의 이데아는 개인에게 하나다. 그러니 너의 이데아를 추구하라. 그 깊이를 통해 너라는 존재의 이데아에 이르라.

다 빈치의 미의 이데아, 모나리자.
 
▲예술안의 이데아
 
 솔거는 신라 사람이다. 출신이 변변치 않아 집안 내력이 전해지지 않는다. 솔거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일찍이 황룡사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는데 나무의 몸통과 굵은 줄기는 비늘처럼 우툴두툴 주름지고 터졌으며, 가지와 잎은 얼기설기 굽어져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 등이 이따금 나무를 보고 날아들다 벽화 앞에 와서는 발 디디고 앉을 곳이 없어 떨어지곤 했다.

 세월이 흘러 그림의 색깔이 빛을 잃어 승려들이 덧칠했더니 까마귀나 참새가 다시는 날아오지 않았다. 또 경주 분황사 관음보살과 진주 단속사 유마상이 모두 그가 남긴 작품인데 세상에서 말하기를 신이 그린 그림 같다고 했다. - 김부식 ‘삼국사기’ 중
 
 승려이자 화가였던 솔거의 벽화 사건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어떻게 그렸기에 새들이 날아와 앉으려했을까. 사실성을 이야기할 때는 디테일의 힘을 지칭하는 경우가 다수다. 그러나 내게는 현상을 그대로 복제한 사진만큼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없다. 장난감처럼 생긴 로봇은 귀엽지만 인공피부를 덧입은 인공지능 로봇의 미소를 봤을 때의 섬뜩함이랄까. 도리어 사실성이란 디테일이 아니라 존재의 뉘앙스 혹은 생명력, 사물의 핵심을 포착하는 능력이다. 솔거가 그랬을 것이다. 과학자가 만물의 이데아를 이성으로 포착하려는 사람이라면 내게 화가는 사물의 이데아를 직관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새들이 그림위에 앉으려다 미끄러진 것은 소나무의 이데아, 나무의 생명력이 벽화에 깃들였기 때문이었다.

 빗자루, 찻잔, 등잔, 절구와 맷돌…, 옛사람들은 아주 오랜 동안 사람이 애정하며 사용한 낡은 물건들이 시간이 흐르고 주인도 세상을 떠나고 나면 서서히 도깨비로 변한다고 믿었다. 사람에게 속으면서도 사람 곁에 있고자 하는 순둥순둥한 한반도의 도깨비들. 어쩌면 ‘도깨비’라는 야릇하고 얄궂은 현상도 조상들이 직관한 사물의 이데아 아니었을까.
박혜진 <문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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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고전을 만나다]이 세상에는 이데아와 똑같은 것이 없다
 ☞ [시, 고전을 만나다]이데아를 하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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