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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기대며, 함께 나누며]‘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글, 아미나카 이즈루 그림
8년 전 꼬마아이와 화해하기
하수정
기사 게재일 : 2019-03-04 06:05:01
▲풍선을 놓치고 울던 8년 전 아이

 8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 여의도성모병원 앞에서 한 아이가 하늘을 보며 울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잡고 있던, 하지만 지금은 하늘로 둥실둥실 떠올라가고 있는 풍선을 보며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었다. 사람들은 큰 소리로 울고 있는 아이와 하늘로 떠오르고 있는 풍선을 한 번씩 번갈아 보고, ‘아이고, 어쩌나.’ 하면서 안타까운 눈으로 둘을 쳐다보며 지나갔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꼭 안고 다독였다. ‘경민아, 괜찮아.’ 하지만 아이의 눈은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자신의 풍선을 계속 쫓으며 ‘엄마, 엄마, 풍선!’하며 운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어느 저녁에 경민이는 8년 전처럼 엄마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그때 나는 정말 바보 같았어요. 제가 너무 한심해요. 한심해서 너무 미워요. 그때 풍선, 그까짓 게 뭐라고 풍선을 놓쳤다고 울다니. 아빠는 그때 병원 안에서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꼭꼭 숨어라’ 하고 싶지 않은 숨바꼭질

 한밤중이었습니다. 아기 코끼리 뽓뽀는 부스럭부스럭하는 소리에 눈을 떴어요.

 ‘뭐지?’아빠가 일어서는 소리였어요. 달빛에 드러난 아빠의 등이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이 시간에 어딜 가는 거지?’ 뽓뽀는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뽓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아빠의 등이 점점 멀어졌어요. 뽓뽀는 조용히 일어나 서둘러 아빠의 뒤를 쫓았습니다. 아빠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뽓뽀는 조금 떨어져서 걸었습니다. 숲에 들어서자, 달이 구름 뒤로 숨었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 와 나무들이 흔들렸습니다. 숲에서 들려오는 온갖 울음소리에 뽓뽀는 겁이 났지요. 하지만 아빠의 뒤를 계속 쫓아갔어요. 숲을 벗어나자 아빠가 멈춰 섰습니다. 눈앞에 강이 펼쳐져 있었어요. 뽓뽀는 놀랐습니다. 이런 곳에 강이 있는 줄 몰랐거든요. 아빠는 기다란 코로 땅을 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무언가를 묻는 것 같았어요. 아빠는 흙을 도로 덮더니, 왔던 길을 되돌아 갔습니다. 뽓뽀는 아빠보다 빨리 집에 도착하려고 지름길로 왔습니다. 한밤중에 혼자 숲길을 걷는 건 처음이었지요. 무서워 울고 싶었지만, 앞만 보며 힘껏 달렸습니다. 다행히 뽓뽀는 아빠보다 빨리 집에 올 수 있었어요. 뽓뽀는 잠들어 있는 엄마 옆에 살그머니 누웠습니다. 숨이 가빠서 한동안 잠이 오지 않았지요.

 다음 날 밤에도 모두 잠들어 고요해지자, 아빠는 또 어딘가로 나갔습니다. 잠든 척하던 뽓뽀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얼른 아빠의 뒤를 밟았어요.
 - ‘코끼리의 등’ 중에서
 
 경민이 다섯 살 때였다. 경민이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엄마와 아빠가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재미없고도 하고 싶지 않는 숨바꼭질을 하게 된 것이다.

 경민이의 아빠는 경민이가 다섯 살 때 갑작스럽게 아프기 시작했다. 아빠와 엄마는 아빠의 치료를 위해 서울병원과 집을 오고가야만 했다. 아빠는 서울병원에 가면 한 달 이상씩 집에 돌아오지 못 했다. 그때 경민이는 고작 다섯 살이었다. 할아버지도 누나도 아빠가 병원에 갔다고 말해주었지만, 병원에 갔으면 빨리 주사를 맞고 약을 타고 오면 되는데, 왜 아빠는 빨리 집에 오지 않는지 경민이는 알지 못 했다. 단단한 어깨에 무등을 태워주고 칼싸움을 해 주고 술래잡기를 해 주는 아빠가 어디를 갔을까? 재미있는 목소리로 그림책을 읽어주는 아빠가 어디에 있을까? 항상 옆에 있어주던 아빠는 왜 안 오는 걸까? 경민이가 전화를 하면 아빠는 전화기 너머에서 ‘경민아, 금방 갈게. 밥 잘 먹고 있어.’라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금방 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날, 몇 날, 몇 날을 기다려야 했고, 그렇게 기다리다보면 꼭꼭 숨어있던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나타났다.

 
▲아빠가 알려 준 것들

 다음 날 밤에도 모두 잠들어 고요해지자, 아빠는 또 어딘가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어딘가로 나갔습니다. 뽓뽀는 어딘가로 가는 아빠의 뒤를 몰래 따라갔습니다. 아빠는 푸른 풀이 우거져서 맛있는 풀을 많이 먹을 수 있는 들판에도 가고, 산 저쪽 호랑이가 살고 있는 동굴 앞에도 갔습니다. 호랑이가 아빠에게 달려들어 위험하기도 했지만, 아빠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뽓뽀는 어디에 맛있는 풀이 많이 있는지 알았고, 산 저쪽 동굴 앞에는 절대 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빨리 오지 않았다는 서운함보다 돌아왔고 지금 옆에 있다는 기쁨이 더 컸기에 경민이는 아빠에게 토라져 등 돌려 앉지 않고, 아빠 옆에 붙어 앉아서 밀쳐놓았던 놀이를 신나게 했다. 아빠는 무등도 태워주고, 등에 업어도 주고, 비행기도 태워줬다. 파워레인저 놀이도 해 주고 자동차 경주도 해 주었다. 그림책도 더 많이 읽어주었다. 엄마는 아빠는 쉬셔야 한다고 자꾸만 누나랑 노라고 했지만, 아빠는 그럴 때면 경민이랑 누나를 양팔에 끼고 나란히 앉아서 같이 놀자고 했다. 아빠는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밝은 목소리로 가족들에게 아침 인사를 했고, 이를 닦을 때면 꼭 경민이를 불러서 같이 닦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경민이랑 맛있게 식사를 했다. 경민이랑 엘리베이터에서 아파트주민을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웃으며 인사를 했고 자전거를 탈 때에는 꼭 헬멧을 씌워주었다.
 
 “뽓뽀야, 이리 나오너라. 네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단다.” 아빠는 빙긋 웃으며 뽓뽀에게 앉으라고 했습니다.

 “아빠는 곧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야 해.”

 “왜요? 나도 갈래요.”

 “아니, 데려갈 수 없어. 뽓뽀도, 엄마도... 아빠만 가야 한단다.”

 뽓뽀는 왠지 눈물이 났습니다.

 “아빠는... 죽을 거야.”

 “죽는다고요?”

 “함께 있던 곳에서 없어지는 거야. 몸도, 목소리도, 냄새도 사라지는 거지.”

 “어디로 가는데요”

 “하늘나라에 간다고들 하는데, 정말인지는 몰라. 아빠도 처음이니까.”

 “난 언제까지나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

 아빠가 기다란 코로 뽓뽀를 꼭 껴안았습니다.

 “뽓뽀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아빠는 언제나 뽓뽀 곁에 있을 거야.”
 - ‘코끼리의 등’ 중에서
 
 아빠는 집에서 얼마간을 지내고, 또 병원에 간다며 사라졌다. 경민이는 아빠를 기다리는 동안, 아빠하고 싶은 놀이를 생각해 두었다. 아빠에게 자랑할 장난감도 마련해 두었다. 그렇게 경민이는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씩조금씩 더 길어갔다.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은 조금씩 더 짧아졌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빠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졌다. 머리카락이 짧아졌고, 그 다음에는 눈썹이 없어졌고 그 다음에는 머리카락이 없어졌다. 그리고 다시 잔디마냥 머리카락이 조금씩 또 자랐다.
 
 “아빠, 왜 빡빡이 됐어요?”

 “응, 아빠가 몸이 아파. 그래서 약을 먹었는데, 머리카락이 빠지더라구. 그래서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깎았어. 만져봐. 맨질맨질하니까 재미있지?”

 “응, 맨질맨질해. 나도 아빠처럼 머리카락 없으면 좋겠다.”

 “우리 경민이는 지금 이 모습이 최고로 멋져. 아빠가 아파서 조금씩 달라질 거야. 그래도 아빠는 나으려고 최선을 다 할게. ”

 “응”
 
 놀아주던 아빠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졌다. 파워레인저 놀이를 할 때 ‘게 섯거라!’라고 외치는 아빠의 목소리는 용감했지만 파워레인저 놀이를 하는 시간은 조금씩조금씩 짧아졌다. 그림책을 읽을 때 경민이 등에 닿는 아빠의 가슴은 따뜻했지만, 그림책을 읽어주는 아빠의 숨이 조금씩조금씩 더 빨리 가빠왔다. 경민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눈이 더 깊어졌다.

 
▲숨바꼭질 끝. 아빠와 이별하기
 
 달이 모양을 조금씩 바꾸었습니다. 보름달이 떴던 날에서 며칠 밤이 훌쩍 지나, 또다시 밤하늘에 보름달이 떠올랐어요. 다음 날 아침, 아빠와 헤어질 시간이 왔습니다. 아빠가 살며시 일어나 숲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뽓뽀는 따라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엄마도 아무 말이 없었지요. 아빠의 등은 멀어져 갔습니다.
 - ‘코끼리의 등’ 중에서
 
 경민이는 신이 났다. 아빠가 있는 병원으로 경민이와 누나가 가기로 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쇼파에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앉아계셨지만, 경민이는 아빠랑 놀 장난감을 챙기느라고 바빴다. 할아버지는 장난감은 가지고 가지 마라고 하셨기에, 경민이는 챙겼던 장난감은 모두 내려놓고, 조그마한 자동차 하나만 주머니에 얼릉 넣었다.

 아빠가 있는 병원에 도착하니,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를 보자마자 누나가 울음을 터트렸다. 우는 누나를 엄마가 꼭 안아주었다. 누나는 계속 울기만 했다. 엄마는 누나와 경민이를 꼭 안아주었다. 경민이는 누나가 갑자기 우니까 깜짝 놀랬다.

 엄마를 따라서 아빠가 있는 방에 갔다. 아빠는 줄이 여러 개 달린 높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경민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아빠는 경민이를 보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경민아”라고 부르며 웃었다. 침대에 있는 아빠는 분명 아빠인데, 아빠 같지 않아서 경민이는 금세 달려가지 못 했다. 아빠가 이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경민이는 조금 무서워서 엄마 손을 잡고 줄이 여러 개 달린 침대 옆으로 갔다.

 “밥 먹었어? 재미있게 놀고 있었어? 기차 타고 온 거야?”

 경민이는 아빠가 누워있는 침대 난간을 조심조심 만지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아빠의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빠가 경민이 손을 꼭 잡았다. 아빠의 손은 바짝 말라있었다.

 “경민아, 밥 많이 먹고 씩씩하게 놀고, 쑥쑥 크는 거야. 알았지?”

 “응”

 “나가면 엄마한테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해서 맛있게 먹어. 알았지? 사랑해.”

 “응. 사랑해요.”

 경민이가 긴장하고 무서워하고 있는 것을 눈치챘는 지, 아빠는 경민이 손을 꼭 한 번 더 쥐어보고는 놓았다. 경민이는 아빠 손에 뽀뽀를 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손을 흔들고 아빠가 누워있는 방을 나왔다. 아빠가 “경민아. 사랑해.”하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빠와 나누는 마지막 인사였다.

 며칠 후, 누나도 울고 할아버지도 울고 엄마도 울었다. 하지만 경민이는 울지 않았다. 주머니에 넣어둔 자동차를 굴리고 놀았다.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8년 전 꼬마아이와 화해하기
 
 “그때 나는 정말 바보 같았어요. 제가 너무 한심해요. 한심해서 너무 미워요. 그때 풍선, 그까짓 게 뭐라고 풍선을 놓쳤다고 울다니. 아빠는 그때 병원 안에서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경민아, 그게 아니야. 네가 병실에서 나가고 아빠를 보살피던 간호사가 이런 말을 했어. ‘○○○님이 중환자실에 들어와서 이렇게 환하게 웃는 것을 처음 봐요. 아드님 보니까 그렇게 좋으세요?’ 아빠가 그렇다고 했데. 경민아, 너는 아빠에게 가장 큰 힘이었고 용기였고, 응원이었어. 아빠는 너 덕분에 최선을 다해서 병과 싸울 수 있었어. 보고 싶었을 텐데도 꾹 참아주고, 1년 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고 기다려 주고, 아빠가 네게 사랑을 충분히 줄 수 있게 해 주고, 병실이 무서웠을 텐데도 아빠가 마지막에 너의 사랑을 가지고 갈 수 있게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해 주어서 정말 고마워. 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거란다. 아빠가 우리 곁에 머물기 위해 최선을 다 했던 것처럼 말이야. 넌 정말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 했어.”
 
 경민이는 8년 전 아빠의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다섯 살짜리 아이를 많이많이 미워하고 있었다. 무능력하다고 생각했다. 염치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사랑한 아빠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경민이는 자신의 이런 마음을 어디에 내놓을 수 없어서 혼자 앓고 있었다. 그러다 8년이 지난 어느 날 엄마에게 쏟아낸 것이다. 경민이가 8년 전 꼬마하고 다행히 화해를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자기 안에 살고 있는 8년 전 꼬마를 세상에 꺼내 놓은 것만으로도 화해는 시작됐다고 생각된다.
하수정 <그림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꿈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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