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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눈, 청년의 인문학]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 분실된 메시지
어, 바틀비여! 인간을 구원할 메시아여!
메시지 품은 메신저 거인처럼 나타난다
김시인
기사 게재일 : 2019-03-11 06:05:01
▲ 메신저 아일란은 비록 몸집은 아주 작았으나 그가 지니고 온 메시지는 너무나 컸다. 거인의 익사체를 본 사람들은 아직 그의 메시지를 기억하고 있을까.
 “바틀비, 이 서류를 비교해주게.”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하겠습니다.”
 “이봐, 바틀비! 서두르게 다들 자네를 기다리고 있네. 지금부터 필사본을 검토하야 해. 자, 여기.”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하겠습니다.”
 “우리가 검토하려고 하는 건 자네 필사본이야. 이건 자네의 수고를 덜어주는 일이야. 그리고 필사본을 비교하고 검토하는 것은 관례야. 필경사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야.”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합니다.”
 “바틀비, 그 서류들을 모두 필사한 다음 나와 함께 검토하세.”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하겠습니다.”
 “바틀비, 진저넛이 마침 자리에 없으니 대신 우체국에 좀 다녀오게. 가서 내 우편물을 찾아와야겠어.”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하겠습니다.”
 “바틀비! 바틀비! 이봐, 바틀비! 옆방에 가서 리퍼즈를 좀 오라고 해.”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하겠습니다.”
 “바틀비, 고향이 어딘가 자네에 대해 어떤 것이라도 말해주지 않겠나?”
 “말하지 않는 것을 선호하겠습니다.”
 “바틀비, 오늘 당장은 아니더라도 며칠 뒤부터는 서류 검토를 하겠다고 말해주게. 나는 자네가 좀더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는 사람이길 바라네. 그렇게 하겠다고 제발 약속해주게.”
 “현재로선 좀더 합리적으로 되는 걸 선호하지 않습니다.”
 “떠나야 할 시간이야, 바틀비. 여기 돈이 있네. 사정은 안됐지만 자네는 떠나야만 해.”
 “그렇게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자네, 여길 떠날 건가 말 건가? 대답 좀 해봐!”
 “변호사님을 떠나는 걸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집으로 가세. 거기서 진지하게 자네의 일을 함께 의논해보세. 자, 가자구.”
 “아니오. 현재로선 그 어떤 변화도 선호하지 않겠습니다.”
-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선호하지 않습니다 ; I would prefer not to
 
 월스트리트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와 고용된 필경사의 대화치고는 왠지 엉뚱하고 웃기기까지 하다. 두 사람의 실랑이는 한나절의 일이 아니고 여러 날에 걸친 이야기다. 두 사람의 말을 듣다 보면 두 가지 이상한 점을 금방 알 수 있다.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업무가 분명한데도 필경사 바틀비는 왜 이를 한사코 거부하는 것일까? 그리고 거부하는 이유를 전혀 말하지 않고 왜 선호하지 않는다(I would prefer not to)는 일상적이지 않은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는 것일까?

 바틀비는 매우 성실한 직원이었다. 감정이 들쭉날쭉인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성격이 차분하고 온순한 신입직원이었다. 필경사로서의 업무능력도 뛰어나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매우 높은 필사 능력을 갖춘 인재였다. 그런데 필사 이외의 다른 일은 예의 그 화법을 구사하며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바틀비는 필경사로서의 주 업무인 필사마저 중지해버렸다. 역시 이에 대한 해명도 언급하지 않았다. 선량한 변호사는 여러모로 달래고 설득하지만 바틀비는 수용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변호사는 해고를 통보하지만 바틀비는 이마저 묵살하고 사무실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이쯤 되면 바틀비를 비속어로 ‘또라이’라고 부를 만한데, 그의 태도가 매우 진지하고 정중하여 그럴 수 없다. 바틀비의 의식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그의 과거조차 함구로 일관하고 있으니 알아낼 방도가 없다. 도대체 그의 이상야릇한 화법과 행위는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 걸까?

 오늘날의 인간이 인류의 길로 접어들며 획득한 특별한 능력 중의 하나는 언어능력이다. 이족보행과 직립이라는 유인원의 신체혁명은 구강의 내부 공간을 확장시켜 혀의 활동반경을 넓혔고, 손을 토한 촉각과 눈을 통한 시각이 가져다준 지식에 힘입어 언어라는 복잡하고 체계적인 의사전달 매체를 구축하게 되었다. 인간을 제외한 여타의 생물체도 갖가지 신호체계를 확보하고 있어서 필요한 것을 주고받지만 지극히 본능적인 것이어서 인간의 그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이고 보면, 인간이 발명하고 발전시켜온 언어는 단지 신호를 주고받는 차원을 넘어 지식을 보관하고 철학적 사유를 즐기는 데에까지 그 위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다 하겠다.

바틀비의 선한 고용인이 갈구하던 메시지는 그가 자주 다니던 교회와 그 교회 목사의 주둥이에 있지 않았다. 인간이 분실한 바틀비라는 메신저에게 있었다.
 
▲전달되지 못하는 메시지는 사람을 슬프게 한다
 
 바틀비의 선량한 고용인은 견디다 못해 변호사 사무실을 이사하는 획기적(?) 방법을 선호(!)함으로써 그의 고민을 해결한다. 텅빈 사무실에 유령처럼 남아 귀찮음을 넘어 무서움을 안겨주던 바틀비는 경찰에 이끌려 감옥에 가게 되고, 먹는 것마저 선호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사후에 알게 된 바틀비의 과거는 화자를 착잡하게 하고 독자를 심란하게 한다.
 
 바틀비는 워싱턴에서 ‘배달불능우편물’을 관리하던 말단직원이었다. (…중략…) 죽은 편지라니! 마치 죽은 사람처럼 들리지 않은가? 날 때부터 운이 없었던 삶에 또다른 불운이 겹쳐 창백한 절망에 빠진 그들을 상상해보라. (…중략…) 그런 우편물들은 매년 대량으로 태워진다. 이 창백한 직원은 때로 편지 속에서 반지를 발견하기도 했을 것이다. 반지가 끼워졌어야 할 손가락은 무덤 속에서 썩어가고 있을 거라는 것 또한 알았으리라.
-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메시지였다. 인간이 창조한 언어의 핵심적이고 궁극적 목적은 메시지의 전달이다. 물론 언어는 사소하고 사사로운 것들도 놓치지 않고 전달하지만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언어의 숭고한 가치라 불러도 결코 과하지 않다.

 전달되지 못한 채 주인을 잃고 죽어가는 사연들, 전달되지 못한 채 길을 잃고 방황하는 메시지들을 보는 여리고 따뜻한 바틀비의 비애에 공감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슬픈 바틀비에게 필경사라는 직업은 꽤 어울리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월가의 법률사무소라는 곳들이 뭐하는 데인가? 돈과 관련된 추악한 분쟁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그 분쟁을 다투는 모든 법적 언어들을 필사하는 일이 필경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여기에 무슨 따뜻한 사연이 실리고 여기에 무슨 고귀한 메시지가 담기는가? 바틀비가 붓을 꺾은 것은 죽은 사연을 전할 수 없어서, 공허한 메시지를 전달힐 수 없어서다.

사람이 고귀한 메시지와 고결한 메신저를 받아들이지 못하니, 하늘은 다시 버린 메시지와 죽은 메신저를 회수할 밖에 없지 않았겠나.
 
▲메시지를 품은 메신저는 거인처럼 나타난다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날 아침, 거인의 익사체가 도시에서 북서쪽으로 5마일 떨어진 해변으로 쓸려 올라왔다. 처음 소식을 전한 사람은 근처에 사는 농부로 지역신문사 기자와 경찰이 연이어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소식을 미심쩍어했지만 거인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목격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자 마침내 호기심을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동료들과 내가 연구를 하고 있던 도서관은 우리가 해변으로 출발하는 두 시쯤이 되자 거의 텅 비었고, (…중략…) 갑자기 군중 속에서 고함이 들리며 수백 개의 손이 일제히 바다를 향했다. 그쪽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어부 한 사람이 거인의 가슴팍 위에서 걸어다니며 해변 쪽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선을 들어 축 늘어진 귓불을 만지려는 순간 누군가가 이마 가장자리로 머리를 내밀며 소리를 쳤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는데, 이내 젊은이들 한 무리가 얼굴 위로 올라가서 서로 밀치며 놀고 있었다. 이제 사방에서 사람들이 거인의 몸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의 ‘거인의 익사체’(인용문)
 
 우리에게 평범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그건 누군가의 신호다. 일상의 화법과 평상의 행동이 아닌 방식으로 나타난 바틀비는 메신저다. 어느 나라의 어떤 해변에 파도로 떠밀려온 걸리버처럼 거대한 거인은 그래서 비범하다. 거인이 산 채로 이 해변을 방문한다면 SF가 되겠지만 익사한 시신으로 다가와 어떤 신호도나 말도 주고받을 수 없으니 우리는 메신저와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바틀비에게 했던 것처럼 다시 두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메신저는 왜 거인의 형상을 하고 왔으며, 왜 죽은 시신으로 출현한 것일까?

 큰 뜻을 품은 사람과 큰 뜻을 전하는 사람은 거인이다. 자이언트나 기간테스처럼 방대한 체적(體積)을 가진 존재만을 거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거인이나 대인은 사소하거나 사사로운 개인의 범주를 넘어서는, 크게는 인류를 구원하는 큰 뜻을 품기도 하고 큰 뜻을 전하기도 한다. 인류는 그리 흔하지 않은 거인을 맞이했었다. 붓다가 있었고 예수가 있었고 무함마드가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종교인들만은 아니다. 그들은 개인의 영달을 구하지 않고 인류를 구원할 큰 뜻을 전한 거인들이었다. 후대의 인류는 그들이 품은 큰 뜻을 사상(思想)이라 칭하며 그 사상가들의 메시지에 주목한다.

 모든 메시지가 언제나 완벽하게 전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세상이라는 것이 녹록치 않아 죽어버리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바틀비가 죽은 사연을 품고 메시지를 전하려다 죽은 메시지처럼 죽은 메신저가 되듯, 바닷가의 시신으로 나타난 거인은 죽은 채로 다가와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거인은 거대한 육신을 바쳐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천년 전 사막의 바다에서 피와 살을 남기고 큰 뜻까지 남기고 죽은 거인 예수를 보라.
 
▲아, 바틀비여! 진짜 인간이여!
 
 화려한 차림의 서커스 흥행주나 그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해변에 등장하더니 긴 오버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천천히 거인 주변을 돌았다. 아무래도 세계 최고의 서커스에 집어넣기에는 덩치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는 표정들이었다. (…중략…) 오른손과 오른발은 잘려나가 경사 위쪽 수레로 운반되고 있었다. 비료회사와 사료회사가 벌인 짓이었다. (…중략…) 뾰족한 나무토막에 한쪽 귓불이 꿰뚫라고 가슴 한가운데에서는 모닥불이 타오르고 타올랐다.(…중략…) 다음날에 보니 머리가 잘려나가고 없었다. (…중략…) 흉부와 복부는 분명 인간과 흡사한 모습이었지만, 무릎과 팔꿈치와 어깨와 허벅지까지 사라지고 나자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머리 없는 고래와도 같았다.
-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의 ‘거인의 익사체’(인용문)
 
 처음에는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거인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자 유희의 도구로 삼아 거인의 시신을 갖고 놀았다. 급기야 사람들은 돈에 눈이 멀어 거인의 시신을 갈기갈기 찢어내고 잘라내어 고루고루 팔아먹고 말았다. 거인의 형상과 시신의 상태로 강림한 메시아는 제 살과 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하지만 그 큰 뜻 차마 버리지 못해 뼈만은 부서지지 않고 버티어 메시지로 남았다. 그러나 거인의 살과 피로 마음껏 배를 불린 인간들은 쓸모가 없다고 여긴 뼈는 여기저기 늘어놓았다. 거인의 뼈는 쓰레기장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가게 앞의 장식물이나 어느 정원의 조각품으로도 눈에 띈다. 더욱 슬픈 것은 대다수의 인간들이 그 뼈가 그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거인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는 것이다.

 행복한 왕자가 있었다. 어린 시절 행복하게만 살았던 왕자는 이제 온갖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한 채 동상으로 남아 쓸쓸하게 그의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다 건너 이집트로 가야 할 제비 한 마리가 행복한 왕자의 동상 밑에서 쉬다 왕자의 간청에 못이겨 그의 전령이 되었다.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제 몸에 박힌 모든 보석을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일을 하느라 때를 놓친 제비는 얼어죽고, 흉측하게 변한 왕자는 용광로에 녹여지는데, 납으로 된 심장만은 녹지 않아 버려졌다고 한다. 하느님이 천사에게 지상에서 가장 값진 것을 가져오라고 하자 천사는 죽은 제비와 행복한 왕자의 심장을 가지고 갔다 한다.

 왕자가 가난한 자들을 구휼한 것은 제 몸에 박힌 보석이었지만 그 보석보다 더 값진 것은 구휼의 마음을 담은 심장이었을 텐데 사람들은 그걸 알아보지 못하고 치워버렸다. 사람이 고귀한 메시지와 고결한 메신저를 받아들이지 못하니, 하늘은 다시 버린 메시지와 죽은 메신저를 회수할 밖에 없지 않았겠나.
 
 투르크의 해변으로 작은 거인이 익사체로 진짜 나나났었다. 사람들은 이 거인을 아일란이라고 불렀다. 메신저 아일란은 비록 몸집은 아주 작았으나 그가 지니고 온 메시지는 너무나 컸다. 거인의 익사체를 본 사람들은 아직 그의 메시지를 기억하고 있을까? 바틀비의 선한 고용인이 바틀비를 잃고 절규한다. 그가 갈구하던 메시지는 그가 자주 다니던 교회와 그 교회 목사의 주둥이에 있지 않았다. 인간이 분실한 바틀비라는 메신저에게 있었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김시인 <인문학공간 소피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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