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짧은 만남, 긴 기다림

▲집
 
 “지구는 동그랗잖아. 그런데 왜 거꾸로 서 있는 사람은 우주 밖으로 안 떨어져?”

 “야, 그건 중력 때문이지. 지구가 우리를 꽉 끌어당기고 있는 거야. 자석처럼 말이야.”

 “지구가 자석 같다고? 그럼 중력이 사라지면 우리는 다 우주로 날아가 버리는 거야?”“그렇지. 중력이 없으면 우리는 지금 공부도 못 할 걸? 공책이랑 의자랑 다 날아다니니까.”

 “우와, 좋겠다. 그러면 비행기 안 타도 어디든 갈 수 있잖아.”

 “그건 좋겠지만, 생각해 봐. 네가 자고 있는데 둥둥 떠서 네가 모르는 곳에 가 있을 수도 있어. 자다가 다른 사람들이랑 부딪칠 수도 있고, 물고기도 떠다닐 걸. 그래도 좋아?”
 
 지윤이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작은 대화이다. 모르는 것이 없는 채원이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나도 대화에 참여했다.
 
 “지윤아, 넌 어디에 맘대로 가고 싶은데?”

 “나는 우주에도 가고, 놀이동산에도 가고...”

 “나는 목포집에 가고 싶어.”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동수가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아이들이 동수를 잠시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내가 책에서 읽었는데, 건물이 기울어졌을 때 넘어지는 것도 지구가 끌어당겨서 그런 거래. 기울어지면 건물의 옆면도 끌어당기게 되니까 땅으로 넘어지는 거래. 그런데 어떤 나라에 가면 피사의 사탑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몇 백 년이 지나도 안 무너졌대. 이렇게 기울어져 있는데도 말이야. ”
 
 모르는 것이 없는 채원이가 그림을 그리고, 자기 몸으로 피사의 탑이 되어가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높이가 낮은 건물보다 높은 건물이 기울어졌을 때 더 쉽게 무너지는 것이구나. 안 무너지려면 중심이 꽉 잡고 있어야겠다. 그런데 우리 마음도 가끔은 중심을 잃을 때도 있는 것 같아. 어느 때 그래?”

 “남자아이들은 컴퓨터 게임할 때 그러는 것 같아요. 서로 먼저 하겠다고 싸우고, 이모가 1시간만 하라고 했는데, 더하겠다고 떼쓰고 울어요.”

 “나는 진우 앞에 가면 그러는데. 진우 앞에 가면 마음이 쿵쿵쿵 뛰어요.”

 “숙제해야 할 때 마음이 흔들려요. 지금 할까? 나중에 할까? 하기 싫어서 고민돼요.”

 “무서울 때 그래요. 귀신 영화 볼 때도 그렇고,”

 “수현이 언니는 밥 먹을 때 고민된대요. 수현이 언니는 다이어트하고 있거든요.”

 “나는 집에 가고 싶을 때요.”
 
 동수의 이야기에 순간 아이들 사이에서 3초 정도 침묵이 흘렀다. 3초가 3000키로그램의 무게로 느껴졌다.

유치원 갔다 돌아올 때 저만치 서서 기다리는 사람을 보며 “엄마”.(왼쪽) 맛있는 고기를 더 먹고 싶을 때 “엄마”.(오른쪽)
 
▲엄마
 
 아기가 세상을 향해 제일 처음 내뱉은 말. “엄~마”

 아기는 비틀비틀 아장아장 두렵지만 첫걸음을 때며 “엄마”

 유치원 갔다 돌아올 때 저만치 서서 기다리는 사람을 보며 “엄마”

 밤중에 무서운 꿈을 꾸었을 때 울며 “엄마”

 맛있는 고기를 더 먹고 싶을 때 “엄마”

 강아지가 쫓아올 때 “엄마”

 가지고 싶은 장난감 앞에서 “엄마”

 목욕하다가 비누거품이 들어가면 “엄마”

 세상의 모든 문제가 부르기만 해도 반쯤 해결되는 것 같은 이름 “엄마”
- 나의 엄마’ 중에서
 
 “나는 목포에 살았었어요. 지금도 우리 집에 가면 미진이, 동원이, 수정이가 있어요. 내 동생들이에요. 엄마도 있어요. 엄마 이름은 뭔 줄 알아요? 나는 아는데, 말 안 해 줄 거예요. 아빠 이름은 기억이 안나요. 얼굴도 기억이 안나요.”

 “선생님, 동수는 집에 갔다가 다시 왔어요.”
 
 채원이가 동수의 눈치를 살짝 보면서 나에게 정보를 준다. 동수는 아기일 때 시설에 들어왔다. 그래서 이곳에서 엄마나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기억 없이 쭉 자라왔다. 그런데 몇 해 전, 동수의 아빠가 동수를 찾아왔고 동수는 아빠를 따라 집에 가게 되었다. 동수의 집에는 동생들이 셋 있었다. 엄마도 있었다. 물론 동수를 낳아주신 엄마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동수는 집에서 살 때, 행복했었던 것 같다. 동생들과 어울려 놀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엄마가 빨아주는 옷을 입고, 엄마가 깔아주는 이불 위에서 잠을 자고... 처음 가져본 가족, 처음 가져본 엄마, 동수는 그 느낌이 무척 좋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동수의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게 되면서, 동수는 안타깝게도 다시 시설로 돌아와야만 했다. 동수가 떠올리는 집과 가족은 혈연으로 묶인 아빠가 아니라 따뜻한 품을 내어주었던 새엄마와 동생들이었다. 그래서 아빠 얼굴과 이름은 잊어버려도 새엄마와 동생들의 얼굴과 이름은 어제같이 또렷이 기억하는 것이다. 동수는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나는 엄마 집에 못 가. 그러니까 엄마가 대신 와.”

 채원이는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한 후,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래서 채원이와 채원이 동생은 시설에 들어와 생활하게 되었다. 채원이 엄마는 일 년에 몇 번씩 아이들을 찾아온다. 채원이 아빠도 일 년에 몇 번씩 아이들을 찾아온다. 따로따로 말이다. 채원이는 엄마는 엄마집에 살고, 아빠는 아빠집에 살고, 채원이와 동생은 이곳에서 산다고 말한다. 엄마는 엄마집에서 엄마가족들과 살고 아빠는 아빠집에서 아빠가족들과 살고, 채원이와 채원이동생은 이곳에서 예쁜 경희 언니, 착한 수현이 언니, 똑똑한 명옥이 언니랑 산다고 한다. 채원이에게는 엄마의 집도, 아빠의 집도 아닌 채원이 자신이 사는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 사실을 받아들인 것 같다. 그래서 이곳에서 자신을 예뻐해주는 언니들과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채원이는 지윤이나 동수,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볼 때 유독 언니들을 좋아하고 잘 따른다.
 
 “나는 엄마 기억도 안 나. 그리고 보고 싶지도 않아. 그런데 말이야. 이혼 했다고 어디에 사는 지도 알려 주지도 않고, 가버려야 하는 거야?”
 
 지윤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야기한다. 지윤이는 네 살 때까지 엄마와 살았다. 엄마는 한국어를 하지 못했다. 집에서 엄마는 다른 나라 말로 대화를 했다. 그래서 지윤이는 네 살 때까지 한국말을 잘 못했다고 한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엄마와 지윤이는 밖에도 자주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한국말을 못하는 두 사람은 마을 안에서 덩그러니 떠있는 섬 같았을 것 같다. 지윤이가 알지 못 하는 여러 이유로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했고, 그 후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윤이의 엄마는 이제까지 한 번도 지윤이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가 어디에 사는 지도 모른다고 한다. 지윤이는 그런 엄마가 미운 것인지, 야속한 것인지 알 순 없지만 엄마가 하나도 보고 싶지 않으며 기억도 안 난다고 한다. 자신에게는 자신을 찾아오는 아빠가 있으니까, 됐다고 한다.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술도 안하고 담배도 안 하는 착한 아빠가 있으니 됐다고 한다.

 
 낳아준 엄마가 아니지만 처음으로 따뜻한 품을 느끼게 해 줬던 엄마, 사랑하지만 함께 살 수는 없는 엄마, 잃어버린 엄마. 사연도 다르고 존재도 다르지만, 아이들에게 모두 보고 싶은 엄마이고 가고 싶은 엄마이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이 엄마들을 짧게 만나고, 길게 기다려야만 한다.

 
▲엄마에게 가고 싶었던 또다른 아이들
 
 2014년 4월16일. 나는 그날 회사에 있었다. 11시 30분쯤 회의에 들어가기 전,

 “진도에서 여객선이 침몰했데.”

 “응, 그런데 전원 구조됐다던대.”

 “다행이네. 이번에는 빠르게 잘 대처를 했나보네.”

 나는 회사 동료들과 웃으며 회의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퇴근 후 티브이를 틀었을 때, 무엇인가 잘못 되었음을 알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사망자와 실종자 수가 계속 보도되고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입에서는 할 줄도 모르는 기도가 나왔다. 제발, 제발 저 안에 사람들이 살아있게 해 주세요. 부두에서 애끊는 심정으로 기다리는 저 엄마에게, 저 엄마 품으로 아이들이 돌아오게 해 주세요. 제발. 기도하고 기도했다.

 가라앉는 배 안에서도 ‘사랑한다’, ‘살아서 만나자’며 친구의 두려움을, 자신의 두려움을 꼭 끌어안은 아이들. 자신의 빈 자리를 견디며 살아야 할 엄마를 위해 사랑한다는 말 잊지 않았던 아이들.

 사랑은 했는데
 이별은 못했네
 
 사랑할 줄은 알았는데
 헤어질 줄은 몰랐었네
 
 내 사랑 잘 가라고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차마 이별은 못했네
 
 이별도 못한 내 사랑
 지금 어디를 떠돌고 있는지
 길을 잃고 우는 미아 별처럼
 어느 허공에 깜박이고 있는지
 
 사랑은 했는데
 이별은 못했네
 
 사랑도 다 못했는데
 이별은 차마 못하겠네
 
 웃다가도 잊다가도
 홀로 고요한 시간이면
 스치듯 가슴을 베고 살아오는
 가여운 내 사랑
 
 시린 별로 내 안에 떠도는
 이별 없는 내 사랑
 안녕 없는 내 사랑
 
 -‘이별은 차마 못했네’ 박노해. 세월호 추모시
 
 5년이 지난 오늘. 나는 다시 기억한다. 엄마에게 간절히 돌아오고 싶어 했던 아이들을. 그리고 기다린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이 철저히 밝혀지는 날을. 그리고 요구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위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단 설치를.

 그리고 기도한다. 이번에는 짧은 만남, 긴 기다림이었지만 다음에는 짧은 기다림, 긴 만남이기를.
하수정 <그림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꿈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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